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데이비드 소로우. 은행나무. 나는 생을 깊게 살기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책 월든을 펼치노라면 어디든 명언이 쏟아져 나온다. 그의 삶이 명품이어서 그의 문장 모두가 명언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도 그랬다.
지난주 배철현 교수님의 글쓰기 수업과제가 '나를 위한 조가(弔歌)'를 쓰는 거였다. 블로그를 뒤적여 보니 죽음에 관한 나의 글이 두 편 있었다. 하나는 독서모임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은 후 독후활동의 일환으로 함께 유언장 쓰기를 했을 때 남긴 블로그였다. 죽음을 맞으며 유언장을 써야 하는데 오히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또 하나는 몇 년 전 신우염으로 입원했다가 발견된 악성종양 제거 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오른 그날을 떠올리며 쓴 <마지막 순간 replay>라는 블로그 글이었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 하루의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두 아이들을 보고 싶을 뿐이었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은행 CD기에서 오만 원씩을 찾아 두 아들에게 쥐어 주고 남편을 말없이 지긋이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돌아보니 죽음은 삶을 비추는 강렬한 반사경이었다.
이번 주 나를 위한 조가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며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려 힘들었다. 쥐고 떠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집착한 불쌍한 나를 위해 먼저 울었고, 충분히 위로해 주지 못한 남편과 두 아들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죽음을 직면해야 비로소 자신의 매일을 의미 있게 경영할 수 있는 각성과 절박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중략)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월든 138쪽.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월든호수에 칩거하며 원시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는 소로우를 나는 신기한 이방인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점점 더 그가 매일매일을 헛되지 않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려 실천했던 놀라운 실천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분명한 것은 죽음을 앞에 두고 내가 쓸데없이 집착했던 많은 것들로 인해 후회와 회한의 눈물을 흘릴 거라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죽음을 앞에 두고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가족과 지인을 떠올리며 아쉬움과 외로움의 눈물을 흘릴 거라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나도 그 누구도 단 한 줌의 흙조차 움켜잡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사실이다. 소로우의 말처럼 '가볍고 가볍게' 살아야겠다. 집착을 버리고 사랑하며 가장 가볍게 움켜잡고 죽음을 준비해야겠다. 내일의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매는 어리석은 삶은 때려 엎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