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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Sep 17. 2023

수상한 사람들과의 수상한 나날들

직장수난시대 #4


* 이것은 실화이며, 이런 경험도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 애는 성인 ADHD가 있다고 했다.     


“ADHD?”     


어디서 들어는 봤는데 뭔지 모르겠는 명칭이었다.

    

“응. 집중을 잘 못하고, 행동이 좀 부산스러울 때가 있어.”     


"그렇구나."


나는 H. 그 애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 애가 머물다 간 빈자리의 향기까지도.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했던 것이 정말 그 애였는지, 아니면 처음 하는 연애의 설렘이었는지, 아니면 그 전부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처음 하는 연애와 처음 다니는 직장 그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하고 들어서자 사장님이 서글서글한 미소로 맞으며 자리를 알려주었다.

“여기가 모다씨 자리예요. 아직 빈자리가 많기는 한데. 차차 사람들을 뽑을 예정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모다씨. 아. 그리고 여기는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끼과장이에요.”


끼과장. 그는 멀끔한 셔츠차림과는 달리 버터 한입 베어문 듯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와인빛의 얇은 입술과 깊게 파인 쌍꺼풀 속의 검은 눈동자가 내 몸을 위아래로 한번 훑고 지나갔다. 느끼함의 정석인 끼과장의 시선에 기분이 불쾌해지려는 참인데 그가 웃으며 인사했다.     


“잘 부탁해요.”     


내가 너무 예민한가.     


사장님은 쉬엄쉬엄해도 된다며 업계용어 같은 건 앞으로 차차 배워나가게 될 거라며 나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근처에 자리한 일구백반으로 가 맛있는 백반을 사주셨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아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쁘죠? 내 딸이에요. 모다씨가 25이죠? 우리 딸도 25이에요. 둘이 동갑이네~”


그에게는 나와 동갑인 딸이 하나 있었다. 어쩐지 그를 보면 어딘가 아빠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회사에 충성해야겠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다음날 사장님은 내가 중국어도 하고 중국 여행에 대한 정보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먼저 중국을 타겟팅한 여행 코스를 만들 거라고 했다. 나는 내몽골 5일 치 여행 일정에 맞추어 포스터를 제작하고 집에서 보물로 섬기던 중국 지도를 가져갔다. 참고용으로 가져간 건데 사장님이 회사 벽에 내 지도를 떡하니 붙이셔서 살짝 흠칫했지만. 그래도 뭐. 내가 다니는 회사인데. 괜찮다 생각했다. 사장님은 내 포스터에 만족하시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요. 모다씨. 예쁘네요.”     


그런데... 그게 다였다. 일이 없었다. 왜지? 없어도 너무 없다. 이틀이 지나도... 한주가 다 지나도 일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사무실을 오고 갔다.

     

“인사해요 모다씨. 여기는 우리 그 상무님.”

“인사해요. 여기는 이사님이에요.”

“이쪽은 저쪽 회사 과장님.”     


“이쪽”회사나 “저쪽”회사와 같은 뭉뚱그린 표현 앞에서 나는 부단히 머리를 싸매며 이쪽 회사는 어디고 저쪽 회사는 어딘지를 유추해 보았다. 정말이다. 정확히 어디 회사의 누구라는 명함을 받지도 못했다. 정말 수상했다. 대체 정체불명 이사님은 어떻게 점심이면 이렇게 바람같이 나타나서 밥을 먹고 사라지는가. 또 저쪽 회사 과장님은 왜 퇴근할 때 회사전화로 전화를 해서 우리 사장님 주소록을 새로운 계정으로 옮기는 일을 시키는가. 협업사가 아닌가? 그럼. 뭐지?


나는 혹여 내가 이쪽 회사는 대체 뭐고 저 사람은 누구고 일이 왜 이렇게 없는지 등을 물어보면 혹시 사장님이 불편해하며 내가 대든다고 느낄까 봐 최대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정말 싫었지만 종종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가거나 멍하니 자리에 앉아 스크롤이나 굴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받으면 이쪽저쪽 회사 사람들이었다. 한 번은 개인 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봤더니 그러는 거다.     

“어. 난데.”     


어. 난. 데???


어???? 난데....???

정적의 5초간 머리 굴려가며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리지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듬었다. 씁. 끝끝내 어난데를 유추해 낸 나는 이 사람이 어제 점심을 사주신 저쪽 회사 회장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기쁜 목소리로 회답했다.     

“아! (저 기억했습니다!) 사장님!”  

그러자 갑자기 전화가 뚝 끊겼다.

     

엥?

뭐야? 이게 아닌가? 다른 사람인가?      

당황스러워 멍하니 끊긴 핸드폰에 검은 화면을 쳐다보는데, 화면이 밝아지며 문자가 울렸다. -지잉   

   

“내 살다 살다. 나 회장입니다. 명칭 똑바로 하세요.”     


엥?

에어에 엥???@?@??!     

