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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Sep 25. 2023

하룻밤 13만 원으로 얻어낸 불쾌한 경험

#6 직장수난시대

* 이 글은 논-픽션이다. 그저 어떤 식으로든 이글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 등장인물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첫 연애는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드라마처럼의 설렘 떨림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결국은 너와 내가 맞지 않는데, 더는 서로 맞춰갈 수 없는 한계에 마주하는 지점이 오고야 말았다. 그 애는 친구가 더 좋았고, 나에게 종종 넌 친구가 없냐고 비난했다. 귀찮다는 말일까? 종종 그 애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존재하고 싶었던 것뿐이고, 같이 있고 싶었던 것뿐인데. 나는 종종 내가 정말 친구가 없는 사람인가 자문했다. 그 애를 좋아해서 그 애가 맞다고 하는 것, 좋아하는 것,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은 양보만으로는 될 수 없는 건가 보다. 상처받은 여러 날 끝에 전화로 그 애에게 고백했다.      


“우리 그만 만나.”      


꼭 널 사랑한다는 말만이 고백일까. 헤어짐도 하나의 고백이 아닐까. 마음은 이미 닳고 닳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화로 작별을 고한 것이 좀 미안하지만, 그 애가 지긋지긋하게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말 내 안의 모든 걸 쏟아부어 그 애를 사랑했다. 이제 끝이었다.     


그 애의 어떤 모습이 너무도 이해가 되질 않았고, 그 애는 나를 몰랐다. 그래. 날 모른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거의 일 년이 되어가는데, 왜 넌 아직도 나를 모를까. 난 이미 너를 다 알 것만 같은데.


좋은 작별이란 뭘까.     


갑자기 이사를 간다며 말없이 사무실 문을 잠근 나의 첫 회사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고, 나는 잠시 다닐 요량으로 전화 알바를 하고 있었다. 내 처지가 꽤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구는 대기업에 다니고, 누구는 좋은데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비교당할까 두려웠다. 누구는 엄친아인데, 나는 그냥 여기저기 전전하며 자리도 못 잡은 인간일까 봐. 스물다섯. 많지도 않은 나이였는데, 나는 마치 내가 세상의 모든 연륜을 다 등에 짊어진 기분이었다. 언젠가 파티를 열기로 해서 들뜬 마음으로 전화한 친구에게 아버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은 저녁, 다음 날이 밝자마자 회사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단 한 명도 우울한 소리를 늘어놓지 않았다. 모두 밝은 얼굴로 지난날을 이야기하면서 너는 뭐 하고 사냐 나는 잘 모르겠다는 소리가 오고 갔다.      


솔직히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어쨌든 내 비교의 대상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소주를 마시고 헤어짐이란 큰 생의 장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사실 모두 나와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두 모르고, 두렵고, 부단히 이해하려 애를 쓰고 있구나. 그 사실을 알고 나자 괜히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이 나이는 원래 그런 거구나. 싶었다.     


발인하는 날 차가운 새벽공기에 다 같이 울고 웃다가 국밥을 먹고 헤어졌다.




더는 여행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 사장님에게 남은 기간에 대한 월급 정산은 어떻게 되는지 물었지만, 사장님은 줄 수가 없다 했다. 노동청에서도 사장님의 손을 들어주었다. 물론 내가 한 일이라고는 포스터 두장을 만들고 주소록을 옮긴 일이 다지만, 사람을 어디에도 오가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일을 하지 않았으니 돈을 줄 수 없다는 게 옳은 걸까 생각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시 일을 구하는 수밖에.     


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물었다.

“승무원은 어때? 넌 키도 되고 언어도 되잖아.”

“승무원?”

“그래. 학원비 엄마가 내 줄게~”

그러니까 엄마는 나를 통해 엄마의 로망 실현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승무원이란 직업이 꽤 괜찮아 보여서 엄마의 제안을 승낙했다. 나를 아는 친구라면 ‘니가?’ ‘승무원?’이라고 했겠지만, 그럼 나는 ‘그러니까.’하고 대답했겠지만, 집 근처에 한번 결제하면 평생 무료 수강할 수 있는 승무원 학원을 등록했다.     


흥미로운 세상이었다. 늘 접해오던 면접은 내가 돋보이고 드러나야 하는데, 승무원 면접에서는 내가 너무 도드라져 보이는 순간 탈락이었다. 내가 돋보이기 위해서는 더 웃고, 더 친절하고, 더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선생님은 웃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덕분에 지금도 군중 속에 가만히 있을 때 방긋 웃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웃어?”

