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뒷산에는 참나무도 있고 벚나무, 아까시, 가죽나무, 산초나무도 있지만, 가장 많은 수종은 소나무입니다. 소나무숲입니다. 행정지역이나 동 이름에는 사용되지 않지만 초등학교부터 아파트, 세탁소, 태권도장, 중국집까지 '송림'이라는 이름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소나무 숲을 가까이에 두고 산다는 것은 곡우 절기 무렵, 송홧가루와 씨름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동차 세차는 아예 포기했고, 열어 놓은 창문으로 날아온 송홧가루로 발바닥이 버석거립니다. 마당에 나가 놀고 들어온 고양이는 인절미에 콩고물을 묻힌 것마냥 누렁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숲의 나뭇잎들도 송홧가루를 뒤집어썼고, 숨찰 때 잠시 앉아 가던 벤치에도 쌓여 엉덩이를 붙이기가 난감합니다. 이제 그만 좀 날리면 좋겠다 싶을 때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는 얼마나 고마운지요.
꽃봉오리를 하늘로 뾰족히 올리고 바람을 기다리는 소나무는 퍼뜨릴 송홧가루가 남아 있나 봅니다.
송홧가루가 슬슬 미워지기 시작하는데, 오늘은 더 미운 적이 나타났습니다. 집게벌레와 비슷한 검은 벌레들이 발걸음을 떼기 겁날 정도로 바닥에 즐비합니다. 맨발로 산책하는 어르신들이 걱정될 정도로 많았습니다. 검색해 찾아보니 '검털파리'라고 하네요. 작물에 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너무 많은 개체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심을 조장합니다.
천년 거목도 단 하나의 씨앗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텃밭에 씨앗을 뿌릴 때는 씨앗 하나와 모종 하나를 연결하기 어렵습니다. 발아율이 너무 좋아 씨앗마다 싹이 트고, 솎아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씨앗을 마구 뿌렸던 걸 후회하지요. 봉숭아 씨앗을 뿌렸던 승연이도 싹이 너무 많이 나와 당황했나 봅니다.
소나무 껍질 떨어지는 소리에 눈을 들어 보니, 청설모 두 마리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놉니다. 몸이 작은 걸 보니 어린 청설모인가 봅니다. 그중 한 마리는 제가 서 있는 나무 가까이까지 내려왔습니다. 청설모의 재롱을 구경하는 동안에는 검털파리의 존재도 잠시 잊었습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리고 작은 생명이 주는 활기와 생기는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벅차오르게 합니다. 이렇게 귀여운 청설모도 개체수가 너무 많으면 무섭고 두려워지겠지요? 작아야 귀엽고, 없어야 귀합니다.
감자밭 옆, 땅콩밭을 지나는데 흰나비들이 앉은 밭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가까이 가보니, 나비가 아니라 꽃이었네요. 노란 땅콩꽃이 필 줄 알았던 밭에 나비 같은 흰 꽃이 피다니요. 땅콩이 아니라 완두콩이었군요!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생각해 버린 게 미안했습니다. 아이들과 놀 일이 있으면 무궁화 꽃 대신 큰소리로 불러줘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