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수난시대 #8
* 이 글은 실화입니다.
“ㅇㅇ씨는 학창 시절에 놀았어요?”
사장님은 종종 이상한 말로 짜증을 돋웠다. 나는 갑자기 수다타임인가 하여 “아니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같은 질문을 과장님에게 했다.
“과장님은요?”
“저도 뭐 공부하느라 바빴습니다.”
사장님은 코웃음을 쳤다.
“난 엄청 놀았는데. 두 사람은 공부만 했나 봐.”
정말 왜 저러는 걸까. 찌푸려진 미간으로 마우스를 뒤흔들자 뒤편에 온 사장님이 잉크가 번져 쓰지 못하게 된 책을 북북 찢는다. 피땀 흘려 편집한 직원에게 책 한 권 선물하기란 어렵고 저렇게 찢어버리는 건 아깝지 않은가. 처음부터 저랬으면 말을 안 해. 원래 처음에는 친절했다. 내가 편집하지도 않은 책을 선물하고, 커피를 사주고, 밥을 사줬다. 참고로 사장님은 유부녀고 나도 여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어쩐지 아까워하기 시작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일을 할수록 사장님은 나를 하대했다. 이제 각자 알아서 먹자고 했다. 줘야 할 돈을 주지 않았다. 좀 쉬면서 하라는 말도 하지 않는 이전과 상반된 태도에 신물이 났다.
그래서 해버렸다. 창업.
퇴사하고 출판사를 등록했다. 투자를 지원받는 사이트에 책을 올렸다. 방방곡곡에 이 사실을 알렸다.
“나 책 낼 거야. 응원해 줘.”
사실 사업에 대해 티끌만큼도 몰랐지만 나는 몰랐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대표 1명 직장인 2명뿐인 출판사에서 전반적인 시스템도 익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기 저편에서는 장난 같은 말이 들려왔다.
“책 700권 인쇄하는데... 1500만 원이라고요?”
내가 놀라서 되묻자 인쇄소 사장님이 친절하게 대꾸했다.
“네~ 500권은 1000만 원입니다.”
목소리가 친절해서 오히려 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응~ 우리 너 몰라~ 바가지 씌울 거야~” 자료조사 당시에도 시중가가 이렇지 않았다. 이게 뭔가 다가도 작아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혹시... 좀 저렴하게는...”
인쇄소 사장님이 대답했다.
“아니면 다른데 찾아보셔야지요~”
그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한 인쇄소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인쇄뿐만이 아니었다. 제지비, 물류비, 홍보비, 영업비, 사업운영비, 그간을 버틸 생활비. 사업에 돈이 필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많이 필요한 줄은 몰랐다. 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견적서로 가득한 봉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 #%#@ 망했다.”
충무로의 어느 골목은 하늘이 높고 맑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니었다. 이렇게 초고속으로 망하다니. 투자받는 프로젝트도 금액에 한참 미달하여 무산되었다. 사업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사업에 대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는 것도.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도. 물론 어떻게 모든 걸 다 준비하고 시작하겠느냐마는. 내 준비도는 그 정도 수준도 아니었다. 어쩌면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업무능력은 업무능력, 업무영역은 업무영역인데.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고 다른 영역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내가 인성이 사장님보다 낫다고 사장님보다 금세 성공하고 금세 어려운 일을 이겨낼 거라고 착각했다. 되려 현실의 벽을 마주하면서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사장님의 입장도 이해하게 되었다.
신기했다. 당신이 싫어서 나왔는데 당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게.
그리고 실은... 안도감이 들었다. 내 창업이 쉽게 풀리지 않아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가슴 깊은 곳 한편에, 내가 돌아보지 않는 한편에 나의 글도 작품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준비하고 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도 괜찮았는데, 불안함에 조급해진 마음과, 내가 사장님보다 더 잘나고 싶다는 욕망에 빠르게 창업하고 보기 좋게 망했다.
“망한 게 아니야 모다야. 시작을 못한 거지. 네가 원하면 언제든 준비해서 다시 시작하면 돼.”
나를 아껴주는 선배는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하지만 시작을 하지 못한 거여도 부끄러웠다. 그동안 SNS에 가족에 친구에 지인의 지인에게까지 홍보하며 알렸다.
