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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디지털카메라로 담은 계절

by 한 율
사진: 한 율


빈티지 디카로 담은 풍경


지금은 작동을 멈춘 오래된 디지털카메라. 요즘 출시되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성능을 가진 2000년대의 디카. 그러나 따뜻한 질감의 아날로그 감성 사진을 추구하는 이들과 Y2K 레트로 문화의 유행으로 '빈티지 디카' 인기를 끌고 있다.


번 글에서는 빈티지 디카로 찍은 풍경사진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똑딱이'라 불리는 2000년대 디지털카메라. 카메라 셔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사진이 찍히는 간단한 조작법로 그러한 별명이 붙었다. 콤팩트한 사이즈로 휴대성에 이점이 있는 딱이 디카를 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평일 저녁 무렵, 한산한 개울가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개천을 평화롭게 거닐고 있는 오리들과 주위에 핀 작은 노란 꽃들.


사진: 한 율


작은 노란 꽃, 유럽나도냉이꽃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란색 꽃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저 노란 꽃의 이름은 무엇일까?' 생경한 노란 꽃의 이름은 유럽나도냉이였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봄꽃. 낯선 이름이나 사물은 자주 접하지 않으면 쉽게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노란 꽃이네' 하고 넘어가 버린다면 새로 접하게 되는 대상은 인식과 동시에 기억에 남지 않고 휘발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유럽나도냉이꽃'에 대해 까먹더라도 사진으로 담은 대상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 보자.


유럽나도냉이(Barbarea vulgaris)는 배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원래 유럽이 원산지이나, 현재는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북미에 자생한다. 들, 산지, 길가, 하천변 등 다양한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유럽나도냉이의 줄기는 30~80cm 정도로 곧으며 전체적으로 털이 거의 없고, 위쪽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이른 봄에 두껍고 진한 녹색의 뿌리잎이 퍼져 나온다. 유럽나도냉이의 잎은 무잎처럼 갈라지며 가장자리에 잔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유럽나도냉이꽃은 4월부터 7월까지 줄기와 가지 끝에 밝은 노란색으로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꽃의 지름은 4~6mm로 꽃받침과 꽃잎이 각각 4개씩 있다. 수술은 6개이며 그중 2개는 조금 짧다. 꽃받침 끝에는 뿔 모양의 돌기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럽나도냉이 열매의 크기는 1.5~3cm이다. 열매는 꽃대축에서 70도 정도 비스듬히 벌어져 달린다. 열매가 익으면 갈라져 씨앗을 퍼뜨린다. 이러한 특징은 나도냉이와 구분되는 점이다. 나도냉이는 열매가 꽃대에 거의 붙어 평행을 이루지만, 유럽나도냉이는 열매가 꽃대와 각도를 이루며 벌어진다.


유럽나도냉이는 흔히 '윈터크레스(wintercress)'라고도 불리며 어린잎은 샐러드나 나물로 먹기도 한다. 항산화 성분인, 글루코시놀레이트가 풍부해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다량 섭취하면 갑상선 기능 저하가 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 전까지는 잡초처럼 번식력이 강하다.


사진: 한 율


땅거미가 지는 저녁, 물 위의 청둥오리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노란 꽃''유럽나도냉이꽃'이라는 존재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시간은 물처럼 흐르고 우리는 강물을 따라 이동하는 오리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유럽나도냉이'라는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질 가능성이 높다. 먼 훗날 미래에 다시 이 꽃을 본다면 '유럽나도냉이꽃'이 아닌 '노란 꽃'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한 대상을 알아보고자 시도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삶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것들 중 기억에 담는 것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며 살고 있는가. 어둠이 드리우는 개울가엔 청둥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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