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국수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찾는 궁극의 한 그릇
어느 여행 안내서였나, 태국의 쌀국수는 모두 똑같은 조미료를 써서 맛을 내니 어딜 가도 맛이 똑같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태국 사람이지만, 그 글을 봤으면 얼마나 화가 났을까? 화를 내야 마땅하다. 나조차도 화가 났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국밥에는 모두 똑같은 조미료가 들어가니 어딜 가나 맛이 똑같다는 말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쌀국수를 사랑하는 터라 태국의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모든 사람을 붙잡고 묻는다. “이 동네 쌀국수 맛집은 어디예요?” 정말 우리나라 국밥집처럼 태국 사람들도 단골로 찾는 쌀국숫집 하나 정도는 갖고 있기 마련이고 또 그 단골집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니, 내 순수한 질문 하나가 식당 직원들 사이에, 손님들 사이에 때 아닌 쌀국수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단순히 쌀국수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을 만큼 그 안의 세계가 얼마나 깊고도 넓은지. 캐고 캐고 또 캐도 아직 뭐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쌀국수의 광산. 나처럼 쌀국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 나라를 여행하는 큰 즐거움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알려진 꿔이띠아오라고 하는 쌀국수만 해도 국물 재료와, 고명과, 국수 종류와, 양념 종류에 따라 무한한 조합을 만들 수 있고 여기에 태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식탁 소스(액젓, 설탕, 파란 고추 식초, 빨간 고추 식초, 고춧가루 등등)를 어떤 비율로 얼마나 넣는가에 따라 개인의 취향에 맞추어 여러 가지 맛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오래된 가게들은 자신만의 양념장을 따로 구비하고 있으므로 선택지가 한층 늘어난다.
가장 흔하게는 돼지고기 국물이지만 이슬람 상권에 가면 간장색을 띤 소고기 국물로 바뀌고, 그게 업그레이드되어 소꼬리 국물이 나오기도 한다. 생선 국물이라도 해서 다 같은 생선 국물이 아니고 생선살 국물과 룩찐이라고 하는 어묵 국물이 있는데, 유명한 생선 국숫집들은 모두 그 집만의 고유한 국물 맛으로 인기를 끈다.
여기에 약간 마이너하지만 닭 국물로 만든 쌀국수도 있다. 까이뚠이라고 하는 이 요리는 태국 쌀국수와는 사뭇 다른 중국풍의 한약재 향신료 향기가 가득한 국물에 오래 고아 간장색으로 조려진 부드러운 닭고기를 얹어 주는 국수다. 한편 생선 어묵 국수의 변형으로는 보통 옌타포라고 하는 분홍 소스 국수가 있는데, 모두 전래의 비법이 있는지 가게마다 맛이 다르다.
여기에 어떤 고명을 얹는지를 살피면 각각 고유한 고명의 조합으로 승부를 하는데, 무댕이라고 하는 빨간 돼지고기, 무쌉이라고 하는 갈아 놓은 돼지고기 알갱이, 룩찐 무라고 하는 돼지고기로 만든 어묵 같은 동그란 경단이 기본이고, 여기에 내장이나 선지를 얹어 약간 내장탕 느낌으로 내는 곳도 있다. 소꼬리탕 국수에는 당연히 소꼬리가 고명으로 얹어 나오고, 쌀국수라 할 수 없지만 비슷한 결의 반미(노란 달걀 국수)집에서는 돼지고기가 든 하늘하늘한 물만두 끼여우를 얹어 주는 곳이 많다. 게다가 생선 어묵 고명으로 넘어가면 면처럼 생긴 어묵, 새우살로 만든 어묵, 게살로 만든 어묵, 두부로 만든 어묵, 두부 속을 파서 그 안에 돼지고기를 채워 튀긴 고명, 탁구공처럼 탱글탱글한 흰살 생선 어묵 등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쌀국수의 범주로 함께 묶기에는 전혀 다른 요리인 꿔이띠아오 란나라든가, 오리 국수라든가, 그 안에서 하나의 경지를 이루고 있는 카우소이라든가, 카놈찐 남니여우라든가, 꿔이띠아오 못지않게 일가를 이루고 있는 국수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치앙마이에 가면 가게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큰 솥이 걸려 있고 내공이 있어 보이는 주인장이 국수 국자를 휘두르고 있는 가게를 찾아 쌀국수를 먹자. 벽 옆에 산더미처럼 그릇이 쌓여 있을 테고, 유리창을 끼운 나무장 안에 고명이 되는 재료들이 차곡차곡 놓여 있을 것이다. 먼저 국물이 있는 국수인지(남), 국물이 없는 국수인지(행)를 선택한 다음 국수 종류(센 야이, 센 렉, 센 미, 반 미)를 고르자. 고명이 뭔지 모르겠다면 냅다 ‘루엄’이라고 말하자. 그럼 가게 주인장께서 적당히 알아서 골고루 섞어 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식탁 소스를 적절히 조합하여 넣는 것을 잊지 말 것.
그렇게 쌀국수의 격전지를 돌면서 경지를 올리다 보면 어느 날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광대한 쌀국수의 바다에서 오직 한 그릇뿐인 나만의 쌀국수를. 어떤 미슐랭 식당에서도 맛볼 수 없는, 여행의 순간을 오래도록 붙들어 줄 한 그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