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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Sep 04. 2023

빵빠게트

직장수난시대 #2

* 이것은 실화, 누군가를 폄하할 의도는 없고 그냥 재밌어서 적어보았다.


가만히 방에 누워 있자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머리가 띵하고 아팠다. 호스텔을 그만두고 나서 일을 구하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조금 막막한 기분이었다. 취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취직을 위한 자격증 취득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들 가야 한다고 해서 꼭 준비해야 돼? 대학도 드럽게 힘들었는데, 또 얼마나 더 힘들게 나 자신을 혹사하라고.


그렇다. 나는 밤생 공부와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지겨웠다. 강요가 지겨웠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쫓기 위해 나의 것을 포기하는 게 지겨웠다. 나는 글. 글이 쓰고 싶었다.


막막한 채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는 1.5평 고시원이 좋았다. 요즘따라 머리도 자주 아프고 어지러웠지만 마음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전혀 없었다. 군것질에 글을 쓰다 바람이나 쐐러 너털 걸음으로 고시원 근처를 배회했다. 평소와 같이 지나가던 빵집에 너털 걸음으로 들어가서 물었다.


"혹시 알바 안 뽑으세요?"


생각하면 할수록 당시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지 기억이 안 난다. 이제는 그런 용기가 잘 나지 않는데. 어쩐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카운터에 있는 사람이 직원인지 사장인지도 모르면서, 그 사람이 당연히 사장님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맞았다. 사장님이었다. 어딘가 날카롭게 생겼으면서도 인자한 분위기의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카운터에 앉은 여자는 나를 향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력서 들고 내일 11시에 면접 보러 오세요."


그렇다. 그녀는 츤데레였다. 곧장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자 내일부터도 가능하면 출근하라고 했다.


정말 이상한 루트의 취직이었다.


빵집은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고시원에서도 걸어서 오분. 손님이 자잘 자잘 오는 편이어서 한가할 땐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 보니 빵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사장님은 내가 효모빵을 모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너."

"매일 빵 하나씩 먹고 싶은 거 먹어"

"외우면서 먹어."


사장님이 츤데레라고 말해서, 듣기에는 ‘오. 역시 츤데레 다정해.’하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기분 나빴다. 흥. 사실 빵집에서 일하는 애가 이렇게 빵을 모르냐고, 효모빵도 모르냐고 타박을 받아서, 살짝 홧김에 빵 이름과 종류를 다 외워버린 것도 있었지만, 나는 손도 빠르고 적응도 빨랐다(뭐 누구나 먹고 살다보면 그렇게 되지만).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츤데레 사장님은 매일 아침 효모빵에 손을 뻗고는 반을 뜯어주시며 선심 썼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뭐지 싶었는데, 매일 나에게 나눠주시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녀가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효모빵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빵빠게트 알바 두 달쯤 되었을까. 사람들 사이로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디지? 어디였지? 씁. 고등학교 동창인가? 아. 아닌데. 누구지? 왜 저 사람 얼굴이 이렇게나 익숙할까. 머리를 굴리다 굴리다 카운터로 온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야 기억이 돌아왔다.


어… 호스텔 외국인 직원이었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바라보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으며 인사할 수도 있었는대 나는 "포인트 있으세요?"를 물어보지 못했고 그녀는 "봉투 주세요"를 말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뻘쭘한 순간이었다. 빵을 포장해 드리자 그녀는 주섬주섬 빵을 들고 어기적거리며 유리문을 나섰다. 그 빵은 호스텔 사장과 먹았을까? 그렇다 그녀는 호스텔 사장님과 사이가 좋았던 것이다. 안녕?... 잘... 지내니?


그 뒤로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한 달이 다 지나서야 머리가 아프고 울렁거리는 이유가 방 안에 놓인 공유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고 선을 뽑자 더는 머리도 속도 울렁거리지 않았다. 고시원 삶은 안정적이어졌고, 커피를 내리고, 계산을 하고, 때 되면 빵 포장을 하고, 손님이 떠난 자리에 남은 빵 부스러기를 치우거나 재고를 파악을 하고 청소를 했다. 때 되면 할 일을 해내고 남는 시간에는 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마치 나무카운터의 메뉴판 같은 배경이 되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공간 안쪽에서 바깥쪽을 내다보았다. 비가 오거나, 날이 좋거나, 글이 좋거나, 노래가 좋은 순간들이 지루함 속에 묻어 있었어도,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듯 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렇게 있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네 달을 보내고나서 나는 곧 깨달았다.


