#15.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나는 너무 불안해.

글쓰기의 의미

by 북극성 문학일기



매일 저녁시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그저 앉아있다. 치안 문제로 밖을 나가지 못하고 창문 앞을 서성거린다. 가로등도 많지 않고 바깥은 깜깜하기만 하다. 저녁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는 일이다.


물론 다른 일들도 한다.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술을 마시는 일, 드러누워서 보고 또 봤던 예전 예능을 돌려보는 일, 왜 이런 일들은 지겨워지지도 않는 걸까. 그러나 하루 반나절을 그렇게 보내고 있는 날이면, 뭐라도 꼭 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긴다. 나에게는 그게 글쓰기다. 일종의 도피처이다.


일기 쓰기가 '실용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없다. 애초에 여행으로 온 독일에서 '실용'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나는 뭐라도 하자는 마음에 글쓰기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이 말이 가장 정확하다. 한편으로는 그저 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도 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울 뿐이다. 잊히는 추억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기록으로 시간을 묶어놓는다고 해서 그게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시간은 계속 흐른다.


무얼 써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오늘도 한 시간 내내 자리에 앉아서 텅 빈 화면만 들여다봤다. 마음이 답답해지면 창문 앞을 서성이다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오늘 뭐 쓸까'를 고민하다가 오늘은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는 글을 쓰기로 했다. 쓰고 싶지 않으면 그저 노트북을 꺼버리면 되는데 그마저도 글로 쓰려는 거다. 지독하다. 지독해, 스스로 자조하고 있다.


모든 일을 다시 곱씹어보려는 내 행동은 마치 소와 같다. 여물을 씹고 씹고 또 씹어야 비로소 삼키는 소들처럼, 나 역시 글 쓰는 행위로 추억의 여물을 씹고 있다. 단맛은 이미 내 혀끝에 닿았음에도 끝없이 복기하려고 애쓴다.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해야 해, 현재의 나는 조금 괴로워도 괜찮다며.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나는 너무 불안하다. 어떻게 쉬는 일도 제대로 못할까. 불안함이 나를 의자에 앉게 하고, 노트북을 켜 텅 빈 화면을 바라보게 한다. 이 불안함의 기원은 사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심장은 한순간도 쉬지도 않고 뛰고 있고, 사람들도 태어난 이상 계속 달려 나가는 것을 숙명으로 생각하니까. 잠깐의 텀, 잠깐의 쉼도 무섭고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다. 이런 굴레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페달은 계속 밟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도무지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 어쩌면 자고 나면 진정으로 쓰고 싶은 일이 생각날 수도 있다. 억지로 의미를 찾아내고, 억지로 감상을 끌어내는 일은 못하겠다. 나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글은 일단 내가 다시 읽기 싫다. 그건 글쓰기의 의미와도 어긋난다. 나의 행복을 위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내겐 글쓰기라는 행위가 소중하다. 몰입하는 날이면 두 시간은 거뜬히 앉아서 글만 쓸 수도 있다. 글을 쓰면 우연히 가닿는 목적지를 발견하는 일도 좋아한다. 사랑하는 행위도 나를 몰아붙여서 하고 싶지 않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글쓰기는 여기서 끝이다.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나의 마음이다. 오늘은 이름 모를 간이 정거장에서 잠시 쉬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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