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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04. 2023

편집 디자인의 세계

직장수난시대 #7

* 이 글은 논-픽션이다. 그저 어떤 식으로든 이글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다시 일을 구해야 한다. 무엇을 할까. 이력서를 쓰는 일과 지원하는 일이 이제 더는 두렵지 않았다. 승무원 학원을 다니며 몇십 번 이력서를 쓰고 지원하고, 면접을 연습해 온 기초가 있지 않던가. 그 기초가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 중요한 건,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거냐는 거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답은 간단했다.     


글, 그것만이 나의 꿈이었다.

    

사실 어릴 적부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내용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글과 그림은 깊게 연관되어 있다. 관심을 갈구하던 유아시절 색칠공부에 나온 그림에 A4용지를 덧대어 그렸다. 다 그린 그림을 보여주자 큰 어머니는 “참 잘 그렸네.”하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참 잘했다. 그 칭찬이 좋았다. 비록 뒤에서 친척동생이 “언니 그거 대고 그린 거잖아~”라고 원작여부에 시비를 거는 바람에 또 한 번 큰 전쟁을 치를 뻔했지만. 칭찬으로 시작한 그림은 나에게 사물을 오래 보고 느리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풍경에 속할 때 보고 맡고 만지고 속하듯이, 모든 것을 구석구석 깊게 속하고 만끽하는 일에서 오는 깊은 여유가 좋았다.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림 그리는 인생은 힘들다며 공부하기를 원했다. 엄마가 화를 내는 타입이면 싸웠을 텐데 엄마가 울어서 나는 그림을 접고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면서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어 그리웠다. 무언가를 깊게 즐기는 일이. 

조금이라도 그림과 비슷한 예술이 뭘까 생각하다 시를 쓰게 되었다. 시도 그랬다. 사물과 풍경을 오래 보고 기억하게 했다. 공부하다 힘이 들면 시를 쓰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조금씩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그림을 그리고 싶던 마음을 대체했다. 어느새 마음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우뚝 선 글이 “그래서 무슨 일을 할 거야?”라는 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출판사.


하지만 난 관련 학과를 나오거나 출판에 대해 하는 것도 없는 걸?


그러자 마음의 자리한 무언가가 말했다.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잖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아봐.


마음만으로는 편집자를 하고 싶었지만 오랜 유학 기간으로 한글에 자신이 없었다. 그럼 뭘 해야 할까. 일단 여러 출판사에 이력서를 보내보았다. 포토샵으로 괜찮은 포스터를 만들 줄 아는 실력과 열정을 한 출판사에서 좋게 봐주었다.     


“사실 모다씨 말고 다른 지원자를 뽑았었는데, 그 지원자가 지원을 포기해서 연락드렸어요... 혹시 그래도 다녀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출판사 사장님의 질문에 나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이제 출판사에서 나의 능력을 펼쳐보자!


옥상에 위치한 그 1인 출판사는 희고 작은 내부에 같은 종류의 책이 책장에 주르륵 꽂혀 있었다. 전임자는 손목에 생긴 터널 증후군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며 보호대로 감싼 손으로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사장님은 책 디자인에 대해 사소하고 기본적인 것부터 알려주셨다. 어떻게 시안을 만들어야 하고, 어떤 종이가 눈의 피로도를 감소시키는지. 인쇄소에서는 어떻게 인쇄를 하고 묻어 나온 것이 없는지 한 번쯤은 방문해서 확인해야 한다는 중요한 것까지.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발주처리를 한다. 반품 처리 및 팩스를 주고받으면 오전 10시. 홍보 관련 포스팅과 홍보물을 만들면 점심시간. 다 같이 밥을 먹고 잠시 쉬고 오면 책 편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선은 간단한 표지시안과 내지 시안을 각각 2~3개씩 만들어 PPT에 세트별로 배치한다. 이 시안은 소풍 가는 즐거움과 경쾌함 표현하는 파랑과 노랑을, 이 시안은 우주의 오묘함을 표현하는 보라와 여러 반짝임을 표현하는 점선을 사용하였는지 적는다. 주로 쓴 색감이 어떤 분위기를 연상시키는지 꿈보다 해몽을 하고 나면 작가님 또는 디자인 요청자가 의견을 준다. 그들이 시안 중 하나를 고르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편집과 책 작업이 진행된다. 우리 출판사는 교재도 만들었지만, 내가 주로 맡아 진행한 책을 에세이였다. 경제 에세이, 여행 에세이, 의학 에세이...  


