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두 아이는 딱지치기에 진심으로 미쳐 있었습니다.
특히 큰 아이의 딱지 입문, 하수부터 시작하여 고수에 이르기까지 딱지 레벌 업그레이드를 일 년 동안 지켜본
저는 아이의 열정에 여러 번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딱지치기가 대유행을 하여 놀이터 한쪽에는 항상 무리가 자리를 잡고 내기를 하고 있었지요.
딱지만 있다면 레벨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이 판에 끼어들 수 있으나 진판(진짜 내기)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방금 전까지 내 딱지였던 것이 어느 순간 상대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니 실력이 좋거나 강심장인 자만이 살아남으니까요.
큰 아이는 몇 번의 가판(가짜 내기) 연습을 하더니 자신감이 붙었나 봅니다.
호기롭게 진판에 뛰어들었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몇 판을 연속으로 진 아이는 당황과 분노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열개를 다 잃은 큰 아이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큰 결심을 한 듯 보였습니다.
잃은 딱지를 돌려달라며 부탁인 듯 부탁 아닌 사정을 하더군요.
그 처량한 모습을 지켜보는 저도 같이 속이 상했지요.
"니 실력이 부족해 잃은 딱지를 자존심도 없이 어떻게 다시 돌려달라고 빌고 있니? 딱지를 다시 찾고 싶으면 열심히 연습해서 니 실력으로 되찾아와!!"
제가 떡을 가지런히 써는 한석봉의 어머니도 아닌데 왜 저런 말을 해서 화를 자초했을까요?
저의 꾸짖음에 아이는 큰 가르침이라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때부터였습니다. 낮이고 저녁이고 주중이고 주말이고 모든 의무를 반납하고 놀이터 한쪽을 지키고 서서 팔이 떨어져라 연습을 했습니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대결을 해야 직성이 풀리더군요.
아이의 일주일 용돈과 칭찬에 대한 보상은 모두 딱지 구입에 쓰였고요.
열심히 하는 건 좋으나 숙제도 학원도 뒷전이고 딱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에 잔소리를 하며 싸운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놀러 가서도 딱지 치는 두 아이)
이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처음으로 진판을 이겼을 때 아이는 자기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 와~~ 와~~"를 외치며 저에게 뛰어왔습니다.
아이의 기쁨과 희열에 저도 같이 손뼉 치며 안아주었지요.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도 딴 듯한 두 모자의 연출에 주변인들은 저게 무슨 꼴값인가 생각했겠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금메달이니 그깟 비웃음쯤은 상관없습니다.
자신감이 붙은 아이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점점 실력이 느니 아이들 세계에서 딱지 좀 치는 아이로 인식되었고 그 유명세를 이어가기 위해 더욱더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밤까지 놀이터에서 딱지를 쳤고 저도 아이의 안전을 위해 같이 놀이터를 지키는 열성을 보였으니 한석봉 어머니의 교육열에 뒤지지 않았다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결코 자리만 지킨 것이 아닙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너도 나도 양아치를 찾을 때면 비속어 사용을 단속해야 했고 내기 도중 내 맘대로 규칙을 바꾸는 친구가 있다면 첫 규칙도 상기시켜야 했고 반칙을 쓰는 아이가 있다면 중재에 나서야 했습니다. 이 정도면 저도 이 놀이판에 뛰어든 거나 매한가지지요.
시간만 나면 아이와 함께 놀이터를 지키니 딱지치기의 달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른 아이들과도 통성명을 하게 되더군요.
친분이 쌓일수록 내 자식 최고가 아닌 내 아들 남아들 구분 없이 공정하게 그 판을 이끌어 가야 하는 책임감과 의무감도 쌓이니 꼼수를 부리는 아이들에겐 딱지를 몇 배로 토해내는 벌칙도 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정한 규칙과 벌칙은 서로 잘 지키기를 요구하니 타짜의 세계가 따로 없습니다.
이토록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도 마음으로 특별히 응원하는 친구가 있었으니 내 아들도 아들의 친한 친구도 아닌 남자들이 바글바글한 이 놀이판에 과감하게 학원 가방을 던지고 내기 상대를 골라 딱지를 꺼내 드는 한 여자아이였습니다.
딱지 치는 내내 과묵하게 판을 읽었으며 졌을 때는 아쉬움도 허탈함도 없이 내던졌던 가방을 다시 메고 학원으로 향하니 적어도 딱지 고수 혹은 딱지의 신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쳤다 하면 져서 딱지를 내어주니 혹시 이 불쌍한 중생들에게 딱지를 하사하고자 잠시 이곳에 머무른 신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지요.
이 친구가 판에 뛰어들 때면 나도 모르게 일어서 지켜보게 되었고 오늘도 딱지를 기부하고 쿨하게 퇴장하는 모습에는 절로 감탄하게 되더군요.
묵묵하고 봉사 마음까지 있는 이 친구가 꼭 이겨서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 마음속 깊이 응원하였습니다.
꾸준한 연습은 꼭 보답을 한다는 진리를 입증하듯 이 친구도 첫 승리를 거머쥐니 보는 제가 참으로 뿌듯했지요. 하지만 웃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한 번의 승리에 도취되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을 만큼 가벼운 친구가 아니었으니 역시 신은 신이었습니다.
불나방처럼 매일 판에 뛰어드는 새로운 친구들 덕에 아이들의 실력은 점점 늘어 100전 100승은 아니더라도 100전 50승은 하니 전리품으로 가져온 딱지들이 저희 집 거실 한쪽에 점점 쌓여 갔습니다.
다른 집 거실 풍경도 비슷비슷하니 봄부터 함께했던 아이들은 우리끼리 협회의 승인으로 드디어 중수 레벨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