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초록빛이 감도는 독일의 공원과 정원.

Hartenberg Park와 Rosenhöhe

by 북극성 문학일기

글 쓰러 근처 공원에 왔다. 본래 날마다 글쓰기를 목표로 했으나 늘 쉽지 않다. 어떤 날은 그저 자고만 싶고, 어떤 날은 그저 게을러진다. 오늘은 노트북을 들고 처음 나왔다. 한국처럼 글쓰기 좋은 조용한 카페를 찾기가 어렵다. 보통 카페에서는 술을 마시거나 대화를 나눈다. 가기 전에 한 번은 찾을 수 있겠지, 싶다.


공원에는 늘 사람들이 붐빈다. 지금도 아이들은 속옷만 입고 물가를 돌아다니며 물놀이를 즐기고, 사람들은 돗자리를 가져와서 휴식을 취한다. 물론 유모차들도 많다. 이런 평화로운 모습에 이젠 좀 적응했다. 그동안 독일의 공원, 정원을 좀 둘러봤다. 자전거를 타며 구불길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트래킹도 했다. 밖에 나가는 날이면 하루에 2만 보는 거뜬히 걷는데, 다만 다음 날에는 언제나 휴식을 취한다.

초록색, 나무와 풀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내가 독일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갔던 공원은 마인츠에 있는 Hartenberg Park이다.

친구는 나를 위해 이튿날, 마인츠 시내를 구경시켜줬다. 함께 H&M에 가서 옷도 구경하고, 백화점에 가서 향수도 구매했다. 버스 시스템은 복잡해 보였고, 나는 그저 친구가 이끄는 대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머리가 뱅글뱅글 돌고, 인파 많은 시내에서 잔뜩 겁을 먹었다. 그제야 문득, 원래도 사람 많은 복작복작한 장소를 좋아하지 않았음을 기억했다.


그러다 마주한 Hartenberg Park는 평화 그 자체였다. 친구는 나중에 이곳으로 피크닉을 함께 오고 싶어서 봐 둔 장소라고 했다. 작은 공원이지만 분수대도 있고, 벤치, 농구대도 있다. 무엇보다도 여기저기 큰 나무들이 가득하다. 해는 나뭇잎 사이로 비쳐 들어왔고, 바람 따라 나뭇잎은 싸아- 하는 바다의 파도 소리를 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숲의 시원한 냄새가 느껴졌다. 긴장이 탁 풀리고 붕 뜬 마음이 안정됐다.


독일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은 이 공원에 도착해서야 들었다. 너, 지금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며 친구는 말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난 이 공원에 와 있다. 마음의 안정은 집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때론 꼭 자연이 필요하다. 자연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누린 만큼 아껴줘야 할 텐데.



Hartenberg이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공간이라면, 다름슈타트의 Rosenhöhe는 공원이 잘 꾸며져 부모님이 생각나는 장소였다. 여러 장미, 다양한 꽃들이 정원 곳곳에 가득했다. 정원사가 열심히 꽃을 가꿨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평일 오후에 방문해서일까. 유독 노부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백발의 노부부는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공원을 산책했다. 이곳저곳 멋진 풍경들을 찍는 할아버지도 봤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에서 한적하고도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 보였다. 부모님과 함께 오면 참 좋아하시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었다.


정원을 잘 구경하고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몇백 마리의 꿀벌들을 봤다. 알고 보니 근처에서 양봉하고 있었다. 꽃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필 수 있는 이유도 모두 꿀벌 덕분이다. 정원의 관리자는 정원사뿐만 아니라 꿀벌도 함께였다. 새삼 꿀벌의 위대함을 느꼈다. 꿀벌 말고도 호박벌, 벌과 같이 꽃가루를 옮기는 파리도 봤다. 다양한 꽃의 종류만큼 다양한 생물들도 정원에 살아가고 있었다.


정원의 끝까지 걸어가면 다름슈타트의 경계까지 볼 수 있다. 익숙한 거름 냄새가 났고, 그 경계에서는 농사를 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골집 풍경이 떠오르는 장소였기에 그저 너무 행복했다. 세상의 끝, 아직 고층 건물들과 고속도로가 들어올 자리가 없는 비밀스러운 곳에 온 기분이었다. 보라색의 들꽃, 흐드러진 구름 아래 갈대밭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언젠가 이곳에 자전거를 타러 오고 싶어 졌다.


어쨌든 우린 계속 걷는다. 어쩌면, 독일 땅만 밟고 오고 싶다고 말했던 처음의 다짐과도 일맥상통한다. 땅을 직접 밟는 행위를 통해 독일을 알아가고 있다. 골목을 걸으며, 건물을 보며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을 체화하고 초록빛의 공원을 걸으며 땅의 느낌을 발끝으로 익힌다. 한국과 독일은 들꽃의 색채마저 다르다는 사실을 거리를 걸으며 알게 된다. 보라색도 같은 보라색 꽃이 아님을, 어쩌면 자연의 색감 차이가 도시 디자인 감각을 바꿔놓았을지도 모른다는 공상을 하며.


백번 천 번 그저 머릿속으로 상상한 시절의 독일, 이곳에도 물론 그런 정취가 남아있다. 그러나 직접 눈으로 실존하는 독일을 볼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우중충한 날씨의 회색 도시의 면모도, 햇빛 쨍쨍한 날의 쨍한 색감의 독일의 모습도 모두 보았다. 내 공상 속 독일도, 여러 면모의 독일도 모두 내 안에서 계속 기억될 것이다. 이 여름, 한 달간의 추억을 내가 잊을 수 있을까? 벌써, 오늘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을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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