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포기도 선택만큼 대단한 결정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포기'를 결정한 순간에 받은 위로들

by 북극성 문학일기
선택하고 도전하기.


해야만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추진이 더 빠르다. 일단 목표를 잡은 이상, 언제나 추진력을 갖고 한 가지 목표에 몰두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마다 원하는 목표를 이뤘고 올해도 역시 뭔가를 이룰 줄 알았다.

그리고 올해의 빈칸에는 독일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간절히 원했고 그만큼 노력도 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게 남은 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독일어 실력과 여전히 낫지 않는 두드러기이다.


선택하고 도전하기. 단순해 보이는 이 명제가 코로나 상황에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이 시국에 해외를 간다는 일은 '도전'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상황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갈까? 말까?를 고민하며 선택하지 못해 기껏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눈물바다에 끝없이 침전해있는 일뿐이었다.


선택에 기로에 선 동안 나는 그저 내 안에 갇혀 있었다. 친구와 가족과도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기도 힘들어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내가 비쳤으니까. 못난 내 모습이 비치는 게 싫었다. 한동안은 만남도 연락도 피하다가 교환학생 포기를 완전히 결정한 뒤에야 그 사실을 지인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즈음에도 역시 방구석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때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배게에 계속 젖어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포기하기 전인 12월, 1월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다. 그 당시에 뭐라도 해보겠다고 매일 3시간 정도를 한국사 자격증 공부를 했었는데, 1달 내내 공부해도 성과가 없었다. 눈에 아무것도 안 들어오던 시절이었다. 머리가 그저 멍하기만 했다. 시간은 흘러 결국 어영부영 선택의 시간이 왔고, 결국 포기를 결정했다.


즐겨 듣는 치즈의 노래에는 “좋은 일도 있고요. 안 좋은 일도 있어요. 근데 왜 안 좋은 일은 안 묻나요.”라는 가사가 있다. 세상은 안 좋은 일은 들어주지도 않아. 세상에 괜히 어깃장을 부리고 싶은 마음에 SNS에 열심히 준비한 독일행이 취소돼 너무 힘들고 지친다고 주저리주저리 올리려고 했다. (그 당시 충동을 참은 과거의 나를 칭찬한다.) 그러나 안 좋은 일 말해서 뭐가 좋다고! 하는 마음에 말하기를 삼켰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꼭 말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독일 교환학생을 알아볼 때 대학 소개를 처음 해준 선배나, 이 고민의 시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는 친구들. 여전히 내 모습을 스스로 부끄러워하기에 이야기하기가 꺼려지지만, 한편으로는 내 서사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받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쭈뻣거리며 건넨 이야기에도 지인들은 진지하게 나의 포기담을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뿍 담은 이야기를 선사함과 동시에 위로의 말도 건네줬다.





포기할 때 포기할 줄 아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기에, 나는 너 스스로를 어려운 결심을 해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이 말을 하면서도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어떻게 말해야 너의 상처 받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치유해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몇 번을 문장을 바꾸면서도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네가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너에게 꼭 더 좋은 기회가 올 거야!

- 앞선 교환학생 경험자인 친구 '새싹'


살아가면서 내 결정은 내 것이 아닌 상황이 빈번하더라고.

- 교환학생을 함께 준비하던 후배 '모모'

내가 항상 나에게 되뇌는 말이 있는데 두 가지 갈림길에 서서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면, 다른 한쪽을 두고 후회하지 말자. 이거거든? 나는 어차피 이 길을 선택했고 후회한다고 되돌릴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후회할수록 아쉬움과 미련이 나를 계속 괴롭힐 테니까 일단 가는 거야. 그래서 그렇게 그냥 꾹 참고 가다 보면 언젠가 뒤를 돌아봐도 아 그래 내가 저기서 그렇게 고민을 참 많이 했었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왔구나 하며 돌아볼 수 있게 되더라고. 그리고 다시 나아가는 거지. 내가 어찌 됐든 선택한, 걸어야만 하는 이 길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하면서 말이야.

- 독문과 학회로 만나 언니 '차차'


나는 그냥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포기 직전 비행기표까지 함께 알아봐 준 친구 '지니'


교환학생을 가지 않은 것이 다른 기회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답니다.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만날 수도, 아니면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거예요. 30살까지 계속해서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지치고, 그때까지 이뤄놓은 것이 없을까 봐 너무 불안하죠? 또 미래의 나 자신이 도전보다는 안정감을 찾아 떠날까 봐 무섭기도 하고요. 사실 저도 이것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고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라서 확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린 아직 진짜 너어어어무 젊어요! 교환학생을 가지 않은 것이 인생의 실패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요.

-교환학생을 가고자 마음먹도록 조언해 준 독문과 선배 '초록'



동의를 구하고, 응원 메시지들을 브런치에도 가져왔다. 나에게 위로가 된 글이지만, 나처럼 '포기'의 경험을 한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했다. 선물처럼 건네받은 이야기를 잘 포장해서 지금도 가끔씩 떠올리고 있다. 포기를 할 당시, 마치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든 줄 알고 있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 힘든 일들을 겪고 이겨내고 있는 중임을 다시 알게 됐다. 또한 코로나 상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각자의 고충이 있다는 것도. 모두 상황이 완화되기를 바라며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고백한다. 사람은 그 자체로도 빛난다는 문장이 적힌 에세이를 보았을 때 솔직히 당황했다. 성과만능주의인 이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막상 힘들어 보니, 그런 문장이 담긴 에세이들이 있는 이유를 알게 됐다.


내가 지인들에게 받은 문장은 어떻게 보자면 이미 들어본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함께 불안한 세대를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받았기에, 빛으로 다가온 문장들이었다. 선택과 포기. 끊임없이 이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어떤 선택이 성공과 실패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포기했기에 다가올 새로운 기회들이 있음을 말해주는 지인들로 인해, 잠시나마 희망찬 미래를 다시 그려볼 수도 있었다. 물론 아직 현재의 힘듦을 극복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문장들에 힘입어 나는 또 나의 오늘을 기록한다. 우울과 불안,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걸음들이 모여서 만들 나날을 한번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다.




문득 외로워질 때 듣는 ASMR

- Honeyjam ASMR


https://www.youtube.com/watch?v=xfVPAAQ06EU


치과 가는 건 싫어도, 치과 ASMR은 듣기 좋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규칙적이고 반복되는 소리들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크리에이터 허니잠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한 적이 많다. 사람들과 만날 용기는 나지 않지만 문득 외로워질 때 듣는 ASM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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