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혜 Feb 12. 2024

마음 상처를 낫게 하는 연고

옥계 근무 일지 2

일 근무가 걸리는 날에는 어김없이 전날에 책을 산다. 옥계 시내를 탈탈 털어 유일하게 하나 있는 서점서 한참을 서성이다 보면 여러 작가들의 생채기와 아문 딱지 자국들이 반듯한 마음 상자에 담겨 오롯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혜와 미주도 없는, 생산 현장도 최소한으로 돌아가는 주말의 적막함은 한 번도 울리지 않은 전화기처럼 쓸쓸하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두려움은 아무나 말을 걸어주면 왈칵 쏟아내고 싶은 사연을 갖은 여인이 된 것 같았다.


인터넷 주문하면 코 앞까지 당도할 책을 협소한 공간을 틀고 앉은 이 작은 서점에서 찾는 데는 마음을 추스리기 위한 간절함 배어 있다. 정작 절절한 과거가 있을 법한 서점 주인은 좁은 공간에서 책을 찾는 것인지 마음의 짐을 여기저기 내려놓는 것인지 헷갈려하는 내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 시간여를 헤매다 찾아낸 책은 어느새 손에 들려져 있다. 그 책을 사기보다 그 책 어딘가 문구가 발목을 잡아 내가 품은 것처럼 가슴팍 쪽으로 끌어안고 계산대 앞에 섰다. 서점 주인의 눈빛은 그제야 안심한 듯  손을 내밀어 책을 받고서는 직접 만든 마른 잎 책갈피를 끼워 주었다.


층에 노모를 모시고 사는 살림집을 겸한 서점은 딱히 이름이 없다. 옥계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적 주문 대행이 본업이지만 분명 아니 신기한 게도 마음을 위로하는 책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마 서점 주인은 옥계 바닥 사람들의 마음을 죄다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서점을 드나들면서 마흔 남짓 서점 주인과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장이 서는 날마다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이야기의 진위가 궁금한 적이 많지만 이곳에 서점을 열어주는 자체가 고마워 불편해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넘겨짚는 질문 상대에게 던지는 것은 오히려 관심이 아닌 상처가 된다. 사랑 앞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직장 생활의 부당함에 맞서지 못하는 사람에게 신은 왜 그러고 사냐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냥 조금 더 그 시절을 견뎌내야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행이었다. 서로 불편한 질문이 오갈 필요도 없이 선뜻 어 온 책! 그 너머 작가가 품고 썼을 생각들이 유난히 긴 주말을 혼자 보내는 내게 위로와 설렘을 선사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아마 조금 숨통이 트일 정도 창을 열어 아직은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음에 천천히 밀어 넣을 테다. 그리고 시작되는 또 하루를 묵묵히 받아들이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과 함께 끝난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