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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 Aug 10. 2024

오다이바, 아니 아리아케, 아니 무지


헤맴은 계속된다, 줄서기도



원래는 팀랩 전시를 본 다음 유람선을 타고 아사쿠사로 갈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갓파바시 그릇거리에 관심이 가던 참이라 아사쿠사 구경을 좀 하고 그대로 그 근처인 그릇거리로 향하면 되겠지 싶었다. 모처럼 관광객다운 이 동선은 역시 내 생각은 아니고 일본에 여러 번 와본 모 씨의 추천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비가 심상찮게 내리고 비가 그친 다음에도 하늘이 너무 흐린 바람에 유람선을 탈 마음이 안 들었고 그렇게 나의 무계획 여행자 컨셉은 강제로 지켜지게 되었다.


전시관에서 나와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반대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불편하게 근처에 갈 만한 식당을 찾았다. 라멘 맛집도 있던데 찾아가기가 애매했다. 그러다가 조금만 걸으면 아리아케 가든이라는 큰 쇼핑몰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구글맵 리뷰를 읽어보고 갑자기 꽂힌 나는 아리아케 가든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온천, 영화관, 대형 무지 매장이 있다고 한다. 그중 내가 누릴 수 있는 건 무지 매장밖에 없겠지만 온천과 영화관이 있는 몰이라니 어쨌든 잘 되어 있을 것 같았다.


다리 건너다가 한 컷. 아까 저 둥근 건물을 팀랩 전시관과 헷갈려 잠시 헤맸다. (버스정류장 기준으로 전시관은 오른쪽, 저 건물은 왼쪽에 있다)


가는 길에 아리아케 아레나가 있는데 여기는 가든과는 다르다. 무슨 큰 경기나 콘서트가 있는지 어린 안내요원들이 길목마다 서 있었다. 분위기로 보아 아이돌 콘서트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는데 내 짐작일 뿐이다(안내요원들이 상당히 어리고, 서로 다들 친해 보이고, 매우 자발적으로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라 팬클럽인가 싶었다). 혹시 지나쳤다가 가든을 놓칠까봐 그 중 한 명의 불쌍한 요원에게 말을 걸어서 당황시키고 말았다. 어쨌든 의사소통이 되어 계속 걷다 보니 곧 아리아케 가든이 나왔다.


커다란 건물 앞에는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아, 너무 크고, 쾌적하고, 한가롭다. 마침 비도 그쳐 날씨도 좋았다. 배가 고팠던 나는 그대로 식당가로 직행했다. 5층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또 약간의 꼬임이 발생했는데, 일단 가고 싶은 곳이 두 군데였다. 일본 가정식 또는 스시집. 그런데 어제 신주쿠 사람 너무 많아 사태로 인해 덴푸라 대신 이미 스시를 먹어버린 나. 가정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침의 전시로 기분이 좋아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 통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는 것에 그저 '와 여기 맛있는 곳인가보다' 정도의 생각밖에 하지 않으며 안일하게 줄을 섰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줄은 영영 줄어들지 않는 마법이 걸려 있었는데..!


줄은 웬만한 어느 식당에나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잠시 서있다 보니 내 뒤에 선 사람들이 내 앞에 선 사람들보다 많아져서 뭔가 제대로 고른 것 같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갈 마음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식당에는 1인석도 많고 오래오래 눌러앉아 수다를 떨 분위기는 아니어서 손님들은 식사를 마치는 대로 부지런히 일어서는 편이었다. 그래서 느긋하게 서서는 가게 앞의 음식 모형을 보면서 뭘 먹을지 고르는데 열중했다.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여기도 한국어가 있었던 것 같기도) 일본 가정식이라니 아무래도 생선구이를 한 번 먹어줘야 할 것 같고, 마침 하룻동안 재운 고등어구이를 추천하길래 치킨난반보다는 고등어구이로 기울고 있었다.


