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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Oct 07. 2022

진심 어린 말 한마디의 감동

직장수난시대 #11

*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힘든 나날이 이어진다. 그러는 와중에 즐거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왜 힘든가 생각해 보면 삶을 사랑하기에 힘든 것 같다. 덜 사랑하면 덜 힘들 텐데.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만 생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다. 숙명인가 보다. 아니면 저주일까?


회사의 상사가 언어폭행을 해도, 속은 상해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날들. 너 글자 못 읽어? 라며 그냥 들어도 모욕적인데 편집자에게는  모독적인 언사들이 오간다. 작은 잘못 하나에 죄인이 되어버린다. 괜히 와서 되지도 않는 꼬투리를 잡고 소리를 빽 지른다. 눈빛을 보니 한 대 때릴 기세다. 무섭다. 맞을까 봐. 모욕적인 나날들. 스트레스를 받아 옆구리가 아프다. 요즘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손에 들던 물건을 자주 놓친다. 자주 비틀거리고, 자주 멍하니 시간이 얼마 흘렀는지도 모르게 서있는다. 샴푸를 한 번했는지 두 번했는지 기억이 안 나 또 씻고, 수건을 꺼내서 얼굴을 닦아 놓고 또 새 수건을 꺼낸다.


울음을 참으면 귓가가 두근댄다. 두근두근. 울음을 터뜨리면 서서히 심장 고동이 멀어진다. 운다. 운다.


참고, 울고, 견디고. 그게 답은 아닌데. 세상이 내게 강요하나 싶다. 대체 언제까지 이 싸움에 맞서야 할까.


아니. 아니. 일반화하지 말자. 상사가 괴롭혀서 슬픈 건 그 사람 인격에 문제가 있어 그런 거지. 내 삶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나도 아는 데 직접 겪고 견디는 건 사뭇 다르다. 이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기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주눅이 들었다.


참다 참다 퇴사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언어폭행을 서슴지 않던 상사가 일을 다 뺐어버렸다. 그거 정리하고 간다고 더 있겠다고, 더 정리해 드리고 간다고 한 건데.

내가 편집 일을 좋아하고 책을 사랑한다는 걸 알아서 일부로 일이 없게끔 일을 다 빼앗아가버렸다. 멍하니 자리에 앉아 째깍째깍 시간을 보낸다. 나를 바보 만들고 싶어서, 괴롭히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이 상사와의 관계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혼자서 화를 내다가, 멍하니 화분에 심긴 작은 나무를 쳐다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멍하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저 ㅇㅇㅇ입니다."


"아. 네. 압니다. 무슨 일이시죠?"


"제가 일이 좀 있어서 관련 자료를 더 보충해 내일 보내드려도 되나요? 혹시 퇴사일이 오늘이신가요?"


"아. 아닙니다."


나는 교재편집에 필요한 문제를 만들어주시는 선생님께 퇴사일을 알려드리고 천천히 자료를 주셔도 괜찮다고, 실은 여전히 정신이 나간 , 정신 있는 척 답변했다. 그러자.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드립니다." 하고


딱히 한 것도 없는 내게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신다.


딱 그 한마디. 고맙다 수고했다. 그 한마디가 이 회사를 다니며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슬퍼서 소리가 조금 갈라져 나왔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바람을 쐐러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차가워진 공기를 한번 들이켜고서야 내가 얼마나 주눅이 들었는지. 나에게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상사로 인해 가슴이 얼마나 아팠었는지 깨달았다. 수고했다. 고맙다는 그분의 말이 계속 가슴에 머물러 기분 좋게 울렁거렸다. 일렁. 일렁.


그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왔는데, 사랑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는 문득.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전화기를 붙잡았다. 적막한 공백과 화면에 띄워진 슬픈 표정에 그 애가 말했다. 넌 예쁜 미소를 가진 사람이야. 나는 또 밤새 그 애의 진심에 마음이 울컥했다. 


