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마감을 했다면 어땠을까?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했겠지. 치앙마이의 새벽은 고요하면서도 소란스러우니. 동이 트는 속도에 따라 소리가 커지는 재잘재잘 새소리와, 새벽부터 부산스러운 오토바이 소리에 위로를 받으며 일을 했겠지. 지금 일하러 깨 있는 게 나만은 아니야 하고 위로를 받았겠지. 받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일방적인 연대감을 쏟아냈겠지. 그러다 동이 트고 제대로 아침이 밝으면 냉큼 배가 고파져서 노트북을 배낭에 쑤셔 넣고 길을 나섰겠지. 아침부터 지나다니는 차와 사람들을 구경하며 뜨끈한 국물을 들이켰겠지. 십여 년 전부터 자주 찾은 단골 가게. 나를 기억 못 해도 내가 기억하니 괜찮아. 하지만 나를 기억한다는 건 알고 있어. 말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채소를 더 챙겨 주고, 약간 재미있어하는 미소를 짓잖아? 너네 또 왔구나, 안 지겹니 하는.
그리고 커피 탐험을 떠났겠지. 맛있는 커피를 찾을 수 있다면 세계 어디서든 마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란타 섬에서 마감하기가 힘겨웠던 것은 근처에 맛있는 커피가 없어서였어. 방에 에어컨이 없었다든가, 하루가 멀다 하고 단수가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어. 그러고 보면 람빵에서도 일하기가 힘들었는데, 이렇다 할 커피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었을까? 매일 밤마다 출몰하던 바퀴벌레 탓이었다기보다는.
빠이에서는 무늬만 테라스인 곳에 모기장을 치고 모양만 탁자인 곳에 노트북을 얹고 허리를 꼬부려 가며 마감을 했었지만, 즐거웠어. 진하고 독하고 맛있는 모카라테가 있었거든. 오토바이를 타고 아침으로 국수를 먹은 다음 매일 그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으로 모카라테를 주문했는데, 시원시원한 성격의 카페 주인아주머니는 매일 같이 지치지도 않고 아침으로 뭘 먹고 왔는지 물었어.
그러고 보니 우본에서는 커피 말고 타이식 차를 많이 마셨는데. 그곳에는 왠지 차가 향긋하고 맛있었어. 커피 없이 마감을 했던 건 그곳이 유일하지 않았을까? 하긴 그 숙소의 정원 탁자(선풍기를 곁들인)는 커피는 필요 없을 정도로 일을 하기 좋았어. 눈앞 가득 초록색의 향연에, 시원한 바람에,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거리의 소음. 저 바깥 세계와 한 발 걸쳐 있으면서도 몰래 나 혼자 여기 숨어 있는 듯한 기분이었지. 마치 비밀의 화원처럼 말이야.
일이라는 일상이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여행이라는 비일상에 얹히면, 거기에서 그 어떤 짜릿한 설렘과 흥분감이 새어 나오나 봐. 어쩌면 생존 본능일지도 모르겠지만. 매번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심드렁해질 법한 일을 할 때도 매번 새롭게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아 마주하는 기분이랄까. 지금까지도 여전히.
낯선 환경에 나를 적응시켜 어떻게든 그곳에 유연하게 젖어 들어 나만의 일상을 만들어 나가던 순간. (자신만의 일상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마감을 지키지 못하면 탈락입니다.) 여행과 일상 두 가지를 합쳐 단계를 올린 하드코어 버전. 집에서 마감을 하던 중 갑자기 그리워진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