디자인의 세계에는 어떤 규칙이 있었다. 어떻게 배치해야 눈이 편한지, 어떤 디자인이 세련되었는지. 지금까지는 참 쉽게 디자인했다고 생각한 여백 많은 디자인이 실은 가장 까다로운 디자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매번 이번 연도의 색상을 선정한다는 사실도, 색을 쓰기 전에 색상칩에서 노랑 110, 파랑 90, 빨강 10, 검정 20과 같은 숫자를 확인하고 색조정을 한다는 것도, 서로 어울리는 색과 조도가 존재한다는 것도 모두 신기했다. 직업병으로는 가게 벽에 붙은 글과 그림의 좌우배치가 맞는지 뚫어져라 쳐다보며 1mm의 차이점을 발견해버리거나, 디자인을 많이 한 날에는 도로 위 ‘일방통행’도 마우스로 클릭해 옮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착시효과가 일어났다.


디자인을 한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고 기회를 주신 사장님께 감사하여 단 1분도 쉬지 않고 퇴근까지 일했다. 온 힘을 다해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들었다. 사실 일이 많기도 했다. 1인 출판사라고 불리는 곳은 문자 그대로 한 명이서도 일하는 곳도 있지만 5인 이하의 사업장도 많다. 우리 출판사도 나, 사장님, 과장님 세 사람이 끝이었다. 회사 규모가 작으면 내가 기획도 하고, 편집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홍보도 하고, 영업도 하고 번역도 한다. 그냥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힘들어도 기뻤다. 책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을 한다니 다른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힘들 때면 내가 그토록 바랬던, 예술을 한다는 생각에 어쩌면 돌아 돌아서 결국 내가 원하던 예술을 하는 길로 들어선 게 아닐까 뿌듯하고 숨 쉬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국제도서전에서는 사장님이시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는 말 다했다.


그래도, 뿌듯했어도 내 몸을 깎아가며 일하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완급조절을 몰랐다. 이 업종도 처음, 어딘가 온전히 소속되어 일하기도 처음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믿고 멋지다 여겼던 이가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정말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갔다. 고통스럽다.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느 오후 세 시. 사장님은 갑자기 먹고 싶은 샌드위치를 고르라고 한다. 갑자기 간식타임인가? 의아해하는데 사장님이 말한다.     


“좀 급하게 들어온 일이 있어서, 이거 오늘 안에 우리 힘내서 빨리 끝내야 돼요.”     


갑자기? 퇴근까지 2시간 남았는데?

참고로 나는 당시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었다. 매달 174만 원. 시간 외 수당을 주시는 건가 생각하는데 사장님이 말한다.     


“오늘 늦게 간 거는 더 얹어서 드릴 거예요.”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하셔서 그렇구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프리랜서 개념으로 숨고나 다른 웹에 등록한 계정으로 디자인 요청이 왔는데, 완료일이 다음날 아침까지였고, 처음부터 각 잡고 준 틀에 맞게 책 디자인을 해야 하는 업무를 사장님이 급하게 받아 처리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한글로 진행하는 디자인이었다.


이십 분가량 샌드위치를 먹고 저녁 10시까지 일했다. 좀 더 있다 택시 타고 가도 괜찮다고 사장님이 말했지만, 막차는 타고 가야 된다고 철벽을 치고 처리한 일만 마무리한 채 집으로 갔다. 왜냐면 난 다들 9시 30분까지 출근해도 난 8시 50분까지는 와서 발주 정리와 처리를 해야 하니까. 빨리 집에 가서 쉬기라도 해야지. 하지만 그렇게 집에 온 그날의 야근수당은 정산되지 않았다. 사장님을 향한 실망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어차피 작가는 글만 쓰고 우리가 다 이쁘게 만들어주는데 10% 받는 것도 감지덕지지. 다른 덴 8% 밖에 안 줘.” *    


나도... 나도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인데. 사장님의 태도가, 글을 향한 태도와 수많은 모습이 자꾸만 상처가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사장님을 보며 알게 되었다.    