그럼 나는 대답한다.

“음. 그냥.”     


그런데 종종 그냥이라는 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을 만나면 괴롭다. 그러니까 누가 그냥 웃으면 아. 쟤 승무원을 준비를 했었나 보구나 아니면 예전에 항공사 서비스직 했었나 보구나 하고 생각해 주기를… 진짜 습관이라 종종 이유를 생각해 내기가 어렵다. 설명하는 것도 좀 우스꽝스럽다.


“응 내가 예전에 승무원 준비 어쩌고저쩌고, 선생님이 어쩌고…”


제봘-




아무리 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누군가의 관리가 없다면 힘들다. 나는 승무원 학원 한 달 반째에 영어수업에서 만난 민디 선생님에게 관리를 받게 되었다. 선생님은 학원 몰래 다른 학원으로 수강생을 빼돌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예컨대, 수업을 ㅇㅇ학원에서 해야 하는데, ㅁㅁ학원으로 오라고 하는 식이었다. 가보면 ㅇㅇ학원과는 무관한 다른 승무원 준비 과정의 친구들이 영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다들 돈을 내고 온 것 같은데, 어쩐 이유인지 나는 그 학원에 몇 번 공짜로 가서 관리를 받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당시 학원에서 영어를 꽤 수월하게 하는 나를 우러러보던 동생 둘에게 나도 ㅁㅁ학원에 다닌다고 니들도 다니라고 뒷광고를 하며 꼬드겼다고 한다. 나는 어쩌면 민디의 좋은 홍보 사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 난 그런 선생님의 의중을 알지 못해 그냥 맛보기로 한번 듣게 해 주시는 건가 뭔가, 애매하고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괜찮다니까 그러려니 했다. 하라는 대로 했다. 그래서인지 종종 선생님은 나에게 자신이 나에게 잘해주고 있으니, 자신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


민디 선생님은 영어 자소서 첨삭을 해주고 면접 준비를 도와주셨다. 덕분에 나는 서류 합격을 몇 번이나 하였고, 면접도 몇 번 보게 되었다. 하지만 종종 너무 떨어서 “이번이 첫 면접이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왜 그리 떨었는지를 혼자서 자책했다. 사건이 일어난 건 캄보디아 항공 면접날이었다. 서류를 합격 후 영상 면접날이 다가왔다. 영상면접은 2차 면접 전에 화면 뜬 질문을 시간 안에 대답하여 영상녹화를 하는 식이었다. 민디선생님의 관리 안에 있는 우리는 모두 빼콤을 넣은 머리를 하고 흰 와이셔츠에 검은색 긴 정장 치마를 입고 스터디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면접을 보았다. 면접이 끝나자 모두 술을 한잔 하러 가자고 했다.


돈이 많지 않은데 곰장어를 먹으러 가서 ‘다들 부잔가?’ 생각했다. 나는 한 번에 밥을 먹을 때 그렇게 돈을 써본 적도 없었고 집에 갈 때 택시를 타고 가는 것도 중국에서 유학할 때나 편했지 한국은 너무 비싸서 엄두도 내지 않았다.

어쩌다가 그런 주제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어김없이 19금 토크가 이어졌고, 순수한 얼굴의 내가(참고로 나는 좀 어려 보이고 세상 물정 잘 모르게 생겼다) 의외로 이것저것을 알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민디가 내 손을 잡고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내 손을 빨아대기 시작했고, 나는 잠시 이게 무슨 상황인가 그녀의 타액이 묻어가는 내 손을 천천히 지켜보았다. 꼭 왜 알 수 없는 상황은 이렇게 한순간에 일어나는 걸까. 만약 그녀의 케어가 없다면 나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고, 나는 친절해야 한다는 승무원의 면접 마인드에 갇혀 있었다. 모두 그랬다. 일자리가 간절했다.

정말이다. 면접 질문에 그런 게 있다.


“승객이 엉덩이를 만지면 어떻게 할 거예요?”

대답은 ‘신고를 한다.’ 거나 ‘승객의 뺨을 때린다.’가 아니다.

“손님 저의 이름은 모다이고, 제가 필요하실 때는 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친절함의 끝에 승무원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종종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표정은 늘 웃고 있는데 엄청난 카리스마를 풍기는 멋진 선생님도 있었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 사람.