이어지는 하루하루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또 얼마간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그래도 쓰는 인간으로 남아있고자, 또 생을, 삶을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는 숙명의 무게를 견뎌내며, 마음을 울린 말들을 남겨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소망했다.


언젠가 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길 바래.


괜찮은 척 괜찮지 않은 시간도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사실을 알아. 그때까지 조금만 힘내보자.


파이팅-


ps - 힘든 나날을 겪는 모든 회사원에게 직장인에게 아르바이트생에게 직원들에게 한마디의 진심 어린 말들이 닿길 바라는 제 진심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배웅

퇴사하겠다고 말하려는데 매번 내일 면담하자며 자리를 피하고, 또 다음날 면담하자고 피해 다니던 홍 과장님이 계시다. 홍 과장님은 늘 짜증 내는 씨부장의 분노에 고개 숙인다. 일이 산더미라 종종 자신이 한 말을 잊기도 했다. 그래서 더 오해는 쌓여갔고, 상황은 종종 더 극단적으로 흘러갔다. 결국 퇴사를 하게 된 날에 홍 과장님은 나를 데리고 일층의 커피숍에 가서 소금 커피를 사주셨다. 잠시 함께 앉아있으며 굳이 뭘 배웅을 나오나 싶었다. 그만큼 그동안 마음을 아프게 한 말들이 섭섭함이 되어 비집고 나왔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모다씨.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일도 많고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라서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여기서 있었던 일. 이제 다 잊고, 상처받았던 것도 다 두고 가요. 여기에서 힘들었던 거 이제 아무것도 들고 가지 말아요. 잘 먹고 잘 쉬고 그러면서 지내요. 나도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요."

그 말에 그동안 섭섭했던 마음이 달고 짜게 목구멍을 흐르고 내려갔다. 소금커피가 달고 짰다. 잠시간 그녀가 해준 여러 위로의 말과 배웅이 나로 하여금 증오와 분노를 덜어주었다. 대체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그동안 우리는 왜 그런 말들을 하지 못하고 계속 아픈 말들로 서로 오해를 쌓아만 왔었던 걸까. 그녀는 일이 많아서 멀리 못 나간다 하고 떠나는 나를 끝까지 바라보며 잘 지내라 손짓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한 과장님이었지만, 그래도 나를 아껴주신 분이었다.

또 언젠가 나는 입장이 바꿔 후배를 배웅하게 되었다. 직장 동료였지만, 선임으로 일을 리드하며 소통에 오해가 쌓이기도 하고, 종종 답답한 마음에 부딪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그 애를 배웅 나오면서, 문득 동생 생각이 나서 그 애 머리를 쓰다듬는데, 목구멍으로 달고 짠 물이 흐르고 내려갔다. 목구멍이 뜨거워지면서 문득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저러나 당신과 참 많이 정이 들었었구나. 그 애도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배웅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잘 가요. 잘 지내요. 연락할게요와 같이 하지 않을 말들을 입가에 머금는다.

"그래요. 잘 가요. 잘 지내고. 잘 먹고 잘 쉬고 그러면서 지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후배를 보내자, 홍 과장님이 떠올랐다.

홍 과장님의 따스한 말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그녀의 배웅으로 나는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법을 배웠다. 어느 칼럼에서인가. 한 마디 말이 월급은 주지 못하는 깊은 만족감을 준다는 말을 읽었다. 그저 한 번의 미소, 한 번의 따스한 말이면 된다. 그 작은 말들 하나로 세상은 조금 더 따사롭고 포근해질 수 있다. 

그래서일까. 가끔 나도 모르게 그녀가 쓰던 이상한 말투를 쓰고는 한다.

허허. 그렇군요.
허허.

홍 과장님. 당신의 진심 어린 말들이 아팠던 내 나날을 잠시 위로해 주었습니다. 더 미워하지 않고 떠나게 해 주셔서, 저에게 따스한 말과 배웅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당신의 나날에도 따사로운 위로가 가득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 많은 시간을 미움으로 보내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홍 과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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