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수난시대 #10
*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모사원은 일을 잘했다. 출판사 경력직으로 들와서 야근에 주말에 몸을 불사 질러 일을 했다. 모사원의 열정에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이 회사에 잔뼈가 굵은 군대공주가 그랬다. 이군대. 그녀는 경력직으로 들어온 모사원이 눈엣가시였다. 일을 잘해서 자기보다 더 잘될까 두려웠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자꾸만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배가 아프다. 이군대는 다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대놓고 모사원을 내리깔았다.
“여기 팀장님 말고 경력은 아무도 없잖아요.”
모사원. 그녀는 일만 잘했지 그 외는 잼병이었다. 괴롭힘을 당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싫다는 의사 표시를 명확히 하는 것인데, 그녀는 그것이 중요한지 알지 못했다. 그저 허허 웃어 보였고 되려 팀장님이 불편하게 생각하며 눈알을 굴려 모사원의 눈치를 살폈다.
한 번 두 번 넘어가면 그래도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가만히 있으면 깔보는 게 참 어이가 없지만 실상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모사원은 생각하지 않았다. 직접 겪기까지는. 이군대도 모사원이 일을 잘해 건드리지 못했다. 심지어 모사원이 들어와 낸 시리즈 책이 대박을 내면서 이군대는 더 기를 펼칠 수 없어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모사원은 일에 대한 열정은 많았지만 자신이 얼마만큼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파악이 부족했다. 그녀는 장기적으로 보지 못하고 야근과 주말근무를 자진했다. 그만큼 모사원은 책에 대한 열정이 엄청났다. 모사원이 일을 잘할수록 그녀에게 주어지는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모다는 일을 잘하니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요것도 하면 되겠다."
어느 순간 AI 게임 개발 업무를 중간에서 조율하고 기획하하는 일까지 도맡아 책임졌다. 그녀는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점점 업무강도는 높아졌지만 돌아오는 C부장의 말은 늘 같았다.
"일이 많아? 너 점심시간에도 일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해보지도 않고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녀는 몰랐다. C부장이 모른다는 걸. 한 사람이 얼마만큼 일할 수 있고 얼마나 일해야 하는지 C부장은 몰랐다. 그는 실무와는 꽤 거리가 멀었다. C부장은 맨날 입에 아이씨를 달고 살며 한숨을 푹푹 내꺼뜨렸다. 종종 모사원은 죄인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C부장의 책상 앞에 서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오탈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미 모두가 힘들어하는 교재 통편집을 매달 적어도 1권씩은 맡아서 편집했고, 문제를 갈아 끼우는 편집도 한 달 최소 두세 권에, 그 안에 들어가는 문제개발 외주 요청과 조율 업무도 자신이 맡아 진행하고, 받은 문제의 검수도 진행하고 있었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 판에 오탈자가 자꾸만 나와 C부장은 모사원이 탐탁지 않아 졌다. 순간 모사원의 머릿속에 이직한 팀장님이 했던 말이 스치듯 지나갔다.
"모다야 너 그렇게 일하면 오래 못 버티니까 가끔 산책도 나가고 쉬어주면서 해."
C부장은 모사원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렇게 실수가 많아서야 원."
모사원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부장 책상에 서있다가 부장이 "뭐 해? 자리로 돌아가." 하자 천천히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C부장은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내젓고 책상에 모사원이 편집한 책을 던지고 나갔다. 모사원은 몰랐다. 그게 C부장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방식이었음을. 물론 그 방식은 정상에서 한참 벗어났다. 인격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 인권 침해를 넘어 모욕의 수준이었지만 그게 씨부장의 최선이었음을 모사원은 몰랐다.
그래서 씨부장이 "너 계속 일 이렇게 할래? 일이 그렇게 많아? 그럼 줄여줘?"라고 비꼰 말에 "네. 줄여주세요."하고 당당하게 말한 것이다. 그녀는 몰랐다. 상사와 사이가 틀어지는 순간 회사는 지옥 같은 곳이 될 수 있다는 걸.
회사엔 R&R이라는 게 있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이란 뜻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업무적으로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존재한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개인의 역량과 경험이 쌓이면 진급도 하고 책임도 더해진다. 한 사람이 일을 많이 할 수 있다고 해서 과도한 업무를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을 주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건 사내 따돌림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는지도 모른 채로 당한다. 사내 따돌림에 포함된 상황이 어떤 것이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규를 살펴보면 이렇다.