“걔 책은 어떻게 됐어?”
“여기 무산되었는데?”
“헐 진짜? 뭐야. 기세만 좋았지 아무것도 못했네?”
그런 속삭임이 들려오는 기분이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특히 그런 속삭임을 사장님이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 더. 나는 뭐라고 내가 해낼 수 있다고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또 어서 더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게 고개를 돌리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서 일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보험회사
면접에서 교육까지 속전속결이었다. 몇 마디를 나누고 매니저님이 주신 종이에 답변을 적어낸 뒤 센터장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원래는 안되는데 모다씨 인상이 좋아서 특별히 이번에만 예외로 채용하기로 한 거예요.”
예외. 특별히. 그 말을 수도 없이 들어었다. 그런데 사실 뒤돌아서 생각해 보면 정말 특별해서가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고마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말을 내뱉는 사람을 더 많이 봤다. 또 나만 특별히 대우받은 거면 나에게 온 부당한 대우도 내가 견뎌야 하는 건가 의문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그 말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펜과 종이를 받고 교육장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교육장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보험 하면 나이가 있는 연령대를 생각했는데, 60명가량을 수용한 강의장 안에는 내 또래가 대부분이었다. 나랑 나이차이나 나는 언니도 조금 친해지고 나서 교육장에 들어온 소감을 요즘 보험판매 트렌드가 바뀌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교육은 한 달간 진행하며 협회 시험 두 개의 과목에서 60점을 넘으면 자격증을 취득하여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나는 매번 45점 60점 언저리였다. 수업 시간에 늘 100점을 맞는 여자가 있었다. "몇 점이에요?"하고 선생님이 물으면 그 여자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100점이요." 그러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단하다는 감탄을 내뿜었고 교육장이 술렁였다. 나는 혹시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사람들은 에이 안 떨어진다고 말을 주고받고 설마가 사람 잡을까 봐 문제집을 들고 달달 외웠다. 한 달을 매달려 공부하고는 60점 맞아도 되는 실제시험에서 96점을 해버렸다. 그런데 그 100점을 맞던 사람은 간당간당한 점수로 거의 붙었나 떨어졌나 했다는 찌라시가 돌았다.
“엥? 연습 시험에서는 한 번도 100점이 아닌 적이 없었잖아 그 사람.”
내가 놀라 묻자 동기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매번 커닝을 했던 거래. 연습시험을 칠 때 우리 답안지가 없었잖아? 그 답안지를 그 사람 소속 센터 매니저가 다 찍어서 보내줬다나 봐. 그거 보고 100점인 척한 거라더라."
연습문제에서 굳이 커닝을 한 이유는 뭐였을까. 그 찌라시가 사실일까.
그러니까 나는 여자들로 가득한 세상에 이제 막 발을 들인 셈이었다. (혹시 누가 성별로 뭘 나누냐고 할까 첨언하자면 꼭 성별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정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팽팽한 건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번은 함께 맛있게 밥을 먹고 내게 자기가 꼭 이기고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한참 그 사람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나였다거나 하는. 사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그냥 인성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햇볕반, 포도반에서 나는 포도반이었다. 포도반의 모든 설계사는 당연히 개인사업자였다. 그러니까 내가 복사한 종이도 내 돈,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물품도 내 돈, 영업 뛰며 쓰는 돈도 다 내 돈이었다. 한 달에 고정으로 100만 원은 나갔다. "햇볕반에서는 교통비도 매니저님이 다 지원해 준다던데"라는 말을 듣고 햇볕반을 종종 흘끔였지만 어쨌든 나는 처음 면접을 봐주신 포도반 매니저님 소속 설계사였다.
실제로 고객을 만나면 어떤 태도로 무엇을 설명하는지를 전화할 때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배우고 몇 번 실천처럼 연습하고서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
전화받는 사람은 스타일이 제각각이었는데.
“이거 보이스피싱이죠!”
“빽!”하는 높은 음성이 되돌아올 때면 깜짝 놀라서 당황스러웠다가, 당황스러움이 억울함으로 변했다가 살짝 화가 났다가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옆자리에서 내 눈에 닭똥처럼 흐르는 눈물을 본 선배친구는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언니. 왜 울어. 여기 휴지.”