대체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으며, 대체 무슨 업무로 전화를 하셨고,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당황스러워 정신이 아득해져 넋 놓고 휴대폰을 보는데, 담배를 피우고 오는 건지 어디를 갔다 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사장님과 끼과장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었다. 우리는 나갈 채비를 하고 일구백반으로 향했다. 일구백반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발길을 돌려 다른 식당에 가려는데 아주머니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소쿠리 든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오. 지하에도 자리가 있었어?’하는 생각에 자주 가는 식당의 비밀 구역을 알게 된 기분으로 물에 젖은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가는데, 잠시 내 두 눈을 의심하고 의심했다. 아저씨들이 들어앉은 식당 지하 벽에 덕지덕지 붙은 누드화보 종이들에는 나체의 언니들, 반나체의 언니들, 분홍 비키니 언니들, 초록 비키니 언니들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말이야 쉬우니 이렇게 표현하지. 순간 당황해서 멈춰 섰는데, 흰자위로 사장님과 끼과장이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는 모습과,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밥을 먹는 내내 반나체 언니의 가슴 눈알과 전라 언니의 중요한 부분이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아 목이 꽉 막히는 것만 같았다. 내 나이와 동갑인 딸도 있으시고, 끼과장의 자녀도 딸이란 걸 내가 아는데, 사장님과 끼과장은 그 뒤로도 종종 나를 데리고 그 지하에서 밥을 먹었다. 무언가를 말하면 대든다고 생각하고, 성희롱임에도 불구하고 인지하지 못한 분위기에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주위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여 어버버대는 분위기였다. 미투는 정말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회사에서 오고 가는 정체불명 사람들도, 일구백반집의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음식장사 하시는 아주머니들도 정말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유부남인 끼과장이 자꾸만 플러팅을 하며 스킨십을 시도하려 해도, 엘리베이터에서 생얼로 출근한 나를 본 끼과장이 고개를 내젓고 한숨을 쉬며 “어휴. 내가 미쳤지.”를 시전 하며 타도 솔직히 저 새끼 왜 저러냐의 정도였다. 출근해서 문이 닫혀 있는 회사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는 아무리 비밀번호를 눌러도 열리지 않는 유리문 앞에 서서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문이 닫혀 있어요...”     


사장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모다씨! 우리 이사를 하게 되어서. 오늘은 그냥 집에 가요. 내가 이사하고 알려 줄게요.”     


첫 월급을 받고 이 주 뒤의 일이었다.

‘그럼 그동안 나는 뭐 어쩌라는 거지? 돈을 벌지 말라는 건가? 알바라도 해야 되나?’  

    

“사장님... 그럼 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

“응... 내가 알려줄게.”     


그 뒤로 일주일 동안 글을 쓰면서 연락을 기다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글도 써보고 H와 데이트도 자주 했지만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고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내 머리엔 회사 벽에 붙은 보물과도 같은 지도의 모습이 둥둥 떠다녔다.


“나 있지. 요즘 집중이 안돼. 글도 안 써지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도 힘들어.”


나의 말을 들은 H는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껑충 뛰어 책장으로 갔다. 그 애는 용케 찾아낸 주황색 빈 통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열린 찬장 거울 반대편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먹어봐. 하나씩만 먹어야 해 알았지?”

그 애는 길쭉한 알약이 든 주황색 플라스틱 병을 내게 건넸다.      


“이게 뭔데?”

“이거 내가 먹는 약인데. 집중이 잘 되는 약이야. 이거 먹으면 글도 잘 써질 거야”     


그냥 감기약 같은 건 줄 알았다. 병원에서도 딱히 약품에 대해 설명하며 약을 주진 않으니까, 약국에서도 약은 그냥 쉽게 사 먹을 수 있으니까, 이것도 그런 거겠지. 나는 다음날 저녁에 글을 쓰다 집중이 안 돼서 H가 준 약을 하나 꺼내 삼켰다. 심장이 조금씩 뛰더니 시선이 닿은 곳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시커멓게 변했다. 마치 검은 종이를 둥글게 감고 안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나름 집중도 잘 되는 것 같았다. 다음날에도 나는 알약을 하나 집어삼키고 글을 썼다. 그런데 어제와 달리 심장이 아메리카노를 열 잔을 원샷한 듯 쿵쾅 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음날 H와 데이트를 하는데 그가 문득 알약 이야기를 꺼냈다.      

“그... 있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그 약 잘못 먹으면 되게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 너무 많이 먹지는 마...”

 

H의 엄마는 의사였다. H는 자신이 먹는 약을 여자친구에게 주었다고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가 그 약을 일반인이 먹으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큰 아이러니는 의사라면 왜 부적합한 약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하고 회수해 가지 않고, 먹지 말라고 하지도 않았냐는 것이다... 그냥 조심하라니… 더군다나 아들 여자친군데? 아직도 큰 아이러니다. 나는 그 뒤로 그 약을 복용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알약이 가득 담긴 주황색 통을 폐기 처분 해버렸다. 몇 년 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 약은 애더럴이었다. 드라마, 영화 또는 뉴스에서 집중이 잘된다고 일반인이 복용하여 사회적인 문제가 된 ADHD용 약물. 각성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야 H가 준 약이 지금은 사람들에게 여러 악영향을 끼쳐 마약류로 분류된 약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는 또 한 번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솔직히 집중이 안된다고 왜 먹는지 모르겠다. 그냥 개인 독서실 하나 빌려서 레드불을 마시면 마셨지. 그냥 주변의 소음이나 빛이 차단되는 느낌. 그뿐이다. 궁금해할 것도 없고, 집중하고 싶다고 먹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자...     


그런 일들을 경험하며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물 지도는 생각하면 할 수록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가장 빠른 시일에 사람을 구하는 나쁘지 않은 아르바이트를 찾아내 곧장 면접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그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찜한, 성은 찜. 찜찜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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