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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쿠 Sep 15. 2023

나는야 슈퍼우먼

슈퍼는 사랑이다.

슈퍼는 사랑이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급히 향했던 아파트 내 작은 슈퍼. 놀이터를 지키느라 피폐해진 나의 심신을 달래주던 곳. 아이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던 상냥한 슈퍼 사장님. 아이와 다정하게 앉아 빨대 꽂은 요구르트와 카페라테를 밑바닥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다 보면 마음의 평화가 왔다. 가정의 평화를 찾아주던 슈퍼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우리의 사랑이 꽃피는 곳이었다. 우리 가족은 "슈퍼는 사랑이다"를 외치며 자주 드나들었지만, 슈퍼에 상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슈퍼마켓을 내놨다고?"

슈퍼마켓 운영은 내 인생 단 한 번 계획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다. 불확실한 미래에 확실히 없던 계획이랄까. 미지의 세계도 아닌 무관심의 세계였다. 적어도 그해 여름까지는.

"멀쩡히 잘 되는 슈퍼를 힘들어서 그만둔다고 내놨단다." 그저 지나가는 말로 사촌의 소식을 전하는 엄마와 달리 엄마의 입을 통해 나온 단어 하나하나가 나의 귀에 콕콕 박히었다. 특히 '잘 되는'이 부분. 잘 되는 이 어느 정도 잘되는 것일까? 남에게 손 안 벌리고 먹고 살 정도인 걸까? 아니면 건물이라도 올릴 만큼일까? 추측도 기타 설명도 필요 없었다. 낮에는 카운터에서 돈을 세고 밤이면 돈 세는 기계가 밤새 돌아가는 장면을 허공에 펼쳐 보이며 제멋대로 잘되는=건물주로 정의를 내렸으니까. 조금 고민을 해보자. 건물 올리기 위해서 내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결단의 시간!

1년을 발품 팔아 마음에 드는 집을 계약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이사 전부터 정을 들였던 곳이다. 결혼 후 장만한 첫 집에 대한 각별함은 무심한 남편마저 "그동안 고생했다"며 감격할 만큼 감성에 취하게 했다. 남편은 얼마 전 연봉을 올려 받아 이직까지 한 상태라 모든 것이 잘 풀려 만족스럽고 평온한 나날이었다.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는 현재였다. 그저 내 안의 욕심이 컸던 것인지, 안정적인 현재의 삶과는 별개로 미래가 불안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데스트니~ 운명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잘 되는'이 단어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덥석 달려들 수도 없었다. 사촌의 마트는 전라도 광주에 위치했고 우리는 용인 수지에 살았으니 몇백 킬로 떨어진 낯선 곳으로 이사는 큰 결심을 필요로 했으니까. 1년, 덜도 더도 아닌 딱 1년을 새집에 산 지금, 두고 떠나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아쉬운 것은 집뿐만이 아니었다. 결혼하고부터 살게 된 이곳에서 익숙함은? 나의 친구들은? 아이들의 친구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피로감에 머리가 지끈거려 잠도 못 자는 나날이었다. 게다가 슈퍼마켓이 뭐 대단하다고 광주까지 내려가느냐며 남들이 비웃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며칠의 고심 끝 내린 결론은 해보자는 것이었다. 돈 벌러 외국도 가는데 광주가 대수인가?


실제로 난 20대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자 중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작은 규모의 한국 회사에서 중국 지사에서 근무할 중국어 가능한 한국인을 찾길래 지원했다. 회사에서 보내준 비행기표와 옷가지 몇 개를 넣은 작은 캐리어 가방 하나를 들고 곧바로 중국으로 향했다. 신종 납치 수법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겠다는 도전정신으로! 한여름이 시작하기도 전인 6월의 날씨치고 숨이 막히도록 습한 공기와 찌는 듯한 더위는 고생 시작을 직감케 했다.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여름 더위에 대한 첫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회사 이름을 쓴 팻말을 든 사장님과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첫인사를 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간략하게 설명 들은 사무실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페인트칠된 하얀 네 벽만이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역시 고생 시작이구나. 앞으로 중국에서 살아갈 날이 막연할 정도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다음날부터 사장님과 책상과 사무 가구를 샀고 직원을 구하고 밥 해줄 아이(아줌마)를 찾았다. 몇몇 직원들과 함께 묵을 아파트를 구하고 살림살이를 채워 넣었다.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에 방 계약부터 회사 인테리어까지 모든 것을 배우고 겪으며 외로움과 싸우는 중국 생활의 시작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시작했던 중국 생활과 비교하면 광주는 앞날이 보장된 꽃길 아닌가. 이미 기반이 갖춰져 있는 상태이니 바로 영업이 가능하잖아? 게다가 같은 하늘아래 대한민국땅이니 적어도 중국처럼 낯선 도시는 아닐 것이다. 모든 상황이 내가 건물 올리기 위한 완벽한 조건이었다. 하늘이 주신 기회를 날려버릴 순 없지. 10년만 고생하자 다짐했다. 중국으로 출국 때와 달리 이번엔 온 가족이 몇백의 이사비용을 지불하며 낯선 곳으로 떠났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 미지의 세계를 향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도전정신은 그때와 같았다. 엄마로부터 잘되는 슈퍼를 내놨다는 말을 들은 지 한 달 만에 광주로의 이사를 마치고 마트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격언은 불변의 진리임이 틀림없다.


솔직히 자신 있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식당을 운영한 부모님 덕에 어려서부터 손님 대응 경험이 많아 금세 적응할 거로 생각했다. 단지 식당과 마트라는 업종만 다를 뿐 자영업이라는 큰 틀은 같으니까. 하지만 나의 오만한 자신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세상이 곧 참교육을 시켜주더라. 잠시 부모님을 도와드린 것과 내가 직접 운영하면서 느끼는 자영업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천지 차이였다. 호기로운 마음과 달리 현실은 실수에 실수를 더하는 초짜일 뿐이었다. 경력자라고 자부했지만, 무례한 손님과의 다툼, 아르바이트생과의 갈등은 산 넘어서 산이었다. 하루 16시간 365일 영업방침은 자유를 박탈당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게 했다. 친구들처럼 비행기 타고 여행 가고 싶다는 아이들 투정에는 자괴감과 후회로 며칠은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재건축 바람 앞에서는 말은 안 나오고 눈물만 나오더라. '잘 되던' 마트는 코로나를 지나 지금의 불경기에 이르러서는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10년 살이 우리 계획은 이번에도 확실히 불확실해졌고 큰돈 벌어 되돌아가겠다는 나의 바람은 바람 따라 날아가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오늘을 버티고 작은 희망에 내일을 기댈 뿐이다.


그렇다고 우울한 상황에 같이 기분이 다운될 필요는 없다. 모든 일에는 장단이 있지 않은가? 지난 시간이 모두 헛된 건 아니다. 손님들과의 소통으로 마음 따뜻하고 웃을 일이 많았다. 교류를 통해 깨닫는 사람에 대한 진심. 자영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실무 경험은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로의 재진입은 에너지 충전과 무기력 방전으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몸은 피곤했지만. 가장 즐거운 일은 손님들과의 교류다. 손님은 왕이라지만 나와 특별히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정을 쌓는다. 지난 몇 년 동안 훈훈한 사연부터 안타까움에 가슴 저리던 사정을 이웃과 함께 했다. 그렇게 나는 진정 우리 동네의 슈퍼우먼이 되었다. 나와 이웃의 삶을 통해 같이 공감하고 웃고 울고 희망을 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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