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의 산책 모험
“여행 가면 뭐해?”
“응, 걸어 다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행을 여행으로 규정하는 몇 가지 요소 중에는 분명 ‘걷기’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의 팔 할은 걷기와 기다리기라고 생각한다.) ‘관광’과 ‘여행’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도 바로 걸어 다니는가, 대형 버스를 타고 다니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관광’이 중간 과정이 생략된 관광지의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여행’은 목적지로 향하는 걸음 하나하나, 길목 하나하나를 여행의 일부로서 포용한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에게는 여행이란 곧 걷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지로서 치앙마이의 걷기 사정은 어떨까? 실외배변이 기본인 중형견의 견주로서 매일 마을길 산책에 단련된 몸으로 어디에서든 ‘하염없이 멍하니 터덜터덜 걷는 일’에는 자신 있었던 사람이지만 치앙마이에서만큼은 걸어 다니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날씨가 덥다. 무척 덥다. 햇살도 뜨겁다. 우기가 오면 덜 덥겠지 싶지만, 잠깐 사이 폭우가 쏟아지고 나면 배수가 잘 안 되는 길이 빗물에 잠긴다. 얼추 물이 빠졌겠지 싶어 길을 나서면 다시금 햇살이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를 뜨겁게 데우기 시작한다. 어쨌든 치앙마이는 겨울에는 서늘하기로(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에서) 유명하니 아침저녁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잠깐 난다고 해 보자. 그래서, 치앙마이의 비교적 서늘한 아침저녁을 틈타 어서 걸으러 나섰다. 그러나 길이 좋지 않다. 구색만 맞춰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인도는 찻길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고(나처럼 무릎이 안 좋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별로 넓지도 않은 공간을 전봇대, 전깃줄, 쓰레기통, 신기하리만치 둥치가 두꺼운 나무들이 나누어 쓰고 있다. 게다가 여러 입간판과 표지판들이 이리저리 난립해 있는데, 어떤 것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크고 길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 있어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멍하니 걷다가는 난데없이 간판에 얼굴을 정면으로 얻어맞을 수도 있다. 게다가 그런 인도마저 전혀 없는 곳이 많아서 좁은 골목길을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함께 써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치앙마이의 도로를 지배하는 것은 오토바이고 보행자는 도로 계급 사회의 하급 천민이다. 오토바이는 언제 어디서든 가장 우선권을 갖고 있다.)
어쨌든 나를 가로막을 것이 무엇이냐, 미로 찾기를 하는 기분으로 없는 길도 찾아 열심히 걷고 있다고 해 보자. 갑자기 개들이 짖어댄다. 쫓아온다. 앞을 가로막는다. 보통 주인이 근처에 있으면 시늉만이라도 열심히 말려 주지만 인적 드문 골목길을 터덜터덜 걷다 난데없이 들개 떼와 마주치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 무섭다. 집의 담 안에 있는 개들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담벼락 위로 고개를 비쭉 내밀고 신나게 짖어댄다. 길이 좁아 담벼락에 바짝 붙어 지나다 보면 개의 침이 얼굴에 튈 지경이다. 태국 친구 말로는 외국 사람에게는 외국인 특유의 체취가 나서 개들이 싫어하니 열심히 팍치(고수)를 먹어 태국인의 체취를 획득하라고 하는데 무척 열심히 해 봤지만 별반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습을 나타내는 바퀴벌레(엄청 덩치가 큰 녀석)들이 있다. 샌들을 신은 맨발 바로 옆으로 바퀴벌레가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발가락이 움츠러든다. 자칫하다 바퀴벌레를 밟는 일도 드물지 않은데, 그 참사의 결과를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공기가 서늘해지는 밤에는 새끼 고양이만 한 몸집의 뚱뚱한 쥐들이 출몰하여 그나마 걷기 편하다고 하는 해자 주위의 나무를 타고 오르내린다. 한 번쯤은 볼 만한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기는 하지만 걷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태국 사람들 또한 잘 걸어 다니지 않는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의 카페에 앉아 바깥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으면 더위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익어 지친 걸음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관광객이다. 태국 사람은 방금 에어컨이 나오는 건물에서 나온 양, 가뿐하고 개운한 표정으로 이마에 땀 한 방울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태국 사람도 물론 운동 삼아 걷거나 뛰기도 할 테지만 주로 공원이나 체육관을 이용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나무 그늘 사이로 열심히 뛰거나 걸은 다음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간다. 물론 한낮은 피한다.
그러므로 태국에서 걷는 것은 뜨거운 태양과 어디든 머리를 들이밀고 보는 오토바이와 외국인을 싫어하는 들개 떼와 이유 없이 싫은 바퀴벌레와 쥐와 맞서며 없는 길을 찾아내야 하는 한 편의 고난과 역경의 모험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이 흥미로운 도시에서의 걷기를 포기한다면 치앙마이의 매력을 절반도 채 못 본 채 지나치게 될지도 모른다.
체력과 모험심으로 무장하고 이 모든 어려움을 헤치고 걷다 보면 골목골목에 숨어 있는 길거리 음식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분위기가 고적한 사원이 나타난다. 이 작은 골목은 뭐지 하고 들어가 보면 갑자기 북적거리는 큰 시장이 펼쳐져 있다. 고양이가 한적하게 몸을 핥고 있는 담벼락을 자세히 보면 붉은 벽돌로 만든 옛 성터의 유적이고 그 옆에는 사람들이 가득 기다리고 있는 과일 주스 가판대가 있다(치앙마이 게이트(빠뚜 치앙마이) 맞은편의 이 작은 과일 주스 집은 동네 사람들이 공인한 맛집이다).
해자 안쪽,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골목을 걷다 보면 예쁘고 아담한 부띠끄 호텔과 카페와 빵집과 식당들이 나타난다. 나무와 도자기로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 골동품 가구들이 진열된 어두컴컴한 상점, 염색천으로 만든 가볍고 시원한 옷이 진열된 옷가게들. 개성 만점의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파는 작은 커피숍들. 걷지 않고서는, 시원한 버스만 타고 다녀서는 결코 발견하지 못할 곳들이다.
그러므로 걷자.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물과 수첩과 카메라가 든 가방을 메고, 성큼성큼 씩씩하게,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