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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번역하는 번역가

안톤 허의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by 아침엽서




안톤 허, 스페인 출생이라 외국인인가? 싶었는데 토종 한국인이고 다만 아버지의 직장(외교관) 때문에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9년 거주했다고 한다.


현재 번역가의 현주소, 쉽게 생각하는 풍토(쉽다는 것은 무책임을 동반하는 일),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 낮은 진입장벽으로 쉽게 번역가의 길에 들어서지만 쉽고 빠른 포기를 아쉬워했다.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사실 우리가 만나는 번역가는 외국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라 안톤 허번역가는 낯설기 그지없다- 은 외국 출판사들과 직접 홍보하고 영업을 해서 계약을 따와야 하는 열악함 속에서 일하고 있다. 애정 없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안톤 허작가가 한국문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번역가들 중에 유독 퀴어가 많은 듯하다.’라는 문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자 동지인 리아의 이야기가 나왔다. 본인이야기라는 걸 한참 뒤에 알았다.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많이 힘들었겠다.


유럽 여행 중 남자 둘과 곤돌라를 함께 탄 적이 있었다 가족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둘은 친구냐고 물었더니 “My husband”라고 말했다. 홍콩출신인데 호주에 산다던 두 남자는 성정체성을 찾아 고향을 떠나야 했나 보다 짐작만 했다.


제목의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는 많이 궁금했는데, 영문과 대학원 시험날의 에피소드였다. 영어로 답을 쓰는 허 작가에게 왜 영어로 쓰냐는 감독관의 질문에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라고 대답했다고. 하하하


그의 부커상 더블 롱리스팅. 82년생 김지영과 대도시의 사랑법 두 작품이 동시에 후보에 올랐을 때 원서에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에 섭섭한 마음을 토로했다. 부커상이 번역본에 주는 상이었으므로 얼마나 기뻤을까 싶지만 애써 번역가에 대한 무관심을 누르고 작가가 후보가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런 그의 섭섭한 마음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 뒤 저주토끼는 숕리스트(최종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그는 원서를 출발어, 번역본을 도착어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도 무척 정겨웠다.


지식의 저주 편에서 이브를 최초의 번역가가 아닐까 하는 대목에선 역시 작가님 다운 발상이구나 싶었다.


(황선희번역가책에서도 느꼈지만) 번역가 역시 작가이다. 그들의 번역 활동이 온전히 인정받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안톤 허도 (원본)작가보다 더 유명한 번역가, (원한다면) 소설도 쓰는 번역가가 되어 더 즐겁게 일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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