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의미로 산다
<일류의 조건>사람은 의미 없는 일을 강요당할 때 견디기 힘들어한다.
오늘의 한 줄
<일류의 조건> 사이토다카시. 필름. 사람은 의미 없는 일을 강요당할 때 견디기 힘들어한다. 318쪽
얼마 전 나는 선생님들의 커뮤니티에 분노의 글을 한 편 실은 적이 있다. 여러 선생님께서 공감의 글이나 비공감의 글을 달아 주시니 일단은 기분이 좋았다. '아! 내 글을 관심 있게 보시는 분들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그 이후 나는 선생님들의 커뮤니티에 글을 가끔 올리고 있다.
'신규교직원 100일 기념 조촐한 파티와 롤링페이퍼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방식은 첨부이미지 참고하시면 됩니다.' 신규교사 ***, 신규조리실무사 ***, 신규실무사 *** 대상자는 세명의 신규 교직원이란다. 1호나 2호의 메지시는 아니었지만, 늘 업무지시를 하던 학교의 3호 부장님의 메시지다. 업무의 연장으로 읽히기도 했기 때문일까 이렇게 좋은 취지의 이벤트에 옹졸한 나는 그만 울컥했다. 1초도 늦지 않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나는 롤링페이퍼가 뭔지 몰라서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대충대충 써 주면 될 것을 나잇살이나 먹은 내가 왜 이렇게 옹졸한 반응을 보이는지 나도 의아했다. 찜찜한 마음에 일단 마음이 가는 신규교사 *** 선생님께 나름 정성껏 100일 축하 메시지를 메신저로 써서 얼른 보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얼굴도 모르는 신규조리종사원과 늘 열심히 도와주지만 책임의 문제에서 늘 쏘옥 자리를 빼는 직책에 있는 실무사에게 100일 축하를 해 줄 정도로 열린 마음이 '나는' 못되었다. 나는 오직 신규교사 *** 만 측은했고, 신규교사 ***의 100일만 축하해 주고 싶은 옹졸한 선생이었다.
'나는 롤링페이퍼가 뭔지 몰라서 참여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가감 없이 교사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자 논란이 뜨거웠다. 비공감도 많았다. 꼰대교사의 꼰대스러움으로 읽는 선생님도 있었고, '지나치다', 혹은 '너무하다'는 댓글을 올리시기도 했다. '길 가다가 얼굴 모르는 사람에게도 따뜻함과 축하를 건네주는 게 사람 사는 건데, 세상이 점점 팍팍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네요.'라는 비공감 의견도 있었다.
한편 공감도 상당해서 나름 위로가 많이 되었다. 어떤 선생님은 작년에 1호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 기념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너무 하기 싫었다. 마음 나누기는 학교에서 하지 말고 가족과 친지들과 하셨으면 한다는 공감도 있었고, '귀차니즘'에 빠져있다는 모 선생님은 '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공감글을 남겨 주시기도 했다.
그 어떤 선택도 결국 명쾌한 선택이 없는 선택지를 3호 부장님이 하달한 사안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읽던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내가 겨우 몇 줄의 끄적거림을 그리 질색했던 이유를 책 속에서 명쾌하게 찾아낸 거다.
'사람은 의미 없는 일을 강요당할 때 견디기 힘들어한다. 구멍을 파고 다시 메워야 하는 작업이나 삽으로 산을 옮겨 놓고 다시 원위치로 되돌려야 하는 작업을 지시받으면, 기가 막혀서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라는 것을 도스토예프스키도 이야기한 바 있다.' <일류의 조건> 318쪽. 사이토 다카시.
*참고. <죽음의 집> 도스토예프스키. 가장 가혹한 형벌은 전혀 무익하고 무의미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교육의 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롤링페이퍼를 쓰도록 하기도 하는데, 정말 억지로 '잘 지내.' 세 글자 쓰는 학생들에게 울컥해서 다시 써오라며 짜증을 냈었다. 이젠 그 학생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잘 지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예시문이라도 몇 개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