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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Sep 10. 2023

첫 직장, 첫 연애

직장수난시대 #3


* 이것은 실화, 누군가를 폄하할 의도는 없고 그냥 재밌어서 적어보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느 분야에 지원을 해야 할까.  


나는 우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종이를 꺼내 적어보았다. 음... 글. 그림. 노는 거. 먹는 거. 운동하는 거.... 여행..?


생각해 보면 늘 여행이 좋았다. 중국에서 유학하며 선배와 사막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배낭여행에 푹 빠져서 돈과 시간이 허락만 한다면 어느 곳으로든 몸을 실었다. 중국은 정말 땅이 컸다. 정말 어디는 사막인데, 어디는 절벽이고, 어디는 강 위의 작디작은 수백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아무리 봐도 같은 나라가 아닌데 모두 기차로만 갈 수 있는 옆동네였다. 성공적으로 여행을 마치고 기숙사 벽에 붙인 지도 위에 예쁘게 점을 찍을지라면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임펜 뚜껑을 닫고 물러서 영역표시된 지도를 쳐다볼 때 괜스레 흡족해지는 마음이란.


혼자서 하는 여행도 좋았지만 같이서 하는 여행도 좋았다. 그중에서도 나와 가장 많이 여행을 한 친구는 미국사람 Jay였다. 나는 그녀를 영어학원에서 만났다. 나는 학생이었고, 그녀는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말레이시아에서 일을 하다가 중국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언제나 그루브 넘치는 몸동작에 스웩이 느껴지는 멋짐을 뿜어내는 여성이었다. 생각해 보면 영어학원에서 친구를 참 많이 사귀었다. 중국에서 유학하는데 호주 유학원에 있는 기분이랄까. 이상하게도 대학에서 쌓기 힘든 우정을 영어학원에서 쌓았다. 학원의 중국친구들도 매번 외국인은 선생님들만 만나서인지,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난 신기함을 환한 미소에 담아 반겨주었다. 만약 대학 동년배인 우리도 서로를 새롭고 신기한 마음으로 기쁘게 반겨줬다면 좋았을 걸. 우리는 대학에서 치열한 학점 경쟁 중이었고, 언제나 우리는, 그리고 나는,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걸로 경쟁하고 의식하기 바빴다.


Jay. 나의 친구. 그녀는 나의 멋진 메이트였다. 우리는 늘 두둠칫 춤을 추거나 맥주를 들고 가 한적한 언덕에 앉아 지는 노을을 보며 꿈과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가 나에게 먼저 이곳에 가보지 않겠냐고 물으면, 내가 정보를 찾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중국의 풍습인지 아니면 신고되지 않은 호스텔이 많아서인지. 외국인을 받지 않는 호스텔이 많아다. 그런데 또 이런 데가 합법인가 싶은데 외국인을 받는 곳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자면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길 것 같은데... 한 번은 제이를 만나는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여행할 겸 도착한 건물의 호스텔에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문을 여니까 작고 문 없이 뚫린 방에 침대만 다닥다닥 붙어서 여자라곤 한 명도 없이 죄다 건장한 중국 남자애들이(윗도리도 안 입은 친구도 있었음) 나를 보고 호스텔 찾아왔냐고 환하게 웃었다. 나는 당장 혼잣말로, "아, 여기가 아니네. 잘못 열었다."를 시전 하며 문을 닫고 급하게 뛰쳐 나왔다. 미로 같이 방이 많은 건물에서 다행히도 나는 새로운 호스텔 찾기에 성공했다. 같은 건물인데도 방금과는 달리 깨끗하고 쾌적한 우주 캡슐 테마의 호스텔이었다. 안전한 잠자리 확보에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런데 뜻밖의 문제에 봉착했으면서 해결성공을 한 여행에서, 뜻밖의 이유로 제이와 싸워버렸다. 난 내가 이해심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다 짜증 나고 싫었다. 우리는 그 뒤로 각자 여행하고 밤에만 방에서 서로를 만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최대한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않으려 "그거 뭔데." "뭐. 아까 시장에서 산 국수." "왜. 먹을래?" "아니. 됐어."를 시전 하며 팔짱을 끼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게 모두 그 망할 놈의 부채 때문이었다. 그 부채를 사느냐 마느냐 때문에. 다 큰 애 둘이서 크게 싸우고 토라져버렸다. 여행을 끝마치고 난 몇 주뒤에서야 서로를 꼭 껴안고 얼마간 미안하다고 말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중국 유학이 끝나서 더는 그녀와의 여행이 쉽지 않아졌을 때 제이는 말했다.


