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시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ENFP 스파크형'의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한 여정 첫 번째 이야기.

by 북극성 문학일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의 대상을 찾을 수 있을까.

열정과 사랑의 힘으로 움직이는 “ENFP 스파크형”인 나는 문득, 사랑의 대상을 상실했음을 실감했다. 내겐 독일어를 꾸준히 해야 할 이유도, 독일 문학을 열심히 읽어야 할 이유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상실에 대한 슬픔과 동시에 다시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있었다. 지난 2주간, 으레 상실을 겪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하는 나를 발견했다. “술” “친구와의 만남” “울기” “되는 대로 살기” 그리고 “잊기 위해 빨리 다른 일을 찾는 것” 하루는 이렇게, 하루는 저렇게 하면서 규칙 없이 살았다. 아, “울기”는 그즈음에는 거의 공기와 같은 존재였기에 그냥 꾸준히 눈물이 떨어졌다.



먼저 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스트레스 + 면역력 약화로 생겼다고 추정되는 두드러기가 낫지 않았다. 그러나 두드러기는 신경 쓰지 않고,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 왔다. 요즘은 코로나로 술집에서 술 마실 수 없는 상황이기에 주로 집에서 혼술을 했다. 워낙 안 마신 탓에 주량이 줄어든 탓일까. 그리 적극적으로 마시지는 못했다. 다만 이 행위는 그냥 상실을 겪는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을 그저 흉내 내고 싶었던 것 같다. 속은 쓰리고 마음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다음은 친구와의 만남이다. 친구와 만나서 수다를 떨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우리의 고등학생 시절, 스무 살을 이야기하면서 추억 여행에 잠시 빠졌다.


이와 동시에 '되는 대로 살기'를 실천했다. 해지했던 왓챠를 다시 구독했다. 키딩 1, 2를 이틀 동안 완결까지 봤으니 무척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잊기. 잊기 위해선 현실을 바라봐야 했다. 대외활동 사이트에서 다시 기자단, 서포터스 등을 열심히( 찾는 척하고) 쓰고, 늘 마감 1시간 전에 제출했다. 정말 잘 안 써졌다. 그냥 막 휘갈겨서 쓰고 난 뒤에 아무 생각도 없었다. 지금 당장 간절함 따위 없으면서, 다 놓아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왜 지원서를 쓰고 있니?라고 스스로 반문했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 나니 이제 후련해졌다.



라고 쓰고 싶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잘 모르겠고, 막막하기만 했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기분이 들었고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무엇도 없었다. 운명적으로 다가온 사람도, 연예인도, 사물도 모두 없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이번에는 다시 새로운 대상을 “운명적”으로 만나야겠다는 생각 대신에, 내가 좋아했던 어떤 것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제목도 멋지게 붙였다. 그 프로젝트 이름은 '2월의 조각'이다.




2월의 조각. 그 조각조각을 이어 붙이다 보면 다시 집 나갔던 사랑과 열정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첫 시작은 사적인 서점이다. 사적인 서점이 교보문고로 이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동 거리 탓에 엄두가 나지 않아서 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참에 핑계 대지 말고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열아홉, 내가 책 계정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 계정을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도 다 책 처방 덕분이었으니까.


4년 만에 간 책 처방에서 대표님께 다시 책 처방을 받았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늑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수능이 바로 끝나고, 사적인 서점을 찾아갔을 때의 설렘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차를 마시며 함께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제가 다시 좋아하는 대상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제게 독일을 갈 기회가 또 있을까요?” 등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주 멋진 문장을 소개받았다.

‘시간이 흐르면 또 원래의, 혹은 또 다른 공허가 몰려들어 그곳에 고인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중략) 그러나 그 쓸쓸함에는 충족된 인간이나 완벽한 세계에는 없는, 작은 조개껍데기의 안쪽을 보는 듯한 복잡한 광택이 있다.’
-211쪽.


포기한 나 자신을 충분히 다독여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것. 독일을 준비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배움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런 시간을 겪는 나에게 “조개껍데기 안쪽”의 복잡한 광택이 남아있을 것. 그러니 잊기 위해 당장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를 의무적으로 하지 말라는 조언이 큰 위로가 되었다.


사랑의 대상이 떠난 자리에는 공허와 상실감이 남는다. 허기진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구멍이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허겁지겁 뭐든 삼키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게 나쁜 일일까. 상실을 겪은 내 모습을 다시 바라봐주고 안아줄 필요가 있다. 나를 안아주는 행동은 무엇이지? 내가 술을 먹고, 마음껏 울고, 작은 일탈들을 일상 속에서 해보는 모든 일들은 전부 '애도'의 과정이다. 그만큼 사랑했기에 그만큼의 상실은 내 몫이다.


포옹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가만히 안고 있으면 겹쳐진 가슴 사이로 상대방의 온기와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다. 나와의 포옹도 이와 같다. 나의 심장소리와 오늘의 온기를 느껴본다. 결국 내가 급하게 마음의 구멍을 없애려고 했던 시도들은 머리에서 돌아가는 일들이다.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는 명목으로, 머릿속에서 계산된 이야기로 힘들어하는 마음을 무시하고 갈 수는 없다.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축복이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대신 조금 더 다양한 색채로 빛나고 있는 광택을 얻었다. 시종일관 분명하고도 따듯한 눈빛으로 삶의 다채로움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는 대표님의 말씀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하나의 이미지로 동동 떠다녔다. 조개껍데기.


하얀 조개껍데기에 빗금이 생기고 광택이 생기는 아름다운 과정이 있다면, 나무는 단풍으로 그 과정을 오롯이 보여준다. 사람에겐 '이야기'이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고 다만 이야기만 남을 테니까. 오늘의 나는 사랑과 상실로 인해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진 서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러니, 다신 사랑을 찾을 수 없을까 봐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존재인 '사람'이기에 결국 다시 사랑에 빠지고 상실을 맛보는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서사를 이어 나갈 테니까.





책이 건네는 말을 나 혼자 찾기 힘들 때,

- 사적인 서점

https://www.instagram.com/sajeokinbookshop/


도서관에 가면 수많은 책이 놓여 있다. 책들은 끊임없이 말하고 싶어 한다. 도통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때, 사적인 서점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오늘 나에게 필요한 문장이 담긴 책을 '책 처방'을 통해 처방받을 수 있다. 책 읽기를 위한 도우미이자 길잡이로 있는 책 처방사들이 뽑은 책들이 앞으로도 쭉 궁금할 것 같다.

이 외에도 월간 사적인 서점은 매달, 작가들이 고른 책들이 고심해서 고른 책과 함께 편지도 배송되는 프로그램이다. 서점까지 갈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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