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처음 겪은 '권고사직'
인스타그램에 흥미를 붙이고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진행하며 감사하게도 PM 역할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 기획이라는 업무에 있어 데이터 기반의 분석을 위해 구글 애널리틱스 과정도 공부하고, 짧지만 공식 계정도 기획하며 일 자체가 좋아지고, 진심이 되었고 더 잘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마음을 잡고 정신을 차려 제대로 해보자 결심한 게 불과 올해 3월 중순 경이다. 마음을 잡기까지 회사에서는 나의 방황 아닌 방황의 시간을 기다려 주었고, 나의 직속상관과 몇 번의 미팅 시간도 가지며 방향을 잡게 되었다.
이사로 취임하셨던 분은 6월부터 공동 대표가 되었고, 회사의 방향성은 더 뚜렷해지며, 공동 대표로서의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공동 대표는 건강상 이유로 쉬는 기간을 가지기로 하며 회사는 그렇게 방향에 맞춰 잘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다 1년 전 회사에 입사할 무렵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던 기억이 났다. 계획 없이 무모한 도전으로 고배를 마셨지만, 이젠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 것이다. 1년이 지나서도 다시 도전할 생각을 한 건 하고 싶던 것이자 올해 목표 중 하나였고,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 나의 일과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쓸지 정하니 목차까지 쉽게 나열하게 되고 내용은 이미 내 머릿속에 있어서 밖으로 풀어내기만 하면 돼서 다시 브런치 작가 신청 준비를 하고 있었다.
권고사직 : 사용자 측에서 근로자에게 퇴직을 권유하고 근로자가 이를 받아들여 사직서를 제출하는 형식을 통해서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것 *네이버 지식 백과
그러던 7월 초 어느 날, 회사 내부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금 깔려 있었고 어디나 그렇듯 이런 분위기를 간부급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7월 둘째 주 불안불안하던 폭탄이 터졌다. 휴식 중이던 대표가 갑자기 나타나 직원 전체를 소집해 건강상 이유와 재정 문제로 회사를 폐업하기로 결정했고, 7월 말까지만 자율적으로 출근하고 8월에는 사무실 폐쇄 예정이며 직원들은 8월 15일까지 근무한 것으로 처리 및 해당 일자로 폐업하겠다는 공지였다. 그리고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폐업에 의한 권고사직서를 작성해야 했고, 회사에 있는 짐도 정리했다.
수습 기간이 지나 정규직이 된 지 얼마 안 된 직원들도 있었고, 입사한지 2주 정도 된 직원도 있었다. 한 마디로 참담했다. 특히 나는 늦은 나이 이직 제안에 직종을 바꿔 이직을 했고, 힘든 시간을 견뎌 마음을 잡은 상태였으며, 6월 집안 상황이 좋지 않기도 했다. 정말 막막할 뿐이었다. 폐업을 선언하며 대표는 사과했지만, 사실 다른 공동 대표도 있는데 폐업밖에 답이 없었던 걸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어 물었고 다른 공동 대표는 월급을 주는 형태로 고용한 사람이지 주주는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어수선하게 회사는 정리되었고, 남은 건 실직한 나였다.
한동안은 처음 겪어 보는 폐업과 권고사직으로 통수를 '탕' 맞은 느낌이었다. 현실을 생각하면 병원으로 취직해 이전의 연봉을 최대한 유지하는 게 맞았다. 그러나 정신 차리고 보낸 그 짧은 3개월 사이 인스타그램에서 비전을 보았고, 일이 너무나도 재미있어 살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짧은 경력이었고, 연봉과 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 불 보듯 훤했다. 한편으로는 나에게 그런 대우를 해주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 회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있었다.
'회사'라는 이름의 울타리
사라진 회사
다시 한번 절망했다. 아, 회사가 이렇게 없어지기도 하는구나. 오랜 기간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월급일이 되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는 안정적인 삶을 살던 나에게, 이직을 하더라도 타격이 없도록 '쉼' 없이 일하던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그 울타리는 사라지고 말았다. 오너가 지출하는 인건비가 아깝지 않도록, 그 월급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 온 17년 차 직장 생활 중 처음 겪는 이 상황이 믿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1년여 전 서른아홉 나의 선택에 의문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