“모다야. 여행하는 일을 잊고 살지 마.”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버려서. 그 말은 아직도 내 가슴 깊은 언저리에 똬리를 틀고 앉아버렸다. 그 덕에 나는 언제나 여행과의 접점을 만들려 노력했고, 게스트 하우스도, 빵빠게트에서도 틈틈이 언어교환에 참여한 일은 모두 그 깊게 똬리를 튼 따스한 말 때문이었다. 비록 내 마음에 문신이 되어버린 말이지만 덕분에 나는 외국친구들과 더불어, 외국인 남자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나는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까지도 연애 경험이 전무했다. 모쏠이었다. 그냥 좀 처음이라 수줍고 어색한 수준을 넘어 "이건 좀 심한데?" 싶을 정도로 연애에 미숙한 나였다. 학창 시절에 고백 문자를 스팸문자로 착각했다. 진심으로 성인이 되어서야. 아무리 스팸이라도 너는 마치 가을날의 서늘한 공기 같다는 문구를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꽤 창의적인 스팸 문자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사실은 뒤늦게 깨닫고 나서야 주먹으로 입을 막는다. 대체 그 아름다운 시는 누가가 쓴 걸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걸까! 혹쉬... 반장. 너니? 연애에서만큼은 곰 같은 나에게 플러팅 기법을 알려준 이도 영어 선생님이었다.


"내가 말이야. 외국에 있을 때 여자들이 나한테 홀딱 반했지. 어떻게 했는 줄 알아? 그냥 한마디면 돼. 가서 여자한테 이렇게 말해. 'I am a boy, You are a girl. So I like you.' 그러면 백발백중이야."


불빛이 오가는 클럽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정말 잘생긴 남자애의 얼굴이 들어왔다. 정말 클럽에서 그 애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친구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 난 남자친구 없는데, 넌 여자친구 있어?

(Hey, I don't have boyfriend. Do you?)"


캐나다 친구는 예쁜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오~ 호오~


사실 아임 어 보이 유아 걸. 쏘아 라잌 유에 대하여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그 방법이 진짜였다니! 지저스 크라이스트.


그 애와 나는 두 번의 데이트만에 마음이 맞아 사귀게 되었고, 그 애는 자신이 이탈리안 캐네디안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피가 자신에게 흐른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애는 종종 이탈리아 음식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애와 사귀면서, 하도 캐나다에 이민 온 사람 중에 프랑스 사람이 많아서 이탈리아계인 자신이 소외감을 느꼈다고 하소연을 해대서 캐나다에 프랑스 이민자가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는 동시에 계속 고민만 늘어놓던 나의 취직전선도 술술 풀려나가는 것만 같았다. 고민 끝에 선택한 여행사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흰 와이셔트에 검은 정장 바지, 단정한 구두와 얇은 와인색 코트를 걸치고 멋들어지게 면접을 보러 버스를 타자니 마치 기차 타고 여행하듯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드리웠다. 개울 위로 잎을 늘어뜨린 버드나무와 흔들리는 잎새 옆에 카스텔라처럼 깔린 넓고 한적한 아스팔트 도로. 바람에 따라 우수수 내는 소리와 풍겨오는 풀내음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구두굽이 울려 퍼지는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붉게 늘어가는 층수에 따라 심장박동도 쿵쾅쿵쾅 늘어만 갔다.


아. 잘해야 할 텐데. 혹시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사회생활 잘할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 반, 걱정 반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띵.


유리문에는 주황색으로 흘겨 쓴 느낌의 회사명이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았다. 유리문을 열자 쾌적한 사무실 검정 소파에 서글서글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분이 앉아 계셨다.


"저... 면접 보러 왔는데요..."


서글서글하게 생긴 사장님은 허겁지겁 나를 맞았다.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친절한 분이었다. 아무래도 면접이 잘 풀린 갓 같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연락이 왔다. 역시 면접합격. 나에게는 사무실이 왜 그렇게 쾌적한지에 대한 생각은 그리 큰 궁금증이 아니었다. 사무실에 빈자리가 많아 쾌적한 사실도 그냥 다들 어디 갔겠거니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래. 여행사. 어쩐지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여행사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나의 첫 연애와 첫 직장생활의 막이 열렸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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