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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쿠 Oct 12. 2023

공병대전

: 공병 어떻게 처리하시나요?

"이게 뭐야?"  

카운터 한쪽 벽면에 붙여진 A4용지 위에 작은 단위의 숫자가 가득해 남편에게 물었다.

"OO 손님이 소주 사 간 날짜와 개수"

"그걸 왜 적는데?"

"공병을 너무 많이 가져오니 계산을 해보는 거야."


주와 맥주를 다 마신 공병을 가져오면 소주는 병당 100원, 맥주는 130원을 계산하여 돌려준다. 우리 가게 주류 소비층을 분석하자면 막걸리를 제외한 소주, 맥주를 가장 많이 사 가는 연령대는 젊은 층이다. 그렇다면 공병을 가져오는 연령대도 청장년층이어야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젊은 친구들이 공병을 가져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원룸의 분리수거장에 정리하여 버리는 게 그들의 공병 처리 방법이다. 그럼, 공병은 누가 가져오는 걸까? 바로 원룸 건물주들이다. 쌀 포대에 공병을 가득 채워 손수레에 끌고 오는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땐 폐지 줍는 할머니라 생각했다. 가게 앞에 모아 둔 빈 박스들을 리어카에 수북이 쌓아도 돈이 안 된다는 뉴스를 몇 번 본 적이 있는 터라 돈이 더 되는 공병 환불은 사정이 어려운 할머니에게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다. 여러 번 공병을 주고 갔던 안타까운 사정의 할머니가 건물주였다는 반전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 원룸에 사는 사람들이 여기서 산 거잖아. 누구 가져오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애들은 내가 꼭 이 슈퍼를 가라고 알려주니까 나도 한몫하는 거지."

직접 산 것도 아니면서 왜 가져오시냐고 따져 묻기 전에 선수 치는 손님의 앞뒤 논리가 딱 맞다. 우리는 공병을 받아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고 건물주는 재활용 처리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 게다가 투자금 없이 돈을 버는 재활용 처리라니 나라도 마트로 가져올 만하다. 


소주 공병 100개면 현금 만 원이다. 건물주는 만원을 포인트로 넣어두고 필요한 물건을 사며 포인트 차감을 한다. 포인트가 떨어질 때쯤이면 다시 공병을 가져온다. 자기 돈을 더 얹어서 물건을 사는 경우는 없다. 평소 우리 마트에서 장 보는 일도 없다. 건물주의 철저한 자금 관리 앞에서 한 번씩 사소하면서도 오묘한 감정들이 꿈틀거리곤 하는데 서로의 의무에만 충실하기엔 여러 복잡한 감정을 가진 동물 이어서였을 테다. 조금은 얄밉지만 어쨌든 우리 가게에서 사 간 술병이며, 환불도 아닌 물건 구매로 이어지니 그런 하찮은 감정쯤이야  억누르고 웃으며 맞이할 수 있다.



감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나와 남편의 작은 마음에 씨앗을 심고 영양분을 주는 유형은 따로 있는데 바로 위에서 말한 OO 손님이다. 우리 가게 건너편에는 아주 오래된, 이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슈퍼가 하나 있다. 같은 업종이지만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을 만큼 작고 오래된 슈퍼다. 아침 오픈 시간에 마주하면 웃으며 인사하고 본인의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건을 우리 가게에서 사 가기도 한다(회원등록도 되어 있다). 그 슈퍼는 담배와 소주, 믹스 커피 정도를 파는, 이제는 슈퍼의 기능보다는 주변 가게 친구들끼리 막걸리 한잔하는 장소로 쓰이며 겨우 유지하는 정도이다.


OO 손님(공병 손님이라 칭하겠다.)도 그 친구 중 한 명이다. 우리 가게와 그 슈퍼는 불과 폭 4~5미터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위치 특성상 일거수일투족이 서로에게 오픈된다. 하여 오후부터 시작되는 막걸리와 소주 잔치를 우리는 의도치 않게 매일 목격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거기서 같이 마셨거나 그 슈퍼에서 사서 집에서 먹었던 소주병을 우리에게 가져온다(그 슈퍼는 공병을 받지 않는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해석된다. 친구 돈도 벌어주고 공병 손님도 벌고. 그런데 우리의 기분은 어째 깔끔치 못하다. 차라리 못 보았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내 눈으로 보고 나면 달라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2~3년은 모른 척 받았다. 한데 어떤 계기로 평소와 같았던 그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남편이 지금껏 문제 되지 않았던 일에 대해 새삼스레 문제를 제기했다.

"손님. 그동안은 그러려니 했는데 앞으로는 손님이 사 가는 소주 개수를 적어 두고 그만큼만 받을게요."

"어머 무슨 소리야? 이거 다 여기서 산 거야. 사람을 뭘로 보고 그래?"

남편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화들짝 놀란 공병 손님이 반격에 나섰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가게에서 두 병을 사 가고 다음날 다섯 병을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공병을 그냥 가져오기에는 미안했던 것인지 우리 가게 소줏값이 300원 더 싸서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작은 슈퍼는 저녁 일찍 문을 닫아서 밤에 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쨌든 남편의 선공에 당황한 손님은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본진으로 돌아가야 했다. 조금만 더 당당했다면 공병 손님이 승리했을 텐데 약한 마음이 발목을 잡았다.