내가 간과한 것은 대기줄이 빨리 줄어들려면 앞서 들어간 손님과 직원 모두의 합동 플레이가 아름답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도 어째 직원들은 바깥에 길게 늘어선 줄에 무감하게도 아주 여유로운 태도로 빈자리를 치우고, 서둘러 다음 손님을 받을 생각도 없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보통 이런 것인지, 아니면 이 식당 직원들이 유독 여유가 넘치는 건지, 아니면 이 식당이 이 정도로 붐벼본 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빨리빨리의 한국인은 숨이 몇 번 넘어갔다. 1인석이 저기 비어 있는데! 아닛 저기도! 텔레파시를 한참 보내면 그제서야 한 명이 슬그머니 행주를 들고 빈자리로 향했다. 드디어..! 싶었는데 빈자리에 뭔가 안내문 같은 것을 딸깍 내려놓기만 하고 새로운 손님을 들여보내주지를 않는다. 예약석인가? 예약을 받는 느낌의 식당은 아닌데..


이렇게 몇 번의 초조-체념, 초조-체념 구간을 반복한 뒤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1인석으로 안내되어 직원의 어쩌구 저쩌구 자동재생되는 설명을 애써 끊고 간신히 스미마셍 but 나는 당신이 지금까지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는 메세지를 전달해 낸다. 그랬더니 직원은 주문은 앞에 놓인 QR코드에 접속해서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불현듯 아까 빈자리에 다른 직원이 내려놓던, 예약석 표시라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났다. 설마 그것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얌전히 QR로 고등어구이를 주문했다.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접속한 주문사이트에는 한국어는 확실히 없었고 영어가 있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하도 오랫동안 서서 가게 앞 모형 음식 메뉴를 노려보고 있었던 통에 고등어구이 메뉴에 써 있던 '고등어'의 히라가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영어를 보고 고등어구이를 찾은 뒤 일본어를 보고 재차 확인했는지, 히라가나만 보고 더듬더듬 찾아서 주문했는지 여튼 원하는 것을 주문해냈다. (밥을 잡곡밥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걸 보면 어설프게라도 영어가 있지 않았으려나.)


그리고 또 한참 기다려 드디어 고등어구이를 받아냈다. 이것이 바로 하룻밤동안 소금에 몸을 누이고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고등어! 그리고 와사비 대신 갈은 무에 레몬! 너는 무조건 맛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기다린 시간이 헛 것이 된단 말야... 그런 철저하게 인간중심적인 생각을 하며 살을 바른다. 고등어는 왕가시가 너무 많기는 했으나 다행히 맛은 괜찮았다. 밥이며 반찬들도 만족스럽게 먹었다. 식사에는 만족했다. 식당에서 나오니 시간이 한참 흘러가 있었지만.


쇼핑몰 구경은 왜 끝이 없나

일단 밥 먹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그대로 나가기는 아쉬웠다. 게다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여행에서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어제 도큐플라자나 다이마루에서 자극만 되고 만족하지 못한 쇼핑욕도 남아 있었다. 대조적으로 커다랗고 한적한 몰에 들어오니 여기 좀 오래 있고 싶기도 하고.


지역 특산물을 모아놓고 팔기도 하고 세계의 다양한 음식 재료도 있다. 구경하기 좋고 가격도 나쁘지 않았는데 어쩐지 지갑이 열리지는 않았다. 팀에 돌릴 간식을 사가야 하는데. 대체 무엇을.. 무엇을..! 간식 종류는 차고 넘치게 많다. 하지만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결국 또 발이 지친 상태로 무지에 들어섰다. 이 쇼핑몰의 무지가 또 긴자 유니클로처럼 유난히 크고 물건이 많은 곳이라 한다. 무지니까 어느 정도의 퀄리티 보장도 될 테고. 팀 선물은 여기서 승부를 보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들어갔다가 잠시 내가 이케아에 와 있나 싶었다.

화분에 가구에.. 일본에 살러 왔다간 오늘 여기서 못 나갈 뻔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간식을 찾아간다.


식품류 코너에 간 나는 드디어 안도했다. 여기서 못 사고 갈 리가 없다^^ 사실 사기로 들면 일본카레 등 간단한 레토르트 제품도 너무 다양하고 과자, 젤리, 초콜렛 등 디저트류도 엄청 많다. 회사와 집에 가져갈 간단한 과자 위주로 골랐다.

