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독일인들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도시,하이델베르크

상상 속 유럽의 모습이 그대로.

by 북극성 문학일기

독일에 온 지 21일째이다. 시간은 정말 빨리 흘러만 간다. 그동안 여섯 곳의 도시를 방문했고, 도시마다 느꼈던 바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가장 최근에 방문한 하이델베르크이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내게 독일은 그저 베를린이 수도인 곳이었다. 내겐 도시별로 어떤 특성이 있는지, 어떤 역사가 있는 곳인지 등의 개념이 부족했다. 미디어에서 비치는 이미지로서의 독일만을 알 뿐이었다. 자유로운 사상들이 넘치고,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곳. 딱 그 정도로 베를린을, 아니 독일을 동일시해서 생각했다.


사실, 지금 내가 와 있는 마인츠라는 도시 역시 도착하고 몸으로 부딪히면서야 알게 됐다. 독일에 와서 많은 도시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기차, 혹은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조금씩 다른 도시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역시 같은 '독일'이더라도 도시마다의 차이는 당연히 존재한다. 한국도 서울, 경기도, 강원도의 느낌이 다르고, 또 세부적으로 지역마다 다 느낌이 다른 것처럼 독일도 마찬가지이다.


여섯 곳 정도 가고 나니 머릿속에서 약간씩 도시와 도시의 이미지가 섞이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독일 자체에 적응도 해야 했고, 시차로 인해 잠이 쏟아져 글쓰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더 잊기 전에 빨리 작성해야겠다.



-상상 속 유럽의 이미지, 하이델베르크 Marktplatz

마인츠에서 하이델베르크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구글 지도에서 차편으로 알아보니, 그 거리가 93km이다. FlixBUS를 이용해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왔다. 신기하게도 이 도시는 주요 관광명소가 동쪽에 몰려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관광지가 몰려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탔다.


가장 처음으로 간 장소는 하이델베르크 성이다. 역에서 내려서 15분 정도 걸었더니 바로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광장이 나왔다. 독일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독일인들에게도 이 도시는 관광지라고 했다. 광장 음식점에 앉아있기도 했고, 조각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모두 이곳 주민이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인 느낌이었다. 마인츠의 거리에선 지역 주민들을 더 많이 봤는데, 이곳에서 관광 온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곳을 보러 오는 건 어딜 가나 똑같구나.


광장엔 Artes liberales라는 서점이 있다. 어딜 가나 서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서점 앞을 서성거렸다. 카페 옆, 창문을 통해 여러 서적이 전시되어 있었고,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카페 정도의 규모라서 서점 안의 규모도 작은 편이다. 철학, 시, 예술과 과학 서적이 주로 있다는 안내판도 볼 수 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2015년에는 독일 최고의 서점 (der besten Buchläden Deutschlands) 상 1위를 수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3년에 서점 문을 열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광장에 있는 작고 아담한 서점, 내가 이곳 주민이었어도 참 자주 방문했겠다.


하이델베르크 광장은 내 상상 속 유럽의 이미지와 비슷했다. 포근한 베이지 색의 커다란 건물들과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이 그 광장에 그대로 있었다. 이곳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프가 된 곳은 아니지만, 어쩐지 비슷하게 느껴졌다. 애니메이션 중, 소피와 하울이 가장 처음 만난 골목길이 떠올랐다. 그냥 막 찍어도 아름다운 곳이라며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거리를 구경했다.


-빨간 지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하이델베르크 성

디즈니 영화 시작 전 나오는 성은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이처럼 독일에는 크고 작은 성이 많다고 하는데, 하이델베르크에도 랜드마크인 하이델베르크 성이 있다. 1225년에 축조했다고 하는데,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2021년에 봐도 성의 웅장함에 놀란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그냥 걸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케이블카(Bergbahn)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의 우리들은 케이블카를 타러 티켓 구매소에 갔다가 제지당했다. 10분 정도면 결과가 바로 나오는 코로나 테스트(Schnelltest)를 광장에서 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한 코로나 테스트였기에 약간은 긴장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왕복 케이블카는 학생 할인을 받아, 9유로에서 4.5유로만 내고 탈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하이델베르크 성에 도착했다. 공원 산책 겸, 성도 둘러볼 수 있었다. 시야가 탁 트여 있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아담한 집들이 보였고, 네카어 강과 함께 Old Bridge Heidelberg라는 다리가 보였다. 다리 건너서는 또 다른 관광 명소인 철학자의 길도 보였다. 신기했던 건 지붕 색깔이다. 지붕이 온통 빨간색이었다. 빨간 색인 이유가 궁금해서 또 찾아봤더니, 흙을 주재료로 한 기와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잠시 눈에 풍경을 담고는, 약제 뮤지엄과 엄청난 크기의 술독도 구경했다. 22만ℓ를 담을 수 있다는데, 이곳에서 독일인들의 술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지내다 보니 맥주가 음료수보다 싸고, 물도 맹숭맹숭해서 술을 자주 마시게 된다. 게다가 엄청 맛있다..! 한국 돌아가도 한동안은 독일 맥주 생각이 날 것 같다.



