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악기를 시작했으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스물아홉에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나는 마음은 굴뚝이되 몸이 안 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내가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면 지금까지 계속 재미있게 하고 있을까? 그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전공을 한 사람들 중 연주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고 심한 경우 악기를 처분하고 더 이상 켜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뒤늦게 배운 색소폰에 폭 빠져 배우기 시작한 지 이 년 만에 유튜버로 매일 연주 영상을 올리는 분도 계신다. 바로 나의 아버지다. 교대를 졸업하시고 초등교사와 교장을 정년퇴임을 하신 덕분에 어렸을 때 가끔 피아노로 반주를 하고 오선지에 동요를 작곡하신 걸 본 적이 있긴 하지만 특별히 악기라고는 리코더밖에 연주하지 않으신 분이 70이 넘은 나이에 색소폰을 구입해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을 하시며 유튜버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나로서는 악기 배우기에 특별한 나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손주에게서 스마트폰 영상 편집 기술을 배워 날로 세련된 영상을 만들어 올리신다. 아버지 채널의 구독자인 나의 핸드폰에서는 가사까지 붙은 나훈아의 신곡 테스 형이 울려 퍼지고 있다.
아버지가 내 나이보다 조금 많았을 때 색소폰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나의 사촌오빠가 운영하던 가게에 장식되어 있던 색소폰을 아버지에게 선물한 것이다. 악기를 받아 들고 아버지는 색소폰 학원을 찾아갔다가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원장이 이렇게 저렇게 들춰 보더니 ‘이건 악기라기보다 장식품이네요. 소리가 잘 나지 않을 겁니다.’하고 말한 것이다. 기억으로는 학원비를 내고 그냥 나왔다는 것 같았다. 너무 창피한 마음에 악기를 버리고 더 이상 찾지 않으신 것이다. 만약 그때부터 색소폰을 하셨다면 지금은 더 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그렇듯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 했으면 더 잘했을 것 같아도 지금 했기에 더 열정적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간혹 무슨 일을 할 기회가 생긴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갈 수도 있고, 어떤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다. 진작 했으면 어떨까 싶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지금이기에 더 좋다고 생각해야 정신 건강에도 좋다. 중년의 나이에 악기를 접하게 되면 어릴 때 배우는 것보다는 손가락 근육이 느리게 움직일 수도 있고, 손가락이 잘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연주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도 미묘한 음색의 맛을 내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첫째, 좋은 악기를 구입할 수 있다. 악기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대부분 쓸 만한 악기들은 고가이다. 중년이라면 자신을 위해 악기를 구입하는 데 젊을 때보다 조금 더 투자할 수 있다.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인 사람이 고가의 악기를 구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악기를 배울 때는 도구나 장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학생이나 젊은이에 비해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다. 자녀가 어릴 때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내가 즐겨 가는 네이버 바이올린 카페에는 아이와 함께 연습을 하거나 잠자는 틈을 이용하는 분들도 있지만 경험상 아이들 키우느라 바쁠 때는 취미생활을 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혼자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 때로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중년 분들이 있다. 악기를 배우고 연습한다면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셋째,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부모를 본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고, 본받고자 한다. 나의 둘째도 대학 가기 전 첼로를 잠깐 배우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이 재능이 뛰어나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모습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부모를 보는 자녀는 응원하는 마음과 세상에 대한 도전정신을 배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든든한 노후 대책이 될 수도 있다. 은퇴가 빨라진 요즘 일하지 않는 젊은 노인이 많다. 그 많은 시간을 무료하게 TV로 보내기에는 남은 생이 너무 아깝다. 물론 요즘 은퇴하신 분 중 새로운 아르바이트나 운동, 그동안 하지 못했던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는 분들도 많다. 그중 하나가 악기 연주가 되면 좋은 점이 또 있다.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고 머리를 써야 하는 악기 연습은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악기 동호회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한다면 사회생활도 지속할 수 있다. 내가 한동안 열심히 활동했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도 70대 여성이 있었다. 얼마나 열정적이신지 향상음악회 때마다 바이올린 독주를 해 젊은 친구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혹시 예전부터 악기를 하나 배우고 싶은데 망설여온 분이 계신다면 과감히 시도해 보시길 권한다. 악기 배우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물론 제대로 배워 잘못된 자세로 인해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는 있다. 악기를 선택함에 있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나이에 비해 너무 까다로운 것보다는 배우기도 좋고, 연습도 즐거운 것이면 더 좋겠다.
아버지의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