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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28. 2022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거라고 믿고 싶다

간밤에 잠을 설쳤다. 무슨 일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을 할수록 불안하고 이상했다. 봄이라 나른하고 졸음에 비실대던 내 촉이 날카롭게 서는 것을 느꼈다. 분명 심상치 않다.


어제 가족과 아파트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길에 우리 가족이 매번 들르는 장소가 있다. 나의 아름다운 길냥이 몽땅이가 있는 정자가 바로 그곳이다. 정자 아래에는 캣맘들이 사료와 물을 챙겨주는 급식소가 있다. 몽땅이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다른 고양이들도 이 급식소를 탐내지만 몽땅이와 기싸움에서 매번 밀려나고 만다. 우리 가족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단 어딘가에서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몽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총! 총! 총! 몽땅이가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남편의 다리에 머리를 쿵 하고 지나갔다. 그렇게 남편에게 세 번의 머리 쿵을 하고는 그제야 봤다는 듯 나에게 다가왔다.


남편은 몽땅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산책하듯 천천히 둘이 걷기고 했다. 햇살이 좋아서 해바라기를 하는 몽땅이 옆에 같이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편과 아들이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몽땅이와 산책하듯 걸었다. 몽땅이 배도 만져주고 겨울에 거칠어진 발바닥도 만져주었다. 몽땅이는 기분 좋게 발라당을 하느라 몸이 지저분해졌다. 그래도 귀여워서 먼지나 마른풀을 털어주었다. 몽땅이는 내가 챙겨간 간식을 맛있게 먹었다. 몽땅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나는 정자에 앉아서 몽땅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해가 좋아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풀을 뜯는 모습이 귀여웠다. 잠깐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야옹아 이리와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몽땅이를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그냥 있었다. 다시 고양아 이리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귀여워하는 소리라기보다 그냥 부르는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내밀었다. 기둥에 가려져 있던 남자가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정확하지 않지만 2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몽땅이는 그 남자와 나의 중간에 있는 계단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계단 아래 서 있고, 나는 계단 위에 앉아 있는 상태였다. 내가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면 남자도 나도 서로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몽땅이는 움직이지 않고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나처럼 몽땅이와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휴대폰으로 장을 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5분, 아니 10분 가까이 지나도록 조용했다. 갔나 하는 생각에 다시 고개를 내밀었는데 그 남자가 계단 아래 아까 그 자세로 서 있었다. 몽땅이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몽땅아! 하고 불렀다. 몽땅이는 그제야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몸을 일으키고 몽땅이가 나에게 와서 등을 보이고 앉았다. 나는 몽땅이의 등을 쓸어주고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도록 조용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그 남자가 계속 우리를 보고 있었다. 쎄했다. 뭐지? 나도 그 남자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 남자는 당황하거나 어색해하지도 않았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그냥 우리를 보고 서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몽땅이의 등을 쓸어주고 있었지만 그 남자가 굉장히 신경 쓰였다. 그제야 남자의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곱슬거리는 앞머리는 기름져서 대여섯 가닥으로 이마에 붙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쳐도 어색해하거나 작은 목례나 움직임도 없었다. 고양이를 불렀던 사람이라면 귀여워서 고양이를 쳐다볼 텐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제야 나는 몽땅이에게서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몽땅이는 이 산책로의 사랑둥이다. 다른 길고양이와는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하지만 사람에게는 애교가 많기로 유명해서 오며 가며 사람들이 귀여워해 주는 인기 냥이다. 몽땅이가 산책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멀리서 소리가 들리거나 모습이 보이면 먼저 달려가는 유형이다. 우리 가족과 몇 명의 캣맘, 그리고 산책하는 불특정 다수의 아주머니들에게 보이는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무시형이다. 산책로 한복판에 드러누워서 사람이 지나가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도 불과 일 년 전까지 무시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기피형이다. 산책로를 지나가는 몇몇 사람을 보고 몽땅이는 화단이나 울타리 너머 산으로 도망을 갔다. 분명 그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몽땅이도 느낀 것 같았다.


이 사람에게는 몽땅이가 이 세 가지 모두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면으로 그 사람으로 보고 있지만 긴장된 모습이었다. 그 사람과 거리를 두고 앉아서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야옹아 이리와 라고 하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하듯 친근하게 다가가지 않았다. 마치 싫어하는 개나 다른 길고양이가 보일 때처럼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 몽땅이가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몇십 분이 지나도록 그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몽땅이가 그 사람을 지나쳐서 산책로 울타리를 넘어갔다. 그동안에도 그 남자는 나도 몽땅이도 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나도 그 사람을 지나쳐서 산책로를 향했다. 산책로를 따라 돌다가 서둘러 그 자리로 왔을 때였다. 그 남자가 울타리 아래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분명 몽땅이가 그곳에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서 걸음이 빨라졌다. 인기척에 나를 보던 그 남자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는 내 쪽으로 걸아왔다. 그리고 모른 척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얼른 울타리 쪽으로 달려갔다. 역시 몽땅이가 있었다. 울타리 너머 풀숲에 앉아서 이 쪽을 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몽땅이를 끄집어 올리려고 몸을 숙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를 보고 몽땅이가 울타리를 넘어왔다. 나는 털을 쓸어주면서 한참을 몽땅이와 함께 있어줬다.


그 사람이 다시 올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산책로를 돌고 또 돌았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몽땅이와 걷기도 하고 그냥 옆에 앉아 있기도 했다. 캣맘이 사료를 주기 위해 나타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나는 몽땅이를 위해 산책로를 더 돌아보기로 했다. 나를 따라 몽땅이도 걸었다. 그러더니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지하주차장 계단 입구에서 몽땅이는 멈췄다. 어쩌면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이곳이 더 안전하겠다 싶어서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최근에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늘었다. 그 글을 읽고 마음이 아프고 몽땅이가 걱정되던 참이다. 사실 이 동네는 고양이가 살기에 좋은 곳이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길고양이에게 따뜻하다. 산책로 주변에만도 몇 개의 급식소가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도 마실수 있다. 산책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길고양이를 보면 챙겨 온 간식을 주거나 다정하게 나비야 하고 부르면서 지나간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만 있어도 길고양이는 생명이 위험하다.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책로 쪽, 몽땅이가 지내는 곳에서는 아직 고양이 학대 소식이 없다. 내가 본 것은 고양이를 위협하거나 욕을 하는 정도, 심한 경우에 내가 있는데도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정문 쪽에서는 고양이를 심하게 학대해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작년에도 있었다.


내가 어제 본 그 사람이 나처럼 길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하지만 그 사람은 고알못인 내가 보기에도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산책하다가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양이를 향해 시선을 맞추고 앉는다. 아무리 귀여워도 함부로 고양이를 만지지 않는다. 고양이를 만지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 친해진 후의 일이다. 그 사람은 차갑게 고양이를 부르고, 움직이지 않고 서서 나와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울타리 너머로 도망간 고양이를 끄집어 올리려고 했다. 밤새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되짚어보았다.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이길 바랐다. 생각 같아서는 몽땅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고양이와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들의 알레르기도 걱정이다. 가족을 들이는 일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나는 집 밖에서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는 몽땅이에게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 더 자주 몽땅이를 찾아가기로 했다. 혹시나 위험한 순간이 오더라도 내가 지켜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도록 더 자주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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