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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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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21. 2024

동거 열이렛날

콩이 쾌유 일지-약 다 먹고 난 첫 날


비로소 며칠 만에 아침 스트레칭을 했다.

어젯밤에도 꼼짝할 수 없이 피곤해 걸렀고, 그전 며칠은 자는 둥 마는 둥 대본 작업 때문에 잠드는 의식, 잠에서 깨어나는 의식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침 스트레칭과 잠들기 전 스트레칭은 그야말로 의식이다.

내 몸을 깨우며 마음을 정돈하는.


휴대전화기 유튜브 영상 중 그때의 기분에 따라 골라서 따라 한다. 몇 년을 보다 보니 목소리가 쨍쨍하거나 사변이 많은 건 제외한다. 콘텐츠 보다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건 보는 입장에서 피곤하다. 물론 이 사이엔 구별하기 힘든 경계가 있다. 내 입장에선 꼭 필요한 정보 이외의 모든 말이 사족이다. 예를 들면 장황한 아침 인사라든지 끝난 후의 과도한 칭찬이라든지......

누워서 하다가 앉아서 하는데, 화장실 갔다 오면서 중문 커튼을 리본핀으로 집어놓고 온 후 살짝 열어놓은 방문 틈 사이로 콩이와 눈이 마주쳤다. 완전 CCTV 같다. 하지만 내가 계속 뚫어지라 쳐다보니 슬쩍 눈을 피하고 잠드는 척한다.

드디어 일어나자마자 후다닥 셔츠 걸쳐 입고 콩이 용변 보러 산책 나가는 일보다 내 몸 챙기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17일 만이다.


08:00 내가 셔츠를 걸쳐입는 걸 보고는 콩이도 앞다리 스트레칭을 한다.

소변을 위한 가까운 산책 700m. 벌써 햇살이 따갑다.

마당에서 빗질을 해주고 안고 올라와 어젯밤 먹고 남은 사료를 손으로 주었다. 너무 적은 듯해 새로 50g 정도 꺼내 손바닥에 주니 싹 먹었다. 밥그릇을 다 먹을 때마다 비누로 씻어 햇볕에 일광소독한다. 밖에선 먹은 그릇에 또 주고 또 주고 하던 콩이 그릇도 매 끼니 설거지를 하는 셈이다.  

어제부로 약도 다 먹였다. 훨씬 한가하다.

20분 만에 오전 임무 완료.


며칠 전 튿어진 전기스탠드 리본을 실과 바늘로 꿰맸다.

정과 통화하던 밤에 발견했으니 열하루만이다.

그동안 정신이 없긴 없었나 보다.


'생명의 길' 제7편 문제를 풀었다.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새롭다. 이래서 재교육이 필요하다.

내 삶을 돌아본다.  

내가 하느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를.

양심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다시 다가가보려는 그분, 그곳 혹은 그 어떤.


덕德이란 게 믿음=신덕信德, 희망=망덕望德, 사랑=애덕愛德이라고 한다.

개신교의 믿음, 소망, 사랑이다.

희망과 소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랄 희希와 바랄 망望 과 바 소所와 바랄 망望, 희망은 바라고 바람이고 소망은 바라는 바.


다음사전에는 다음과 같다.

*희망:앞일에 대하여 좋은 결과를 기대함, 앞으로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

*소망:바라고 원함


그렇다면 희망이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뜻. 둘의 용도가 다르다.


한편 어제 친구가 말한 덕은 이 세 가지를 모두 합한 것인가?

내게 있는 덕이란 무엇인가?


머리, 가슴, 장 중 가슴의 사람인 내게 지금 가득한 건 애덕. 그러니 콩이와 동거하며 돌보지.

희망은 정원을 찾지 않기로 한 때부터 아직까지도 딱히 없다. 현재 생활 이 정도의 안정과 평화가 유지되길 바랄 뿐.

믿음은 글쎄 사람과 사람 사이 교양 수준의(물론 이 수준은 천차만별이고 내 수준은 상당히 높지만) 상호 신뢰나 약속 말고 하나님이 나를 늘 사랑하시고 지켜주신다는 막연한 믿음 외 어떤?


오늘은 해가 가장 긴 하지夏至. 여름에 다다른 날이다.

하지 전에 재도전하려고 했었다. 해가 길어야 오래 걸을 수 있고, 장마 전에.

콩이 사고가 없었다면......, 아니 콩이와 동거가 없었더라도 다큐멘터리 제작이 예정돼 있었고, 새 계약일이  생겼다.

어딘가에 다시 가는 일은 그때 가봐야 안다. 계획은 한갓 바람일뿐.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가지 않으면 다음에 어떻게 될 지 모른다. 그때 내가 기어이 종주하지 않으면 안 됐던 이유처럼.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나더니 잠자던 콩이가 고개를 들고 앉았다. 내려가보니 1TB SSD카드가 배송되었다. 오~ 서울에서 온 선물이다. 올 여름 정리할 게 한 가지 더 늘었다.

콩이와 동거 덕분에 발이 묶인 사이 이 일 저 일 할 일을 차곡차곡 하게되었다. 이 또한 감사하다.


종일 1학기 결과 보고서 작성.


19시에 콩이를 안고 내려갔다. 

1층에 주인네가 오셨다. 

이모님이 보시더니 "아이고. 개 때문에 고생이네." 하신다. 

여주인이 "고생도 이만 저만 고생이 아니야." 하신다. 


콩이 사고 나던 날, 

탈핵신문읽기 모임이 있었다. 

특별히 근처에서 하길래 자전거를 타고 갔었다. 

이사오자마자 바리바리 싸들고 와 집들이 해주었던 이들이었다. 

이집에서 사는 게 어떠냐고 묻길래, 집주인이 인덕 있고 동네에서 맏언니처럼 인심도 있고 신망이 있기에 내가 그집 세입자라서 덕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날 집에 오자마자 산책하다 콩이 사고가 났고 집주인과 며칠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얼추 정리가 된 지금 주인은 다시 마음 좋은 분이 되었다. 

내가 만약 그때 집주인 욕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데 나는 집주인 칭찬을 한 뒤 의외의 모습을 보았기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언젠가 내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칭찬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미안할까 하는 생각.  


간단한 산책 겸 소변.

빗질 해주고 안고 올라와 로열 캐닌 사료 먹이니 19:20

조금 남긴 사료 21:40에 다 먹임.

콩이 밥그릇 욕실에서 비누로 설거지 해서 다용도실에 말림.

투약만 없어도 한결 수월하다.


밥해먹고 일하니 또 훌쩍 밤10시가 넘었네.

어째 쉬지 않고 일만 하는 듯하다.


콩아~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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