"마트가 공병을 받으면 그만이지? 어디서 산 걸 왜 따져? 이런 식이면 신고할거야!"

법적 의무를 따져 묻는다면 우리는 을의 입장이 된다.(마트는 구입처에 상관없이 공병을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묵인했던 건 수년간 같은 동네에 살았던 이웃끼리 백 원짜리 공병 때문에 볼썽사나운 일을 더 진전시키고 싶지 않아서였을 테다. 아니다. 2보 전진 위한 1보 후퇴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싸움은 시작되었고 내용은 이러했다.


7월 15일 소주 6병

7월 16일  공병 3병

7월 20일 소주 3병

6-3+3=6병 남음.


상당히 앙증맞은 숫자 내역을 카운터 벽면 한쪽에 붙여 놓고 공병 손님 올 때마다 수량을 확인시키니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단언컨대, 남편은 내가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을 아주 능청스럽게 잘 해내는 능력이 있다. 한쪽이 선전포고했고 상대도 받아들였지만, 두 쪽 다 독기를 품고 하는 전쟁은 아니다. 슬그머니 서로 간을 보고 상대의 간이 세다 싶으면 언제든 태세 전환을 할 수 있는 정도, 슬슬 비위를 맞추며 눈치껏 큰 싸움을 피하는 전쟁이었다. 조조와 유비의 적벽대전만큼이나 큰 전쟁이 될 것 같아, 이 조용한 동네가 아수라장이 될 것 같아 극구 말렸던 싸움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의 예상은 또 빗나가고 있었다.


공병대전은 너무나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공병 손님은 어느새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언제 몇 병을 사 갔고 몇 병을 돌려줬는지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공병 손님이 백기를 들고 항복한 것으로 봐야겠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패배를 인정한 건 아니지만 남편의 승리로 봐도 무방하다. 사실, 공병 몇 병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저 얄미움에 작은 마음이 잠시 반응했을 터이다. 공병 손님도 본질을 간파한 것인지 크게 기분 상해하지 않고 장단을 맞췄다. 지금도 우리 가게에 오고 웃는 얼굴로 인사한다. 이해한다는 뜻이겠지. 주변 상가 사장님들은 장사만렙으로 몇십 년 동안, 이 동네를 지키는 분들이다. 우리의 장사 레벨을 햇병아리 짹짹 정도로 이해하고 때로는 면전에서 "염병하네"로 시원하게 일갈하는 오늘도 참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이다. 그리고 작은 슈퍼가 올여름 폐업했다. 이제는 마음 편히 술을 사고 빈병을 가져오니 웃을 수밖에.


손님에게 받은 공병은 박스에 정리하여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2주에 1번 술을 발주할 때 공병 처리도 같이하게 되니 한 번에 몰리면 쌓아 둘 자리가 없다. 그럴 땐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음 날짜를 잡는다. 지난주엔 평소 술을 잘 사 가시는 분이 소주 18박스를 가져와도 되냐고 물었다. 18병이 아닌 18박스라니? 창고 한쪽을 꽉 채우는 양이기에 다음으로 미루자 했더니 손님도 둘 자리가 없단다. 명절 앞두고 청소해야 한다고. 집보다는 창고가 나을 듯하여 가져오시라 했다. 역시나 기존 공병에 18박스가 더 해져 창고가 꽉 차 숨이 막힌다.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서 공병 거절은 정말로 장소가 부족해 난처한 경우가 아닐지 싶다.


받은 공병은 소주 12원, 맥주 13원의 수수료 값을 받고 주류도매사에 넘긴다. 오늘  공병 영수증을 참고하자면 소주 320병 수수료 3,840원 맥주 12병 수수료 156원을 받았다.

 

공병 정리에 쏟는 노동과 차지하는 면적을 계산하면 돈을 버는 품목으로 보기는 어렵다. 돈벌이 수단이 아닌 자원 순환을 위한 중간 역할이라는 보람으로 하는 일이다. 집에 쌓인 공병을 마트로 가져오면 돈도 벌고 지구도 살리는 일거양득인 만큼 원룸 친구들이 가져오길 바란다.


단, 몇 가지 기본 조건이 있다.


1. 하루 최대 30개로 정해져 있다. (단골 마트라면 상의하에 때에 따라 수량을 조절할 수 있다.)

2. 병에 100원, 130원 등 가격이 적혀 있어야 한다. 가끔 아무 유리병이나 가져오는 경우가 있는데 안 된다.






3. 병의 크기에 따라 보증 금액도 다르다.


4. 참기름병으로 쓴 소주병, 담뱃재로 가득한 맥주병은 받기 거북하다. 물론 깨진 것도 안 된다.  

   공병 회수는 재사용을 목표로 한다. 기본적으로 깨끗한 공병 회수가 원칙이다.



회수된 공병은 어떤 과정으로 다시 재활용될까?

요즘 마트, 편의점뿐 아니라 공병을 회수하는 장소가 늘고 있다. 자원순환 보증금 관리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으니 참고하여 돈도 벌고 지구도 살리는 기쁨을 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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