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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Feb 22. 2021

즐거운 고생

  전에 없던 진풍경, 개개인이 표준 반주 음원에 맞춰 노래나 연주 영상을 찍은 후 모자이크처럼 하나로 합쳐 합주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작년에 교회 성가대와 멀리에서 모이는 앙상블 연주회 두 군데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영상 찍을 때는 자꾸 틀려 여러 번 찍느라 힘들지만 합쳐 놓으면 그럴듯하고 보람도 있고 한 명 한 명의 노력이 느껴져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이번에도 같은 곳에서 연주가 있어 엊그제 영상 두 개를 녹화해 보내고 일요일에 네 개를 더 찍을 예정이었다. 이번 곡들은 좀 난이도가 있고 길어서 찍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점심 먹고 오후부터 시작한 게 저녁 시간을 넘겼다. 중간에 조금만 이상해도 새로 찍다 보니 그런 것이다. 7시쯤 세 번째 곡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촬영이 멈췄다. 경고 문구를 읽어 보니 폰 용량이 가득 찼다는 것이었다. 두 개를 더 찍어야 해서 그동안 찍은 사진과 영상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클라우드에 올리고 지우고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하고 겨우 세 번째 곡을 찍고 네 번째 곡 한 번을 찍었는데 마음에 안 들어 다시 하는 중 경고 메시지가 또 떴다. 앱도 지우고 카톡 대화방도 나갔는데 변함이 없었다. 포기하고 그냥 차선의 것이라도 편집해서 이메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앞뒤 조금씩 지우고 저장을 누르니 또 용량 부족으로 저장이 안 되었다. 일단 네이버 클라우드로 보낸 후 컴퓨터로 지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클라우드에 올렸는데 컴퓨터로 다운로드하여 열었더니 파일이 하나 빼고 다 손상이 되어 있었다. 폰에 당일 찍은 영상들도 많이 지워 남지 않은 줄 알고 망연자실해했다. 폰을 바꿔 다음날 다시 찍어야 할 것 같았다. 곡 셋은 시일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늘 공짜폰 아니면 제일 싼 걸로 샀던 나는 그동안 만족하면서 썼는데 용량에는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즐겨 쓰던 폰 회사가 폰 만들기를 중단해서 할 수 없이 차선책을 찾던 중 줌과  연동이 된다는 폰을 최신 기종 아닌 걸로 주문을 해버렸다. 다음날 찍을 생각으로 로켓 배송 중 찾은 것이다. 바꿀 때가 되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로켓 배송으로 사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었다. 최신 기종은 너무 비싸서 예전 것으로 주문하고 케이스와 강화유리필름까지 샀다.

  오늘 이메일을 못 보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혹시나 하고 보니 폰에 있는 파일은 손상이 되지 않고 하나씩은 남아 있었다. 고생한 게 모두 헛수고였다는 생각에 허탈했는데 희망이 생겼다. 편집을 해서 저장하려면 한 곡당 앱을 다섯 개 이상씩 지워야 했지만 어차피 새 폰에 다시 깔면 되니까 과감히 지웠다. 겨우 앞뒤를 조금씩 잘라 내고 폰으로 바로 이메일을 보냈다.

  모두 끝내고 보니 열 시 반이 되었지만 고생했던 영상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마음에 쏙 들지 않아 다음 날 다시 찍을 생각도 해 보았다. 고생은 했지만 왠지 모를 보람도 있는 날이다. 김영하 님의 <여행의 이유>에 나온 말을 떠올리며, 잘 찍혔으면 잘 보내면 되고 다 날리면 그게 또 글 소재가 되는 것이니 손해 볼 건 없다는 긍정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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