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있는 학교에 오기 바로 전에 5년 동안 근무했던 학교에 부임하던 첫 해에 난 얼떨결에 학생 챔버를 창단하게 되었다.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열정만으로 아이들에게도 함께 연주하는 기쁨을 맛보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시기 즈음에 본 오래된 베네수엘라의 기적 ‘엘 시스테마’ 다큐멘터리가 나의 마음에 부채질을 했다. 처음에는 꿈에 부풀어 아이들이 너무 많이 오면 오디션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모집 안내장을 보냈는데 오디션 날 딱 두 명이 왔다. 바이올린으로 지원한 6학년과 플루트를 부는 3학년, 둘 다 학교 선생님들 딸이었다. 좌절감이 밀려왔고, 두 명으로는 챔버 운영이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었다.
학교 주변에 아파트가 생기면서 새로운 곳에 건물을 지어 이전 개교식을 하던 해여서 지원자가 없는 사정도 모르고,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을 지도해 그날 연주를 해 보라고 했다. 그 학교에서 오래 근무한 적극적인 교무부장님이 사정을 듣고 아름아름 물어 10명의 아이들을 모집해 주셨다. 첼로를 켜는 쌍둥이(꽤 수준급)와 바이올린 6명, 플루트 1명, 피아노 1명 이렇게 총 10명의 아이들과 함께 우리는 난이도가 높지 않은 두 개의 곡을 연습했고, 열정만은 대단했던 아이들은 첫 무대를 멋지게 장식하고, 큰 박수를 받은 무대 맛을 보게 된 아이들은 이후 등굣길 음악회와 지역 경찰서 행사, 졸업식 연주, 전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그리고 교육청 예능발표회에 참여하게 된다. 방학마다 캠프를 열고 파트별 강사님들을 모셔 집중 레슨과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회비는 전액 무료였다. 예산을 여기저기에 신청해서 조금씩 받아 간식도 사 먹이고, 대회에 나갈 때는 옷도 맞춰 빌려 입었다. 예산이 많이 들어온 해에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비롯해 타악기까지 구비한 적도 있다. 연습 있는 아침이면 8시도 되기 전에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지도해야 했지만 보람 있는 날들이었다. 아이들의 실력이 쑥쑥 늘고, 서로들 음악에 대한 열정을 뿜어낼 때면 고생했던 일들을 모두 잊을 정도로 행복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지원자의 수는 크게 늘었고, 첫 해 15명으로 마무리했던 이후 20명, 30명, 내가 그 학교를 떠나기 전 마지막 해에는 거의 45명 정도가 되었다. 그 해에는 내가 대학원 졸업연주회가 있어 직접 지도하지는 않았는데 이후에 맡은 강사님이 아이들을 잘 가르쳐 매년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내가 만든 오케스트라가 점점 활성화되는 것을 보는 일은 어떤 다른 성취감보다 큰 일이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학교 오케스트라가 올스톱인 것이 너무 안타깝다. 아이들이 악기를 통해 얻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캠프 때마다 밥을 나눠 먹으며 아이들과 수다 떨던 일, 향상음악회 때 매년 실력이 나아지는 아이들의 연주를 보는 일, 교육청 예능발표회로 큰 무대에서 박수받던 일, 부모님들의 격려와 감사, 모두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졸업한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서 연주를 할 기회가 없어 악기를 그만두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교육청 예능대회가 학생 천 인 음악회로 바뀌는 바람에 중학교에 가서도 개인 지원으로 교육청 음악회 행사에 참여하긴 했지만 학생 오케스트라가 학교마다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사실 학교에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데는 선생님의 헌신이 필요하다. 돈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실력이 뛰어나서 되는 일도 아니다. 먼저 교사가 열정이 있어야 하고, 학부모나 학교의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 담 교사를 하면서 교육청 일을 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지도하는 일은 일에 대한 열정 없이는 어렵다. 강사에게만 맡기기도 쉽지 않다. 학교 건물과 보면대를 비롯한 여러 기물을 이용하고, 아이들의 스케줄까지 고려해야 하는 학교 오케스트라에는 교사의 관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다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그때는 무슨 열정으로 그렇게 밤낮으로 뛰어다녔는지 다시 할 용기가 아직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시작한다면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학교 오케스트라로 수고하시는 모든 선생님들과 강사님들께 힘내라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