어쨌든. 민디는 내 손을 쪽쪽 빨아댔고, 사람들도 나도 그냥 상황을 쳐다만 봤다. 민디는 막차 시간이 다 되어 내가 집에 간다 하니, 좀 더 있다 저기 나영이 남자친구가 차 끌고 온다니까 그때 모다도 데려다주면 되지 않겠냐고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나영은 남자친구가 차를 끌고 오자 활짝 웃고 인사하고 문을 탁 닫고 가버렸다. 덕분에 나는 취한 여자 둘을 데리고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민디 집에 도착하자, 민디가 잠깐 들렀다 가라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얼른 그녀를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다른 여자애 하나는 생각이 없는 건지 나와 방향이 완전히 다른데 자기 집에 먼저 갔다가 내가 집에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차문을 닫고 그 애를 보냈다. 카카오택시는 한번 부르면 다음 차량을 부를 수가 없어서 결국 사람이 하나도 없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아주 늦은 새벽 길가에 서서 택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택시를 잡아서 어찌어찌 힘겹게 집에 와보니 택시비 7만 원, 곰장어 5만 원, 스터디 1만 원. 큰돈이 꽤 불쾌한 경험으로 지출되었다. 그리고 캄보디아 항공 영상 면접은 탈락했다. 캄보디아 면접에서 영어를 훨씬 잘하는 택시에서 생각이 없던 친구보다 외적으로 눈도 크고 마른 나영이 붙은 것을 보고, 나는 이 세계가 내가 속할 세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살을 빼고 싶지도 않았고, 외적인 기준을 맞추고 싶지도 않았고, 억지 친절로 의견을 지우고 싶지도 않았다. 잘 생각해 보면 나는 잘잘못을 분명하게 가르는 판사 또는 사실관계를 밝히는 기자 같은 영혼을 지녔으면서 나와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실은 잘하지도 못할 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모두 제각기의 다른 형태의 영혼을 지녔다. 누구는 초록이 가득한 시골에서 마음이 좋고, 누구는 복잡하고 미로같은 도시가 더 좋다. 마치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당기고 밀치는 것들이 다른 것이다. 누구는 왼곡한 표현이 좋고, 누구는 딱딱한 방식이 좋다. 의사표현에서 먹는 것 입는 것 성향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이루는 것은 모두 다르다. 그런데 정작 직업을 구할 때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은 데 서비스업으로 뛰어들거나, 사실 사람들 만나는 게 좋은 데 앉아서만 하는 일을 자처하기도 한다. 당신도 만약 집업을 구하려고 한다면 한번 질문해보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영혼은 어떤 형태인지 무엇에 더 가까운지.


네 달간의 승무원 준비가 막을 내리자 엄마는 매우 아쉬워하였고, 난 나에게 일어난 일을 늘 그렇듯 엄마에게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학원비 130만 원은 결국 갚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랑 참 어울리지 않는 직종이었다.






# - 입장 바꿔 생각


나는 여행사 사장이다.

원래는 돈을 깨 버는 큰 여행사에서 부장으로 일을 하다가 회장님에게 좋은 기회를 받아 분가하게 되었다. 이제 쉰. 나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마음에 드는 직원을 뽑았다. 이모다. 싹싹하고 일도 잘할 것 같은 성실한 이미지다. 그런데 끼대리가 여직원들에게 껄떡대는 습관을 다 버리지 못하고 모다씨에게 자꾸만 껄떡대는 것 같다. 그래도 나름 조금씩 사업이 모습을 갖추어가는 듯하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닥을 잡고 사업을 구축해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여행 기획은 해보았지만 영업 쪽은 완전히 논외였다. 그래서 끼과장을 회장님이 붙여주신 것 같긴 하지만… 우선 회사에서 예전에 팔았던 내몽골 일정을 가져왔는데, 여행을 간다는 단체가 없다. 영업이 중요한데, 지원을 해준다던 본사도 협업사도 단체도 간다 간다 말만 하지 행동이 없다.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데 건물주까지 월세를 내라고 난리다. 월세도 그렇게 합리적인 가격은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사무실을 알아는 봐야겠지만, 어쩌면 본사에서 한켠을 얻어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열심히 일하려는 여직원 월급은 챙겨줘야지. 벌써 다음 달이 걱정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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