전부 찍은 사진이 없다. 이건 배분을 마친 후 집에 남은 것만. 실제로는 이 세 배쯤 샀는데, 사진에 스티커를 붙여놓은 게 내가 마음에 들었던 제품이다.

김과자: 만족. 아는 그 맛. 짭조름 달달하다. 맥주 안주.

프렛젤 과자: 레몬 베이컨 맛이라고 한다. 호기심에 샀다. 짜다.

녹차쿠키: 만족!!! 개인적으로 극호였다. 녹차쿠키 사이에 팥이 필링으로 들어간 샌드 형태다. 많이 달지 않고 입 안에서 파사삭 부서지면서 녹차와 팥이 섞이는 게 너무 맛있었다. 더 사올걸 싶었다. 직장에는 이것과 그새 잊어버린 다른 과자 한 가지를 더 돌렸다.

라면과자: 아는 맛일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맥주 안주로 먹더라도 너무 짰다. 집에 아직도 많이 남았다.

커피: 만족!! 커피는 홀빈도 사고 드립백도 샀다. 홀빈은 오리지널만, 드립백은 오리지널과 진한 맛으로. 왠지 그냥 믿음이 가서 많이 샀는데 그러길 잘했다. 진한 맛은 스타벅스 원두 정도의 느낌으로, 나는 대단히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 오리지널과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 맘에 든다. 오리지널은 고소하고 향긋하고 중도적인 맛이다. 산미가 좀 있다.


아무튼 잔뜩 사서 무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 유니클로도 카페가 있더니 무지도 카페가 있다.. 아니 사실 이케아 같은 푸드코트도 있다. 푸드코트에서는  제대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앗 잠깐, 여기서 먹었으면 시간을 한 시간 넘게 아꼈을 것 같은데..!) 커피와 케잌을 묶어서 할인하고 있었는데 배가 불러 잠시 헤매기만 하다가 나왔다. 이 카페는 100엔에 커피 자판기를 이용할 수 있는 베이커리 옆에 붙은 작은 공간이다.

가득찬 쇼핑백을 옆에 올려두고 꽤 맛있었던 100엔 커피를 음미하며 쉰다. 맛이 없었으면 원두며 드립백이며 엄마 드릴 것까지 바리바리 산 걸 후회할 뻔 했다. 개인적으로는 세븐일레븐 커피보다 마음에 들었다.


쉬면서 다음 행선지를 고민한다. 어느새 셋째날 오후도 절반이 넘게 지나가 있었다. 이대로 일정을 여기서 끝낼까? 아까 맛있어보이던 말차 디저트 가게에 가봐도 되고. 줄을 한 번 더 서야겠지만. 아니면 오다이바 관광을 좀 해봐?


고민하다 나는 결국 다시 도쿄 시내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릇거리는 문을 일찍 닫는다고 하기는 하는데, 느긋한 구경은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한 군데라도 들러야겠다. 저 쇼핑백을 끌고 지고. 아리아케 몰은 여기서 안녕. 구글맵에서 평점이 상당히 높더라니 나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팀랩 Borderless가 위치가 더 좋아서 오히려 Planets를 이번에 먼저 왔는데, 이제 보니 첫 여행에서는 Borderless에 가면서 아자부다이 힐즈도 구경하고(이게 아주 맨 처음의 계획이었긴 하다), 도쿄 중심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두 번째나 세 번째쯤 방문했을 때 아예 오다이바에 좀 좋은 숙소를 잡아서 편하게 쉬면서 Planets 전시를 보고 아리아케 몰에 들락날락하면서 쇼핑하고 먹고 놀다 가면 좋을 뻔했다. 그러다 심심하면 건담도 보고, 유람선도 타고. 어째 여행이 계속 ‘그럴 걸 그랬지’의 연속이다. 누가 대신 이렇게 여행하고 자랑 좀 해주세요! 저는 오다이바에 와서 팀랩이랑 무지 찍고 갑니다…


팀랩 플래닛 - 아리아케 가든(고등어구이집,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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