빵빠게트 파트타임으로 머니 = 고시원머니 = 빈털털이


고시원 생활 네 달만에 통장잔고 앞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우울한 손끝으로 아버지에게 문자를 쳤다.


"아버지... 나 집에 들어가도 돼요?"


한숨과 함께 전송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자 답장 알림음이 울렸다.


"그럼 당연하지. 들어와. 문 열려 있어."

살짝 뻘쭘한 채로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들어가자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딱히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마치 내가 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것 마냥 생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뒤로 아버지는 나에게 집안일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내 나이 삼십에 아버지는 주된 살림을 하고 계시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쨌든, 다시 집에 들어와 생활하면서도 빵빠게트 아르바이트는 계속되었다.


언제였더라. 사장님이 기사님 빵이 마음에 안 든다는 투정을 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님이 바뀌었다. 새로운 기사님은 큰 키를 가진 여성분이었다.  MBTI에 진심인 우리나라 밈을 일컫어 설명하자면 그녀는 T발 T가 분명했다. 그녀는 소설 지망생이라는 내 정보를 듣고는 무슨 얘기냐고 물어왔다. 보통 그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들뜬 마음에 줄거리를 설명하자 기사님이 다시 물었다.


"아니. 장르가 뭐냐고."


췟. 로맨스다!


"나는 취미가 스포츠 댄스야."


이제 생각해 보면 자기 취미 얘기하려고 물어본 거였지만.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그녀가 작게 보여준 몸놀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녀의 작지만 화려한 몸짓에 갑자기 조명이 켜지고 그녀 옷이 붉게 빛나며 흩날리는 치맛자락과 함께 “참가번호 10번!”이라 외치는 마이크 소리가 귓전에 가득 했다. 나는 그 뒤로도 종종 그녀의 케이크 꾸미는 손짓사이로 화려한 춤사위를 엿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와 나는 뭐랄까 말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밀거래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출근을 하면 기본으로 아메리카노를 한 잔은 뽑아 마신다. 그런데 사장님은 이상하게도 기사님에게 유독 깐깐했다. 빵빠게트가 당시 기사님들 월급 문제로 다툼이 커져 그랬다는 걸 한참에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하여간 당시에는 겨우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사장님이 왜 저럴까 생각했다. 기사님도 사장님이 계실 때 아메리카노 한번 마시려다 눈칫밥도 함께 드시고 나서부터는 사장님이 없을 때 내게 목이 마르다고 했다. 목마르네. 우리들의 싸인. 나는 아메리카노를 뽑아서 그녀에게 건넸다. 아메리카노 밀거래.


그래도 먹고살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손은 점점 더 빨라져 어느새 다른 지점 빵집 박스 호일지 접는 일까지 도맡아서 하는 지경이 되었다. 속으론 사장님이 대체 나한테 왜 이럴까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가질 무렵 빵빠게트 유리문 앞에 대문짝만한 현수막이 걸렸다. 강렬한 노랑 현수막의 빨갛게 쓰인 네 개의 글자에 나는 잠시 주춤했다.. "임.대. 구.함." 가게로 들어가자 사장님이 조금 슬프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너도 봤지..?’하고 내게 말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사장님에게 현수막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장님..! 저거 뭐예요?"


사장님은 멋쩍게 웃으셨다.

"어... 하하. 우리 장사가 너무 안 돼서... 접기로 했어. 남은 빵집 하나만 하려고…"


두둥. 아. 이제 진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근무 마지막날 사장님은 나를 비싼 뷔페로 데리고 가 맛있는 한 끼를 사주셨다. 마지막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 그녀가 말했다. 책 나오게 되면 연락해요. 그게 벌써 6년 전 일이었다.


비 오는 날 가만히 빵집에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노래를 듣거나, 간간이 발견한 손님의 친절한 미소에 기분이 좋아지거나, 추운 날 책을 읽다 말고 뛰쳐나가 배달 온 빵을 안으로 들이는 일이 나는 꽤나 그리워질 것 같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어쩐지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아련하다.


그때 빵빠게트 뒤에 엄청 맛있는 수제 버거 집이 있었는데, 거기도 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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