다 울고 나자 그 애가 따뜻한 삶은 계란을 건넸다. 생각해 보면 매일 아침 삶은 계란을 먹었다. 매일 아침 안내방송에 따라 전층의 사람들이 으쌰으쌰 체조를 하고 전략회의를 했다. 회의 후레 자리로 돌아오면 전화를 하려는 참에 매니저님이 손짓하며 장사꾼처럼 외쳤다.
"자. 자. 삶은 계란 먹고 하세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타임루프처럼 계란을 까먹었다. 왜 맨날 계란을 먹는 건지 의아했는데, 의미가 있었던 거였다. 우리가 판매하는 주종목이 종신보험인데 보통 특약이 많이 빠진 채로 파는 경우가 많아서 아무것도 안 뺀 온전한 알의 형태(일명 알종신으)로 팔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매일 한결같이 삶은 계란을 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반쯤 뜬 눈으로 알을 까고, 놀라서 움츠러들면 눈으로 닭똥을 흘렸다. 또르륵-
가끔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서도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일은 흥미롭고 재밌었다. 대략 45명의 사람을 직접 만났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등산 재킷과 바지를 입었지만 끝매무새가 정장차림 마냥 단정한 분위기의 한 중년 남성이었다. 보험 분석을 마치고 영업멘트를 치는데 그분이 대답했다.
“안 사요.”
???
“... 고객님, 그래도 한번.”
그는 단호한 행동과 달리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끊었다.
“저희 아버지가 보이스피싱을 당해서요.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처리하러 가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보험들도 정리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예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테이블에 놓인 통장과 도장으로 향하는 그의 손이 보였다. 그 옆에는 각종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그런 큰 일을 겪은 사람에게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분명 내 마음은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내 몸은 마음과 완전히 분리되어 행동했다. 마치 몸에게 하나의 자아가 있는 것처럼 입이 나불대며 매니저님이 외우게 한 말들을 뱉어댔다. 그러다 스쳐간 어떤 말에 침울했던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듯 미소가 번졌다. 보험 관련된 농담이었는데 그가 "하하." 웃어서 되려 내가 더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에게서부터 느낀 슬픔과 '대체 힘든 사람에게 난 무슨 말을 하고 온 건가. 보이스 피싱을 당해서 재산의 대부분을 잃었는데 보험을 사라고?'와 같은 말을 되뇌며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알려준 말을 앵무새처럼 내뱉던 내 모습에 지금 이게 맞는 걸까, 맞게 가고 있는 걸까 생각이 떠돌았다.
회사로 돌아오자 매니저님은 브리핑을 하라고 했다. 어떤 고객이었고 어떤 말을 했는지.
"녹음본은 없어요..."
그도 그럴 것이 매니저님이 고객을 만나고 나서 녹음을 하라고 했다. 한두 번 찝찝한 마음으로 녹음기를 틀고 고객을 만났다. 당연히 고객은 몰랐다.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기분이 별로였다.
"근데 고객님은 제가 녹음을 하는 걸 모르니까. 그냥 처음 만나서 애초에 녹음해도 괜찮은지 물어볼까요?"
내 질문에 매니저는 대답했다.
"아니야. 그냥 이건 내가 들으려고 하는 거니까 상관없어."
마이크로 매니징.
그녀의 세세한 교육은 내 삶을 침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거짓말이 죽기만큼 싫었다. 매니저님은 영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이를 속이라고 했다. 내가 너무 어려 보이니까. 그다음은 삶의 배경, 그리고는 환경, 옷, 머리까지.
"모다야. 넌 생머리 하면 참 이쁘겠다. 가서 미용실 얼마 안 하니까 생머리로 바꿔.”
싫었지만 곱슬을 풀고 머리를 폈다. 매니저님의 조언대로 조금씩 나이 드는 옷을 골라 입고 말투도 바꾸었다. 좋게 말하면 조언이지 나쁘게 말하면 가스라이팅이었다. 특히 그 "네. 네."거리는 소리.
"네."
내가 경쾌하게 매니저님에게 "네."하고 대답하면 매니저님은 살짝 날카로워진 언성으로 쏘아붙였다.
“네! 네! 내가 뭐라 그랬어. 네! 네! 이렇게 말하랬지.”
