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를 잘 연주하기 위해서는 많이 들어야 한다. 내가 존경하는 대학원 선배 언니는 학부 시절 피아노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피아노 학원을 하다가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어 관현악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바이올린을 워낙 힘 있게 잘 연주하고, 음정도 정확할뿐더러 감정 표현도 너무 잘해 어릴 때부터 한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고 해서 놀랐다. 더불어 늦게 배우기 시작한 나도 희망을 갖게 되기도 했다. 동기 한 명과 그 선배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무척이나 친하게 지냈는데 공교롭게 이름 이니셜이 셋 다 J.H. 여서 다음에 JH 바이올린 트리오를 만들자며 뭉쳐 다녔다. 만나면 침을 튀겨 가며 늘 하던 것이 음악과 연주곡, 연주자, 바이올린 이야기였다. 알고 보니 선배 언니는 대학 시절 클래식 카페에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연주 영상을 보는 게 일과였다고 했다. 그렇게 수없이 들은 것이 몸에 밴 것이다.
나도 음악학교에 다니면서는 연주회를 즐겨 보러 다니고, 유튜브로도 자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많이 보았다. 아무래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가장 먼저 했으니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규모 악단의 연주는 활의 파도에 귀도, 눈도 즐거웠었다. 가끔 오페라 공연도 보러 갔는데 사람의 목소리라는 게 얼마나 좋은 악기인지 알 수 있었고, 그중 바그너의 탄호이저의 감동은 아직도 남아 탄호이저 서곡만 들으면 당시 수많은 연주자가 내뿜던 열기와 합창단의 감격, 그리고 테너의 연기와 열창을 맨 앞에서 보던 그때로 되돌아간 듯 생생하다.
대학원 졸업연주회를 앞두고는 독주회를 줄기차게 보고 다녔다. 인터파크 예매를 한 달에 두세 번 할 정도로 자주 보러 갔다. 입장료가 비싼 연주자의 공연이 대체로 좋았으나 가끔은 귀국 연주회도 훌륭했다. 주로 맨 앞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보았기 때문에 디테일한 비브라토나 활 테크닉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았고, 어떤 연주자에서건 배울 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가장 인상적인 독주회는 부천 시향 악장의 공연이었다. 브람스 소나타를 모두 외워서 연주했는데 같이 간 선배 언니가 CD를 틀어놓은 것 같다며 극찬을 했었다.
사실 딱 한 번이긴 했지만 최악의 공연도 있었다. 관람료와 한 시간 반의 시간이 아까웠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유치원 재롱잔치를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음정은 안 맞고, 활은 가운뎃 부분만 사용하는 소심함의 극치에 감정 표현은 찾을 수 없고 비브라토도 서툰, 가만... 이건 바로 나의 연주가 아닌가. 갑자기 섬뜩하면서 나의 졸업연주회도 혹시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졸업연주회를 앞두고 하루 네 시간 연습에 돌입했다. 실망스러운 연주 관람의 효력이라고나 할까? 사실 학교 근무를 하면서 연습 시간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7월에 졸업연주회를 해야 했던 나는 그 해 4학년 담임으로 3월부터 가장 바쁜 한 학기를 보내야 했다. 다행히 반 아이들이 너무 착해서 마음고생은 하지 않았는데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까지 집 앞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아침을 먹고 챙겨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가족의 저녁을 챙기고 다시 연습실에 가서 두 시간 연습을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때가 또 있을까 싶다. 지금은 매일 한 시간 연습하기도 쉽지 않다.
앙상블 활동을 좋아하는 나는 요즘 앙상블 공연을 가끔 본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더 자주 갔을 텐데 음악회에 자주 못 가는 것이 아쉽다. 재작년 연세대학교 안에 있는 백주년 기면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실내악 콘서트 시리즈가 있었는데 그때 만난 피아노 트리오 공연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훈남 첼리스트 윤석우와 그 전에도 다른 공연에서 한 번 본 적 있는 자그마한 키의 야무지고 파워풀한 안세훈 바이올린 연주자의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연주, 특히 첼로 독주가 나오는 2악장이 나올 때 눈물이 저절로 주르르 흘러내리던 경험은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요즘은 서초 실내악 축제를 즐겨 보러 다녔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진 틈을 타 콰르텟이나 피아노 트리오 공연을 보았는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가 참신하고 열정적이었다. 무료 공연이라는 것, 그리고 코앞에서 숨소리까지 들으며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거대한 공연장이 아닌 카페 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도 좋다. 올해도 공연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여기서 잠깐, 나의 공연은 어땠을까 떠올려 보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적은 없지만 세종문화회관에서 시민 오케스트라로 참가해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한 적은 있다. 다른 오케스트라 공연은 사실 여기저기 단체에서 수도 없이 많이 했다. 노 페이로 부를 수 있는 열정적인 연주자라 불려 다닌 적도 있었다. 큰 공연보다는 병원이나 아동 보호소에서 했던 봉사연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카페에서 했던 연주도 설레었었다. 잘하지 못하는 바이올린 주자이지만 수준급 플루티스트들과 함께 연주했던 즐거웠던 날들. 가장 하고 싶은 공연은 내가 좋아하는 트리오나 콰르텟이다. 현들의 향연. 마음이 맞는 멤버를 만나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