1. 신체에 대하여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행위
2. 지속, 반복적인 욕설이나 폭언
3. 다른 직원들 앞에서 또는 온라인상에서 모욕감을 주거나 개인사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는 등 명예 훼손하는 행위
4. 합리적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개인 심부름 등 사적인 용무를 지시하는 행위
5. 합리적 이유 없이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는 행위
7.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 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행위
8. 정당한 이유 없이 상당기간 동안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는 업무와 무관한 일을 지시하거나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는 업무와 무관한 허드렛일만 시키는 행위
9. 정당한 이유 없이 상당기간 동안 일을 거의 주지 않는 행위
10. 그밖에 업무의 적정범위를 넘어 직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모사원이 씨부장의 눈밖에 나자 그동안 모사원을 시기했던 다른 사원들이 모사원에게 못되게 굴기 시작한다. 걸고넘어지면 어떻게든 걸고넘어질 수 있는 작은 것으로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조금씩 모사원은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고 표정이 사라졌다. 느낌이 사라지고 감정이 무뎌졌다.
괴롭혀도 괴롭혀도 모사원이 반응을 하지 않자 심기가 거슬린 씨부장은 일을 전부 빼앗아가버렸다. 회사는 다니는데 일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모두가 어딘가를 향해 가는데 자신만 유령처럼 떠돌며 쓸모없는 존재가 된 기분, 소외된 기분을 모사원은 느꼈다. 모사원은 만약 자신이 일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씨부장이 자신에게 어떻게 대했을지 상상해 보았다. 아마 씨부장은 자신의 우위를 사용하여 더 많은 일을 주었을 것이다. 그때도 모사원은 상사의 그러한 처우가 사내 따돌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만약 모사원이 매일의 심경을 일기로 적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모사원이 인사팀과 상담을 해서 업무적으로 따돌림을 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인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모사원은 이미 자신이 회사의 적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씨부장의 편에 섰고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다는 기분이었다. 여러 방법이 존재했지만 기댈 울타리가 없던 그녀는 다른 해결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차피 나갈 애라고 일을 빼앗아 버려도 아직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자였다.
사내 따돌림의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물론 그 뒤는 더 복잡하다. 보복에 대비해야 할 수도 있고, 회사의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2차 피해가 생겨날 수도 있다. 사실 중요한 건 모사원의 의지이다. 가장 중요한 건 모사원, 그러니까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도록 회사가 조치하고 피해자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정상적으로 업무가 가능하도록 복귀하는 것이다. 따돌림을 당해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다니는 여러 방법이 존재했다. 회사 내 인사부서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대응하고 예방하는 업무 총괄 직원, 줄여서 예방/대응 업무 담당자가 존재한다. 누구든지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담당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신고가 접수되면 바로 조사하여야 하며 상담 치료를 제공하거나, 근무장소(부서이동) 변경하거나, 유급 휴가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회사에게 있다. 또한 추후 2년 간 따돌림이 재발이 되지 않도록 방지하며 모니터링해야 한다. 만약 회사에 이야기했는데도 조사를 철회하거나 불합리한 처리를 한다면 이 또한 다른 따돌림으로 취급하여 회사에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따라서 회사는 피해자의 편이다.
하지만, 모사원은 자신이 기댈 사회의 울타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 같이 모두가 그녀를 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방법을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점점 그녀는 소외감과 슬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 다음 내용은 법정의무교육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교육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그날의 심경과 상황에 대한 일기를 쓸 때 주의할 점 :
내용에 괴롭힘을 당한 시간과 당시 자리에서 상황을 본 동료가 누구인지, 특이사항으로는 무엇이 있고, 당시 심경이 어땠는지를 명백하게 적어야 한다.
반복적인 폭언과 괴롭힘이 이어지는 경우 :
이 경우 녹음을 하더라도 자신이 참여한 녹음이므로 불법이 아니며, 법정 효력이 있다. SNS에서 명예훼손이 일어났다면 지체 없이 증거를 수집하자.
만약 당신이 따돌림의 피해자라면 :
1)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2) 가까운 사람과 상의하기
3) 병원 진료나 상담을 받기
4) 기록물을 증거로 활용하기
5) 처리절차 확인 후 신고하기
6) 노동청, 상급기관, 국가인권위원회 활용하기
7) 유급휴가, 근무장소 변경 요구하기
8) 보복갑질에 대비하기
9) 집단적인 대응방안 모색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