그놈의 “네. 네.”소리에 아주 환장할 지경이다. 만약에 내가 나중에 치킨집을 차리게 되면 죽었다 깨어나도 네네치킨은 차리지 않을 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놈의 "네" 소리와 내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 고치려 들었고 실제로 그러는 동안 결과적으로는 성과가 올라서 더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매니저님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랐다. 거울을 봤는데 전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네가 그 말을 계속 들어주니까 자꾸만 그러는 거잖아."
맞다. 그 말이 참 맞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그 또한 어려운 조언이었다. 그냥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하는 일을 잘하고 싶었고, 좋은 성과도 가지고 싶었다. 보험도 모르고, 사회생활도 잘 모르고, 영업을 몰라서, 정말로 너무도 몰라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조언으로 받아들일지 몰랐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가 가스라이팅이고 어디까지가 업무인지의 구분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업무를 처리하는 기준은 있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기준은 없는 채로 너무도 많은 것을 그저 매니저님의 말과 의견으로만 판단하면서 조금씩 마음에 무기력이 스며들었다. 멈추지 않는 다른 좋은 방식을 알았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는 멈추는 것 말고 다른 방식을 알지 못했고, 나는 멈추기를 선택했다.
헷갈리고 어지럽던 그해 겨울, 닳고 닳아 마음에 남은 게 없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실패가 나를 무너뜨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장님을 이기고 싶어서 창업을 시작하고, 큰 결과와 조건을 가지려고 나를 무시하며 강요를 받아들였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되려 내가 무시하며 나를 지키려고 몸을 더 꼿꼿이 세울수록 나는 더 쉽게 무너져 내렸다. 이용당하기 싫어 이기려는 마음과, 이겨보고 싶어서 조건을 충족하려 나를 무시하는 마음. 그러니까 결국 나를 무너뜨렸던 건 그런 마음들이었다.
언젠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데 엄마가 "저거 아니어도 되는데."라고 말해 급발진하여 엄마에게 짜증을 낸 적이 있다. "엄마. 저거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있는 거야!" 하지만 엄마는 속삭이듯 또 대꾸했다. "저게 전부가 아닌데, 저렇게 까지 하면서 저러지 않아도 괜찮은데." 나는 아니라고 또 대꾸하고 엄마는 뭔 말을 못 하겠다 진저리를 쳤지만 이제 보니 아닌 쪽은 내쪽이었던 것 같다. 욕심을 버릴 때야 비로소 엄마의 말이 저거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괜히 자존심 세우며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렇게 까지 나를 혹사하고 아프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맞다. 아무리 실적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마음이 불편하면 하지 않아도 되었고, 돈을 위해서 나를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며 나를 깎고 버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에만 매달릴 때는 다른 방식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서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작은 상자에 나를 가두지 않고서도 너무나 여러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걸. 마음을 혹사하고 아프게 하면서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과 방식이 존재한다는 걸. 이때의 나는 여전히 의견을 조율하는 방법과 부드럽게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을 알아내기까지 여전히 수많은 실패를 앞두고 있었지만... 그래도 만약... 당신이 내가 겪은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저게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으로 나를 작은 생각에 가두고 깨지고 아프게 내버려 두지 않아도 괜찮아요. 작은 생각에 갇히지 않고서도 승리할 수 있어요. 오히려 우물에 갇히지 않을수록 더 쉽게 더 다양하고 좋은 방법으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어요. 깨지고 아파서 무너져 내리면 내가 없어지고 사라져 버리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내가 없으면 세상도 삶도 행복도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불편하다면 멈춰주고 강요를 듣기 어려우면 힘들다고 말해줘요. 내가 아프지 않도록."
만약 말을 해도 들여다보니 개선이 없고, 오직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면, 더 나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오히려 그때는, 더 나를 지키도록 멈추어도 된다. 적어도 나는 우리가 행복하고 사랑하기 위해 사는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당신도 더 아프지 않도록 스스로를 도와도 된다.
멈추기를 선택한 그해 겨울, 나는 걱정이 앞섰고, 쉬는 것이 맞는지 불안하기도 했지만 우선은 스스로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수고한 나야. 아프느라 고생했어.
많이 힘들었지?
사랑하고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