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어쩌다 팟캐스트에서 변영주 감독이 게스트로 출연한 프로그램을 듣게 되었다. 영화 화차에 얽힌 뒷이야기와 근황 이야기 중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추리극, 정세랑 작가의 설자은 시리즈를 소개했다.
읽고 판권이 팔렸나 궁금해서 정세랑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책이 너무 재밌다는 변영주 감독의 말에 정세랑 작가가 ‘그럼 감독님이 판권 사세요’라길래 아직 안 팔렸군(그리고 끝) 했다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냈다.
미스터리, 스릴러 전문인 변영주 감독이 재밌다니 귀가 솔깃했다. 정세랑 작가의 이름이 익숙하다 싶더니 그 유명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작가였다. 정세랑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작가도 새 장르에 첫 도전작이라고한다.
작가의 말에서, 철저히 상상력으로 썼노라고 다만 소재가 된 몇몇 사건과 인물은 있었다고 했다. 시대 배경이 된 680년대 후반 통일신라 신문왕 시대라 혹여 역사에 누가 될까 봐 신문왕의 무덤에 가서 사죄했으나 그 묘가 신문왕의 묘인지 아닐지, 확실치 않다고.
주인공 설자은은 당나라 장안을 떠나 통일신라 금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 양친이 병으로 세상을 뜬 뒤 연이어 열한 명의 형제자매 중 첫째와 둘째가 전투 중에 사망했고, 넷째가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났다. 장안으로 유학 갈 예정이었던 다섯째 오라비마저 세상을 뜨자 기울어가는 가문을 일으키고자 여섯째 미은은 다섯째 오라비 자은으로 신분을 속이고 유학을 떠났다. 지금 자은은 공부를 마치고 금성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웃는 듯한 얼굴의 백제인 목인손은 손기술이 좋아 *누반박사가 되려고 당나라에서 공부하던 중 백제가 망해서 기다리는 이 하나 없는 고향으로 돌어가기 위해 배를 탔다.
배에서 만난 자은과 인곤은 배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라는 부사의 명을 받아 추리를 시작했다. 뒤늦게 짐작은 했으나 범인은 끝내 잡지 못하고 금성에 닿았다. 추측컨대 시리즈 중 어디쯤에서 다시 나올것이다. 미스터리장르가 제법 걸지게 판을 깔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이렇게 허술하게 끝낼리가 없다. 어디에 무엇을 숨겼을지 찾는게 미스터리의 묘미이다.
목인곤은 자은에게 갈 곳이 없으니 식객으로 받아들여달라 청하여 함께 본관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자은과 인곤의 듀오가 완성되었다.
자은과 인곤이 금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기다리는 건 평화로워 보이는 궁정과 저택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옛 연인 산아의 기묘한 청탁에서 비롯 된 가문의 비극, 길쌈대회에서 벌어진 뜻밖의 사건, 왕의 연희에서 발견된 싸늘한 주검까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신라의 은밀한 미스터리들을 파헤치게 된다.
조용하고 생각이 날카로운 자은과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내어주고 활동적인 인곤의 티키타카는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적절하게 수소문하여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데 일등공신이며, 뛰어난 손기술을 발휘하여 자은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인곤의 활약은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를 연상케 했다. 홈스는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허드래일을 도맡고 손기술로 하는 일은 왓슨이 해결하는 것도 닮아있다.
감독의 시선으로 본다면 충분히 드라마화할 가치는 있어 보인다. 다만 추리소설의 애독자로서 이 소설은 사건의 화려함이나 반전의 묘미는 기대보다 덜했다. 통일신라, 68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사건의 스케일을 결정했으리라 짐작게 한다. 그러나 정세랑 작가의 상상력으로 버무려진 금성에서의 여정은 신선함을 선사한다. 설자은 시리즈와 함께 신라의 거리와 한옥과 바다를 유랑하기를 권해본다.
(*누반박사: 불탑의 상륜부를 주조하던 기술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