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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Sep 02. 2024

문지르다

방법이 다를 때 존중이 더 필요해

집사가 "손!" 하고 손바닥을 내밀면 앞발을 척 올려놓는 냥이를 본 적 있나?

가끔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엄친냥'들이 있는 것도 같지만,

평범한 고양이들이라면 그런 행동 따윈 하지 않지.

훈련을 통해 길들여지게 되면 똘똘냥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하겠으나

우리의 입지가 자칫 '반려'에서 '애완'으로 추락될 위험도 있고.


내 말인즉슨,

우리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지,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사가 '손!' 하면 나도 앞발이 아닌 '손'을 내미는 상상을 하곤 해.


내게 앞발이 아니라 두 손이 있다면,

집사들처럼 두 팔이 있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이 집에 같이 사는 두 마리의 다른 고양이들과는 생각이 다를지 모르지만,

나는 가장 먼저 내 오른팔을 들어 여주인 집사의 뺨을 한 대 찰싹 올려붙일 것 같네.

이 여자는 심심하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꼭 끌어안고는 놔주지 않거든.


이 여자가 나를 귀여워해서 그런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야.

사람들 사이에서는 가장 원초적이고 친밀한 표현으로 서로를 안아준다는 것도 알지.

그러나 우리 세상에서는 상대를 안고, 안기는 것은 맞붙어 싸울 때나 하는 행동이라고.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호감을 표현하느냐고?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면 슬그머니 다가가 냄새를 킁킁 맡고 몸을 문지른다네.

고양이들끼리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표현을 하지.

치즈고양이 메이가 집사의 발에 고개가 비뚜러지도록 열렬히 얼굴을 문지르는 것도,

배불뚝이 가을이가 길을 막으며 엉덩이를 문지르는 것도

집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표현이라는 말일세.


마음은 같아도 표현 방법이 다를 때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맞는 말이네.

그럼, 자네들이 우리의 애정 표현을 감당해 주듯이

나도 자네의 억지 포옹을 잠시 참아줌세.

단지, 잠깐 나를 안아도 내 하얀 털을 자네 옷에 잔뜩 묻히는 것은

내 소심한 복수라고 여겨주기를 바라네.


어쩌면 팔이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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