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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20. 2023

직장순환시대

직작순(수)환(난)시대 #13

멀어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두 내려놓고 나서야 나는 내가 나무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떠나고 나서 보이는 울창한 숲을 보지 못하는 자리에 머무른 나무 말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잘하고 싶었습니다. 굽히지 않고 굽힐 수 없던 보호막을 덮고 나를 지키려고만 했습니다. 그래서 매번 누군가 나를 업신 여기는 기분이 들거나, 정당하지 않은 대우라는 생각이 들면 되려 상대를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상처받지 않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오래 다닐 줄로만 알았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무너지고, 또 나를 회사로 초대한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나서야. 이번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내가 한 실수도 인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커피숍에 앉아서 한번 얘기나 들어보자는 태도의 친구를 보면서 당장 인정하고자 하던 마음을 취소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사과했습니다.


"언니 내가 언니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면 정말 미안해."


그리고 인사했습니다.


"날 여기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 그 점 나 아직도 감사히 생각해. 지옥 같은 회사 생활에서 언니가 날 구해준 것과 다름없어."


하지만 역시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그런데 언니가 한 행동도 옳은 행동은 아니야."


다만, 이때 한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녀에게 따지고 싶어서 꺼낸 말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상대가 이 부분을 고치고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과 나도 내 실수를 인정하는 마음 말이에요. 그래서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녀가 고치길 바라는 부분을 최대한 의도가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할 말만 골라 부드럽게 설명했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였고, 그녀가 속상했고 내가 그렇게 만든 나의 과오와 교만한 부분을 충분히 사과했습니다.


"언니에게 상처 준 부분이 있다면 내가 정말 미안해. 


그리고 정말 고마웠어."


운동을 다니는 도장에서 관장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상대를 넘어뜨리려고 했는데 넘어가지 않는다고 괜히 억지로 힘주고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다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되려 힘을 빼고 넘어가주기도 하고 넘어진 채로 일어나는 법도 배우기도 하면서 여러 기술을 익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나는 유도에 삶의 지혜가 담긴 건 아닌가 싶습니다. 나보다 덩치가 작은 사람을 넘기기 위해서는 내가 더 몸을 낮게 숙여야 하고, 아무리 덩치가 크고 무거운 사람이라도 팔로 팔을 꼭 안은채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면 넘어가는 것이 말입니다. 마치 힘들수록 겸손하고 사랑으로 대하면 이겨내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는 것만 같습니다.


친구를 향한 애정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싸우지 않고, 진심을 전했고, 정말로 배웠습니다.


두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고 그럴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거짓을 꾸며내 상대를 넘어뜨리지 않고, 상대에게 나쁘든 말든 신경은 끈 채로 나만을 위해 행동하고, 되려 상대를 속이면서 아프게 할 이유도 없습니다. 너무 꿈같은 얘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란 무엇일까요?


사회는 우리의 기능적인 부분을 모은 단체입니다. 다리가 없어도 사무직으로 일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시각장애인이어도 선생님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실생활에서 장애인이 일하는데 힘이 들 거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집과 회사의 거리가 멀다고 해서 일을 못하지 않습니다. 장애란 하나의 특성입니다. 내향형인 성격이 나의 특성이듯이, 아이의 유무와 결혼의 유무도 사회에서는 하나의 특성일 뿐입니다. 성향이 어떻든, 몸에 문신이 있든, 우리가 기능으로 만나 서로를 돕는다는 사실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 일들이 끝마쳐졌지만, 앞으로 또 수난이 없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럴 때일수록 삶에서 여러 지혜를 배우는 기회로 삼기로 했습니다. 더 빨리 상황을 모면하기보다는 조금만 참고, 조금만 노력하고, 억지로 자신에게 하지 못하는 일을 강요하지 않고, 여러 방법을 찾으며 삶의 굳은살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나는 밀리지 않는 돌을 열심히 밀다가 밀다가 결국 밀지 못한 채로 멈추고 알게 되었습니다. 돌은 밀리지 않았지만 나는 강해졌습니다. 그러니 지금 실패하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어쩌면 수많은 경험 속에서 배운 여러 지혜를 서로에게 나눠볼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겁니다.


각기의 다른 기능으로 사회에 임하시는 모든 분을 존중하고, 자신의 어떤 점이 특출 나다고 자랑하지 않고, 힘들수록 조금 더 기다리고, 귀찮아도 조금이라도 가능한 노력을 하면, 혼자서는 많은 변화를 만들지 못하지만 다 같이 조금씩만 노력하면 이 사회를 더 잘 소통하고 나아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우리가 함께 더 나은 내일과 미래를 만들어 웃는 얼굴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도 나처럼 수난을 겪는 중이라면 나의 아픈 마음과 썩은 생각과 편견이 순환하여 흘러가서 사라졌듯, 당신 마음에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과거와 수난으로 가득한 현재에 바람이 불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비어진 자리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풍족해지길 바랍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많은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만하고 혼자 잘나고 싶었던 그때의 나보다 훨씬 즐겁고 기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시간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떠올리니 웃기기도 한 일이 많았지만, 저에게 스스로의 수난을 돌아보고 성장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와 경험이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의 당신의 수난이 순환되어 맑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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