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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Nov 06. 2024

앓다

앓고 나면 알게 되는 것

독감 예방 접종이 한창인 모양이야.

여자 집사가 몇 년째 약 처방을 받으러 들락거리는 병원에 갔더니

독감 주사를 맞으러 온 어르신들로 북적북적하더래.

여자 집사도 언젠가 한번 독감을 호되게 앓고 난 후로

식구들은 죄다 거부하는 예방주사를 혼자서라도 꼬박꼬박 챙겨 맞고 있다지.


집사의 아들딸들은 그래도 비교적 잔병치레 없이 큰 편이야.

관심이 필요할 때면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하면서 작은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학교에 가기 싫으면 꾀병에 가까운 엄살을 부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준수한 건강 상태.


어릴 때야 남들처럼 크느라 는 병들은 빠짐없이  했으나

얼추 사흘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놀았어.

아이가 열이 오르고 아프면 함께 살던 집사의 시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

"재주 하나 더 늘려고 아픈 거다."

그 말씀처럼, 아이들은 앓고 나면 얼굴은 허여멀건 핼쑥해졌을지언정 훌쩍 큰 듯한 느낌을 받았다나.


우리 고양이들도 이 집에 와서 한 차례씩은 크게 아팠어.

이사 스트레스로 무지개다리 목전에까지 다녀온 적도 있고,

토하고 늘어져서 동물병원에 입원을 했던 적도 있고(지금도 그때 입원비를 생각하면 집사한테 어찌나 미안한지),

여기저기 설사를 해놓고 다녀서 맛없는 약을 억지로 먹어야 했던 때도 있었지.

그렇게 티 나게 아팠던 것은 십 년 가까운 세월 중에 몇 번 되지 않지만, 소소하게 앓았던 일은 여러 번 있었어.

집사들은 몰랐을 지도 모르지만.

왜냐하면 우리는 아프면 웅크린 채 그 아픔이 지나갈 때까지 혼자 숨어서 앓거든.


아프면 피할 수 없어 앓아야 하는 게 우리네 자연스러운 치유 과정이라면,

되도록 덜 앓고 그 시간을 줄여보려는 게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인지상정.

앓기 전에 아예 아프지 않으려고 차단하려는 게 예방주사 같은 거고.

사람과 고양이가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이렇게 다르지.


아, 오해하지는 말아 줘.

인간들이 동물처럼 자연스럽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야.

예방주사를 맞지 말라든가, 고통을 줄이기 위해 병원이나 약국을 찾지 말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아픔이 찾아왔을 때는 앓을 수밖에 없다는 것, 얼마큼 앓아야 지나가는지는 하느님만 알고 있다는 것.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은 신이 정한 한시적 시간 후에는 지나가게 되어 있다는 건데, 그 시간은  '사흘'이라는 것.


물론 사흘은 24시간×3=72시간을 말하는 건 아니지.

성서에 의하면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을 수 있는 시간 개념.

겪을 때는 매우 길게 느껴지지만 지나가고 나면 눈 깜빡할 새처럼 생각되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시간 개념.


사람들과 우리가 앓을 때 다른 점은 또 있지.

재주가 하나씩 늘어나는 아이들처럼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앓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현명해지는 것 같아.


그리고 우리는 아파도 그 아픔을 공유하거나 돌보아주는 이 없이 오롯이 혼자 아픔을 앓아내야 하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지 않지.

앓는 이의 아픔을 함께 앓아낼 수 없어 안타까워하며 돌보는 이들이 있어.


'앓음' 뒤에는 '앎'이 와. 

성서에 나오는 '알다'라는 말 안에는 '사랑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댔어.

그러니 앓으면서 사랑을 알아간다는 것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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