 

아. 그냥 장사구나 이거.     


지인이라서 한번 내게 된 책, 그냥 만들고 빨리 끝내버리자거나, 은근한 재산 자랑. 책의 내용과 글에는 관심이 거의 없고 오직 디자인과 제목만 신경 쓰는 아이러니한 모습. 감히 예상하건대 이 출판사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아. 관심이 있는 건 그저 잘 팔리냐 마느냐 그뿐. 이 책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내용을 남기게 될지는 관심이 없는 상업적인 모습은 당연한 거겠지 나는 꿀꺽 목소리를 삼키고 꾸준한 애정으로 모든 책을 편집했다. 하지만 내 사랑과는 달리 몸의 상태는 노력과 반대방향을 그리며 달려갔다. 오른발에 생긴 습진이 무릎 한 뼘 아래까지 올라왔고, 한의원에서 진행한 스트레스 검사에서 가장 위험한 수치가 나왔다. 꼭 힘들 때는 모르고 지나친다. 늘 아픔이 물집처럼 터지고 나서야 알게 된다.

     

아. 나 지금 아프구나. 나 많이 힘들구나.

     

닳고 닳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새에 아프다. 몸도, 마음도, 그래서 더 자신을 아껴줘야 되는데 완급조절을 모르는 신입은 그저 중독처럼 삶에 갈려 잊어버린다. 아니. 애초에 잘 몰랐다. 나를 사랑하고 내 주변 환경을 조절하며 나를 아끼고 일하는 완급조절의 방법을.


겨우 10개월. 나는 더는 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저릿한 손으로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엇을 하는지 설명하자 내 뒤의 기쁨과 기대로 가득 찬 신입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열 달 전의 내 모습 같았다.

몇 달 뒤 신입분을 다시 만나자 그녀는 다들 9시가 출근시간인데 9시 30분이 넘어서야 천천히 얼굴을 비친다며 불평을 토로했고, 나는 그 말에 과장님이 사장님의 남편분의 가까운 대학 후배고, 사장님은 본인 회사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일할 자유가 부어져서 그런 걸까 하는 의문이 다시 고개 드는 걸 느꼈다. 회사가 작을수록 그런 기본 적인 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신입분과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한 일 년 반 뒤쯤인가 그녀에게서 연락을 받을 때까지는.


“모다씨. 잘 지내요...? 저 몸이 너무 아파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녀도 나도 열정을 조절하는 법을 몰랐다. 완급조절뿐만이 아니았다. 조금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아프면 쉬고, 하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를 밀고 가지 않는 것이 어려웠다. 내 전임자도 후임자도 우린 그렇게 몸을 배렸다. 늘 온 힘을 다하며 사는 게 익숙해서, 몸에 에너지가 남지 않을 정도로 공부하고 발전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나를 위해 쓸 에너지도 남기지 않고 나를 희생하는 동안 나는 내 행복과 일상을 미뤄두고 아파도 강요했다. 만약 삶을 그림처럼 오래 보고, 글처럼 느리게 만끽하며 즐길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는 걸 이때의 내가 알았더라면 난 스스로를 희생하고 괴롭히는 수많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몰랐다.


내가 몰랐던 순간을 당신이 알게 된다면 어쩌면 당신은 나의 후회와 실패를 디딤돌 삼아 조금 더 이 순간을 오래 보고, 길게 보고, 느리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실패와 후회가 당신 삶에 좋은 장작이 되길 바라며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의 실패 이야기.





———

*설명 : 보통 작가님들은 팔린 책의 8~10%의 금액을 정산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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