-철학자의 길과 중고 서점

하이델베르크 성 투어를 마치고 다리를 건너서, 철학자의 길로 향했다. 헤겔, 하이데거가 산책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올라가 보니, 왜 이쪽으로 산책했는지 알겠다. 그건, 바로 길이 꼬불꼬불 계속 이어져 혼자 잡생각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길 초입에는 Schlangenweg이라는 꼬부랑 길이 있다. Schlangen은 독일어로 뱀 혹은 줄을 의미하는데, 정말 말 그대로 좁다란 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

그 뱀 길을 끝까지 오르기 전까지는 풍경이고 뭐고 볼 여유가 없이 땀만 흘렸지만, 다 오르고 널찍한 길까지 오니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좀 생겼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걸어가면 좋을 장소이다. 왜 이곳이 철학자의 길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등산과도 같은 기능을 하는 것만 같았다. 어떤 생각들은 그 생각을 계속 머릿속에서 머물게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 잠시 비워야 새로운 생각들이 들어와서 그 생각과의 접점을 찾아나갈 수 있다.


어쩌면 길 자체가 사유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좁다란 길들이 이어지는 것처럼 사유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하나의 큰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런 추측을 하면서 올라갔다. 정작 이름 붙인 사람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나도 정신없이 계속 올라가서 그런지 올라가면서 별 생각을 다하면서 올라갔다.


철학자의 길을 따라 쭉 내려와서 서점 여러 곳을 방문했다. 하이델베르크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학 도시이다. 출판사, 서점, 도서관들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서점을 3곳 정도 들렀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서점은 Antiquariat Harty이다. 중고 책들을 판매하고 있는 서점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책이 정말 쌓여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많다. 책을 찾으며, 홍대에서 방문했던 중고 서점이 떠올랐다.


국문과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중고서점에서 사라진 윤동주 책 2권을 찾으라고 농담을 건네시곤 했는데, 중고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찾는다는 생각을 하면 아마 하루 종일 찾아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 대신, 나에게 다가온 책을 산다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 저 수많은 책 중에 내 눈에 띄는 책은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 책의 제목이, 색상이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에게 다가온 책 두 권을 구매했다.


서점에는 원형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이 서점의 신비로움을 조성한다. 곳곳에 있는 은은한 노란색의 조명도 중고서점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지하 1층에는 어린이 책이 있고, 역사, 사상에 대한 책들이 있다. 1층은 나라 별로 분류해서 전시되어 있고, 가운데 큰 테이블 위에 놓인 책들은 대체로 소설이 많았다. 책뿐만 아니라 음반, 악보도 판매하고 있었다. 오래된 책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종이의 질감도 이곳이 중고서점임을 실감하게 했다.



위층에 올라가면 예술, 사진, 미술 등의 책들도 볼 수 있다. 작은 창문들 옆에 쌓인 책들에도 눈길이 갔다. 빨주노초 등 색깔로 책을 배열하기도 하고, 책 배열의 콘셉트를 다양하게 주고 있어서 책방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비싼 책들도 있지만, 대체로 가격이 10유로 이하였다. 문득, 이곳에서 일하는 책방 직원분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다양한 시대에 탄생한 책들이 중고서점이라는 요새에서 잠들어 있다가 새로운 사람과 조우한다. 이런 비밀스럽고도 신비스러운 만남이 책방에서 이뤄진다. 어떤 책이 어떤 이에게 도착하는지 지켜보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겠다.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는 조심스러운 나의 물음에 서점 직원 분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본다는 듯 얼마든지 찍어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셨다. 멋진 책방 사진을 이곳에 남긴다.


이렇게 서점 방문까지 끝마친 우리는 다시 마인츠로 돌아왔다. 책과 사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이델베르크는 정말 좋은 도시로 다가오겠다. 나도 이 도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이델베르크는 또한 대학 도시이기도 하다. 예술가들, 작가들, 연구자들도 많이 살 것만 같다는 생각도 했다. 더욱 궁금해지는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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