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낯선 곳에서 낯선 냄새를 맡다

by 와리

여행의 장소는 그곳의 내음으로 기억된다. 비행기에서 공항에 내려 이런저런 수속을 마친 다음 공항의 유리문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곳의 공기와 냄새와 바람이 (그리고 가끔은 먼지가) 훅 끼쳐온다. 여행에서 가장 두근거리는 순간,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순간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일수록 그곳의 낯선 냄새가 민감하게 느껴진다. 풀과 나무 냄새일 수도 있고 오토바이 배기가스 냄새일 수도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의 향료 냄새일 수도 있다. 그 온갖 냄새들이 뒤섞인, 온도마저 낯선 공기를 한숨 크게 들이마시고 몸 전체로 그 장소의 공기를 느끼는 순간 나는 내가 낯선 장소에 도착했음을, 지금 내가 이 장소에 존재함을 온몸 가득 실감한다.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에서는 내가 지금 어디에, 어떤 식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내가 나의 몸으로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것은 온통 낯선 것들로 가득한 어딘가의 낯선 장소에서다. 존재의 실감은 감각의 예민함으로 이어지고, 주위의 새로운 정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동안 두뇌는 오랫동안 쓰지 않던 영역을 삐걱삐걱 서서히 가동하기 시작한다. 감각이 민감해지고 뇌가 깨어나는 동안 마음의 구석진 곳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는, 그 존재조차 잊어버린 나의 조각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여행은 일상에 치여 잊고 있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는 말은 닳고 닳아 진부해질 대로 진부해져서 그 본래의 의미마저 퇴색되었지만, 어쩌면 그 퇴색된 의미가 진실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에 와서야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기대고 있던 사회의 틀, 기대에 맞춰 어떻게든 나를 꾸며내야 하는 필요, 나를 나로 유지해 주었던 버팀목이 전혀 없는 이 낯선 장소에서. 오직 내가 나로 존재하는 내면의 힘만이 남아 있고,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절실히 매달리지 않는다면 나라는 존재가 훅하고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이곳에서.


어쩌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니 두려워 말고 낯섦을 향해 여행을 떠나자. 익숙함과 편안함은 가능한 한 집에 두고 가자.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낯설고 불편한 곳에서 마주하는 진짜 나는, 온갖 역할과 틀과 꾸밈과 습관을 내려놓고 마주하는 날것의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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