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이야, 머슴처럼 코 옆에 커다란 점이 있는, 코점이!
코점이가 돌아왔지 뭐야.
한때는 젖소, 깻잎이와 같이 삼총사로 몰려다니던 녀석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더랬지.
동네 냥이들 족보를 다 꿰고 있는 남자 집사 말로는
산 밑에 있는 어느 대감님 댁 행랑채에 빌붙어 살고 있더라, 했기에
녀석이 다시 고향집 담 주변을 어슬렁거릴 줄 몰랐어.
대감님 댁 가세가 기울어 밥그릇을 채워주지 않아 그랬을까,
아니면 새끼들을 건사할 암컷냥에게 자리를 양보해 줘서 그랬을까 알 수 없지만
산해진미,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그릇에 밥 떨어질 날은 없는 고향을 초라한 행색으로 찾아온 걸 보면,
배가 곯을 때는 고향과 부모님이 생각나긴 하는 모양이야, 냥이든 사람이든.
하지만, 이 구역의 대장냥이며 서열 일 순위인 깻잎이가 두고 보고만 있을 리 없지.
'이 놈 왠지 냄새가 익숙한데? 예전에 어디서 본 듯?'이라고 잠시 고민했을 수는 있겠으나
비슷한 몸집의 수컷냥인 코점이에게 순순히 자리를 내어줄 리 만무.
"엄마, 깻잎이 싸워요."
집사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서 결투의 현장을 목격했나 봐.
고향집 담벼락에서 마주쳐 혈투를 벌인 두 수컷냥!
저음으로 그르르르, 고음으로 깨애애애.
어느 쪽을 편들 수 없는 집사 입장에서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일 수밖에.
그저 한쪽이 너무 크게 부상입지는 않기만을 바랄 뿐인데.
다음날.
깻잎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에 데리고 다니던 젖소, 쓰리쓰리와 함께 밥을 먹으러 왔어.
'코점이가 K.O패를 당했나 보군. 앞으로 이 구역엔 발도 못 들이겠구나.'
이렇게 상황은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하루이틀이 지난 바로 어제였어.
반전! 그날 얼굴을 물어뜯겼는지 귀 옆쪽에 뻘건 살이 다 드러난 코점이가 다시 나타난 거야.
깻잎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몰래 들어온 것도 아니고,
대나무 발 안쪽에서 깻잎이가 점심을 아드득 먹고 있는 그때,
코점이가 아직 다 아물지 못한 상처를 여유 있는 몸짓으로 그루밍하면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겠어?
깻잎이랑 코점이 크게 싸우기는 했으나
깻잎이 먼저 먹고 나면 남은 것은 먹을 수 있도록 서열 정리가 된 모양인지.
내 몫을 나누기 위해서는 상대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받아들이려면 먼저 잊어야 해.
그럴 때 잊는다는 말은, 어떤 잘못이든 용서한다는 뜻이기도 하지.
어릴 적 같이 지낸 사이라는 걸 잊은 채 물고 뜯고 싸우긴 했어도
깻잎이는 비렁뱅이 처지가 된 코점이를 받아들여 주기로 한 것 같아.
그러지 않았더라면 팔 뻗으면 닿을 자리에서 그루밍을 하고 있는 코점이를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거든.
코점이도 깻잎이가 이 구역 대장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거야. 네가 남겨주면 먹고 갈게, 하는 겸손한 태도를 배웠을 수도.
꽤 아픈 몸빵을 통해 터득한 묘생의 지혜랄까.
아무튼 쭉 지켜볼 수밖에.
지금 당장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 같기는 한데,
깻잎이랑 코점이가 예전처럼 다정하게 어울려 다닐지는 모를 일이어서.
머리는 잊는다고 해도, 상처의 흔적은 남아 있을 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