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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Aug 27. 2023

이상한 호스텔

직장수난시대 #1

* 이것은 실화이나 누군가를 폄하할 의도는 없다. 그냥 돌이켜보니 재밌어서 써볼 뿐.


유학하고 막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커다란 존재를 마주해야 했다. 나의 아버지. 머리털부터 발끝까지 닮았는데 머리털부터 발끝까지 맞는 게 없는 사람. 종종 두 마리의 개가 싸우는 것 같은 광경을 만들어내고는 하는 부녀관계.


나는 종종 아버지의 요구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싸우고 싸우고 싸우다 우리 집에 살면 빨래랑 청소랑 다 너가 해야 하고, 하지 않을 거면 내 집에서 살지 말라고 해서 그날로 짐을 싸서 집을 나와버렸다. 어렵지 않았다 그냥 싸 온 걸 도로 넣기만 하면 되니까. 귀국하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정말 홧김에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아버지가 홧김에 또는 그냥 한 말에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바스러졌다. 이번에도 역시 그 말에 마음이 뚝하고 부러졌다. 귀국할 때 들고 온 캐리어에 다시 풀었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와 고시원을 계약했다.


24살. 집을 나왔다.


새로운 1.5평 남짓 공간에서 종이를 꺼내 들고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모아둔 돈은 200만 원. 고시원비 32만 원을 빼니 168만 원이었다.


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고시원 바로 근처에는 작은 호스텔이 있었는데. 알바몬스터에서 구인광고를 발견했다. 면접을 보고 나니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사장님은 내게 호스텔을 구경시켜 주었다. 흰색이 유독 눈에 띠는 북유럽풍 인테리어에 넓은 공용 거실의 큰 나무테이블 뒤로는 와플에서부터 빵과 토스터기가 놓인 부엌살림이 있었고, 냉장고에는 계란, 음료, 잼이 구비되어 있었다. 예전에도 방학 때 한국에 와서 캠핑장이나 호스텔 알바를 종종 했었다.  빵이나 잼, 음료를 채워 넣고, 물건을 팔거나, 텐트 위치를 안내하는 일은 익숙했다. 청소 등 딱히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월급도 나쁘지 않고, 여행에도 관심이 있어서, 나랑 꽤 잘 맞겠거니 생각했다. 여행자들이 머물다 가는 공간에서 일한다니 어쩐지 멋지게도 느껴졌다.


다음날 바로 출근하라고 연락이 왔다. 사장님과 외국인 직원이 하나 있었는데, 사장님은 뭐랄까 위계질서가 좀 심한 대기업 부장님처럼 생겼고 머리는 반쯤 벗겨져있었다. 웃고는 있는데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는 타입의 58세쯤 되는 남자였다. 외국인 직원분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고 했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사장님은 나에게 간단히 해야 할 일과 예약 메일 대처법을 설명해 주었다. 잠자코 설명을 듣는데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안 적어요?”


음?! 적어야 했던 것인가? 안 적어도 기억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적으려면 펜이랑 종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산처럼 아무렇게나 쌓인 예약 종이더미에서 아무거나 집어 써도 되나? 그럼 안될 거 같은데 생각하는데 사장이 인상을 팍 쓰고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뭐지? 내가 뭘 잘못했나? 괜히 죄책감이 드는데 사장이 설명을 대충 하고 끝냈다. 사장이 말했다.


“가서 방 청소해요, 이제.”


음. 뭐지.


찝찝한 기분으로 교환학생 직원에게 방 정리 방법을 배우고 거실에 앉아 늦게나마 종이와 펜을 받아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나는 필기할 때면 꼭 펜 끝을 깨무는 버릇이 있어서 내 펜은 죄다 끝에 이빨 자국이 나있었다. 필기를 다 하고 펜을 사장에게 건네자 사장은 받은 펜을 천천히 귀로 가져갔고 내 눈은 천천히 커졌다. 슬로우모션으로 펜 끝이 그의 귓속으로 침입하는 모습이 보였고, 후비적거리는 모습에 순간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고,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펜으로 귀파기 권법이 이번은 처음이 아닌 듯한데, 아, 내가 그의 귀지를 먹었구나. 구토감이 쏠렸다.


우웩-(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섬칫하다)


그 후로 펜 무는 버릇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장님은 늘 무슨 말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봤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게 나에게 ‘어머. 사장님 정말 대단하시네요.’와 같은 반응을 원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왜냐면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마다 짜증과 심술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그런 호응법이 정말 어려운 영역의 것이었다. 성격 상 집중하면 말이 사라지는데 집중 플러스 밝은 호응은 마치 안드로메다급 대응능력이었달까.


심지어 ‘여기선 내가 왕’이라고 하는 아버지를 떠나서 고시원으로 온 건데, 또 왕대접을 바라는 사람과 함께 일하라니.


쓸데없는 일로 자꾸만 부딪치던 우리는 결국 갈라섰다.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사장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 뭐지?


마중이었다. 감사한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솔직히 이해가 안 되었다. 한 번이라도 친절한 적 없었으면서 짜증, 불평에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으면서, 나간다고 하고 보이는 이 태도가 정말. 너. 왜 그러니? 처음부터 잘해주던가. ㅡ ㅡ


빌딩에 내려와서 삼층에 자리한 호스텔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참 이상한 사람이야.








나는 호스텔 사장이다.

나는 59살, 내년이면 환갑이다. 60 갑자를 다 지내고 다시 낳은 해의 간지가 돌아온다.

인생 살면서 숱한 시련과 고난에 힘든 삶이었지만, 어찌어찌 오해도 풀고 삶을 경험하니 세상에 그리 견디지 못할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 60 되어가니 모든 자극에 둔해지고 그냥 사는 게 사는 거지 싶다.

그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으로 작은 호스텔을 열었다. 아들 내미가 그러는 데 요즘 북유럽 스타일이 붐이란다. 사이트에 호스텔 사진을 올리니까 외국인들한테도 인기가 있다. 좀 비싸도 여행지에 호스텔을 열기를 참 잘했다.

얼마 전까지 열심히 다니던 직원 하나가 그만둬서 새로운 직원이 왔는데, 보니까 성실하고 일도 열심히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일을 처음 해서 그런지 어딘가 어리바리하고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앞으로 이 친구한테 일 맡기고 밖에 나가서 쉬기도 하고 환갑을 즐기려는데, 그게 쉬울까 싶다. 에휴. 그래도 뭐 일 시작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됐으니까 내가 참을성을 가져보자. 회사에서 후배양성한 지가 한참 전처럼 느껴졌다. 박 차장은 잘 지내나 연락이나 해봐야지.

“사장님 이거 곰팡이 폈어요.”

일주일 된 여자 직원이 인기척도 내지 않고 내 옆에 와서 아주 깜짝 놀랐다. 가만히 쳐다보니 애가 성격이 무뚝뚝해도 잘 친해지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지 않는 비밀 하나를 말해주기로 했다.

“상한 데만 버리면 돼요. 그리고 그 빵 브랜드가 상해도 반절은 상하고 반절은 안 상하니까. 나중에 마트 가면 그걸로 사서 채워놔 줘요.”

아. 이 어린 친구에게도 존중을 하는 나 참 멋지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 직원 여자애는 감사한 줄 모르는 걸까. 어쨌든 오늘도 장한 나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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