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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Nov 11. 2024

두려워하다

실체가 없는 것들의 올가미

집사들이 며칠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첫째냥이 병이 났어.

집에 남아 있던 집사 아들이 나름 뒷바라지를 하긴 했지만

하루 세끼 밥 주고, 똥 치워주고, 놀아주던 남자 집사가 없으니 불안했던 모양이야.

밤새 끙끙대며 앓고, 아무 데나 혈뇨를 눠서

여자 집사와 세탁기까지 덩달아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지.

병원에 다녀온 뒤로 컨디션은 조금씩 회복되는 것 같은데

글쎄, 아직 다 나은 것 같지는 않아.


그런데 가을이가 병원에 다녀온 뒤로 더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둘째냥 메이야.

가을이야 아프니까 그렇다 치는데, 메이는 딱히 아파 보이지도 않는데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어.

배가 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녀석이 입맛도 좀 없어 보이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 문을 열어 주어도 나가지도 않고.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동장에 병원 냄새 때문이 아닌가 싶어.

전에 메이 녀석, 아파서 같은 병원에 이틀 동안 입원했던 적이 있잖아.

집에서는 펄펄 날아서 누나냥 막내냥 마구 밀치고 다니던 녀석이

병원 케이지 안에서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걸 보면서

녀석이 쫄보에 방구석 여포였음을 알게 됐더랬지.

그런 메이가 왔다 갔다, 야옹야옹 옹냐옹냐 불안해하는 것은,

"으아아아악! 가을이한테서 병원 냄새 난다냥! 집사야, 난 거기 절대 안 갈 거다냥!"이라고 말하는 걸 수도.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어도,

옆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겨나수많은 두려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거나 확률은 언제나 50%,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도 피할 수 있거나 피할 수 없는 확률 역시 50%.

반반의 확률에서 언제나 비관적 가능성 쪽으로 얼굴을 돌리게 하는 두려움.

귀신처럼, 유령처럼, 도깨비처럼, 좀비처럼

실체가 없으면서도 그것들의 영향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올가미, 두려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잔뜩 겁먹은 메이를 흉보는 집사들에게서도

똑같은 두려움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보이는 건, 나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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