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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Nov 04. 2024

듣다

제발 내 말 좀 들어라,라고 하기 전에

여자 집사가 어린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시절,

부모들에게 안타까워하던 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아이들이 지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능력을 보지 못하고

한글 읽고 쓰기, 간단한 사칙연산만 빨리 배우기를 바라는 것이었어.

그러나 아이들과 하루만 지내봐도 알지,

아이들의 섬세하고 미세한 관찰력과 방향을 모르고 퍼져나가는 상상력은

감히 어른의 능력과는 비할 수 없다는 걸.

그뿐인가.

친구를 대하는 태도는 얼마나 너그러우며,

친구의 잘못을 용서하는 데는 또 얼마나 재빠른지.


그런 아이들의 능력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사 역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힘들어하던 게 있었는데.

그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거였어.

여러 번 같은 말을 해도 귓등으로 흘려 듣는다고,

입이 아프도록 잔소리를 하면서 하루를 지낸다고,

엄마 말 잘 듣고 선생님 말 잘 들어야 착하고 훌륭하게 자랄 텐데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고 끌탕을 하곤 했지.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경력이 쌓이며 퇴직을 하고 난 뒤에야 집사는 알았다지,

아이들이 듣지 않으려고 해서 듣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어른이 들리게끔 말하지 않아서 들으려 해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어야 들을 수 있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받아들여야 들을 수 있는 건데,

어른들은 자기 눈높이에서 자기들의 언어로 말하며

아이들의 이해와 수용을 바라곤 하지.


나한테도 마찬가지야.

밥그릇에 만족하지 못하고 동생냥의 밥을 탐하거나

배가 고파 어쩔 줄 모르고 누나냥 눈앞에 얼쩡거리는 나한테 큰소리를 지르곤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려고 해야 들을 수가 없어.

배가 고픈 본능이 귀를 막고 있는데

집사의 그 말이 내 귀에, 내 마음에, 내 다리에, 내 행동에 닿겠느냐 말이지.

내가 집사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집사를 집사로 인정하지 않아서도 아니야.

그저 집사의 그 말 뜻을 알아듣고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야.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아이들의 언어로 말해주고,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 뜻을 설득해 준다면

말을 안 듣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았을 거야.


한 귀로 듣고 한 뒤로 흘린다고 나무라지 말고

한 귀에 닿을 수 있는 말을 했는가, 먼저 생각해 보기를.

사람들끼리 서로 그럴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래 줄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네.


아참, 한글도, 사칙연산도 읽고 쓰기를 잘 하려면

듣고 말하기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건 내가 콕 짚어주지 않아도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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