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방과 그분방
8월, 둥글레방
산동이가 제일 보고 싶었다.
쉼터지기님 집 앞에 정차하고 산동이를 부르며 간식을 들고 갔다. 산동이는 나를 알아보고 짖기 시작했다. 간식을 줘도 먹지 않고 떨어뜨렸다. 개가 먹을 것보다 사람을 더 원하다니 놀라운 현상이었다. 산동이는 만져줄 수 없이 냄새가 심했다. 연두색 눈곱도 양쪽 눈 가운데 쪽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개집 앞에 교회 의자처럼 긴 의자가 생겼는데 그 위로 털이 가득했다. 개집은 눅눅해 보였다. 습진이 생길 것 같았다. 바싹 마른날이 오면 목욕을 시켜줘야겠다.
귀정사 쉼터로 올라왔다. 내가 머물 곳은 예전에 도법스님이 지내셨던 둥글레방이었다. 동쪽 창호지문으로 들어가면 남쪽과 서쪽 아궁이 위로 작은 창이 두 개 있다. 흙집에는 지붕에 덧댄 양철 차양이 있었다. 그 위로 비가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집중해서 내렸다.
차에 있는 짐을 최소한으로만 내렸다. 둥글레방부터 귀정사 담장 옆 차까지는 50m는 족히 되는 데다 경사도 심하고 잡풀이 억세게 자라 있기 때문에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도보 앱상 2km를 걸었다.
저녁 6시 종소리에 저녁밥을 먹었다. 가지전이 나왔다. 비 오는 날 기름진 전을 먹으니 맛이 좋았다.
밥 먹고 이 닦고 카페에서 의자를 가져왔는데 690m를 걸었다. 운동엔 최고다. ‘나는 자연인이다’ 촬영 같았다.
창문과 방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들을만한 크기로 틀어도 눈치 보이지 않아 좋았다. 창밖으로 숲과 지붕 사이 세모꼴 하늘이 보인다. 다섯 명이 집 한 채에 있다가 혼자 있으니 좋았다. 다만 어둠 속에서 화장실 갈 일이 암담했다.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 봐 일찌감치 잤다. 불을 켜 둔 채였다.
몸에서 열이 폭발했다. 땀구멍마다 땀이 쭈욱 쭈욱 솟아올랐다. 갱년기 증세였다. 밤에 땀이 쭈욱 날 때마다 피부 자극 때문에 깼다. 그때마다 옷은 흥건히 젖어있었다. 그래서 자주 샤워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둥글레 방부터 욕실까지는 80~100m. 따로 있는 화장실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오는 현대인들은 이 불편함을 찾아 일부러 깊은 산속 절까지 온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여섯 시 반쯤. 촬촬 물 흐르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시골은 고요하지 않다.
누워있는데 문득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봄에 이 방에는 책상이 없었다. 내가 온다고 책상을 놓아주신 것이었다.
귀정사. 티 내지 않는 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점심밥은 풍성했다. 밥, 김치, 호박부침, 양념깻잎, 호박잎, 두부조림, 전날 저녁에도 가지부침이 나왔는데 매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나온다. 허리도 구부정한 팔십 대 공양주 보살님 노동이 보배롭다.
원고에 손을 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아 계속 정원일기만 쓰고 있다. 여기서 원고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말이다.
또 비가 내린다. 쏴아 쏴아 숲이 젖는다. 산동이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데 비가 온다. 비가 이리 풍성히 오니 산비탈에 잡풀이 더 무성해지겠구나. 170 걸음 욕실과 근처 화장실 가는 내 신발과 발목은 더 젖겠구나.
몸에서 땀이 빠져나온다. 땀이 삐져나올 때 열이 나며 피부가 아프다. 낮밤 가리지 않고 그런다. 그때마다 샤워해야 하는데 욕실이 너무 멀다.
정말 너무 덥다. 원고에 집중해야 하는데 여러모로 불편하다. 모기에 물린 곳이 긁어서 화농이 된다.
화장실과 욕실이 한 공간에 있는 쾌적한 곳으로 가고 싶다.
눈을 뜨면 숲 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170보 풀숲을 걸어 내려가 샤워를 한다. 닷새째 냉수욕이다. 찬물로 몸을 씻고 머리를 감다 보면 차력사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몸의 물기를 닦고 옷을 입을 때부터 찐득거리다 다시 둥글레방으로 올라오면 몸과 옷은 다시 젖는다. 숲의 모든 습기에 몸 안의 물기가 섞여 몸이 늘 젖어있다. 산동이와 산책을 하자마자 식사 후 왕복 5km를 더 걸었다.
저녁에 드디어 선풍기가 생겼다. 결국 전기와 기계의 도움을 받는구나.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한다.
엿새째, 욕실에 온수가 나왔다. LPG 가스를 새로 주문해 주신 거다. 감사했다.
그분방
이레째, 요사채 맨 왼쪽 그분방으로 옮겼다. 지행 님이 책상과 의자를 지게로 지어 날라주셨다. 장판도 깔끔하고 벽지도 깨끗하다. 방문은 서쪽인데 창이 동쪽과 북쪽으로 두 개다. 통풍이 잘된다. 대신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는다. 귀정사에 오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방충망이 있어도 들여다보인다. 내 주거기준 일 순위가 외부로부터 내부가 보이지 않아 사생활이 보호되는 것이지만 다 좋을 순 없으니 견뎌보도록 한다.
방문을 향하게 책상을 놓으니 울창한 배롱나무가 보인다. 배롱이 나를 감춰준다. 배롱을 의지해서 남은 날들을 살아야겠다. 길어야 3주. 그 안에 내 거처가 생길 것이다.
비가 온다. 전기 패널을 켜니 바닥이 따뜻해진다. 불 때던 수고에 비하면 쉬워도 너무 쉽게 더워진다.
둥글레방에 있던 이불과 매트를 빨아 바닥과 책상에 놓고 말린다. 사람이 자주 바뀌면서 침구도 그때마다 세탁을 해주면 쾌적한 귀정사 인드라망 쉼터가 될 것이다.
여드레째, 그분방에 다른 이들이 쓰고 간 요, 이불, 베갯잇 각 두 장씩을 세탁해 널어 말려 보관장소에 가져다 둔다. 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내가 하나 싶다가 공짜로 방을 쓰는데 이 정도도 못 하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책상을 북향 창 아래 구석으로 옮겼다. 동쪽 창밖과 북쪽 창밖에 은행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다. 서쪽 방문밖에는 배롱나무가 있고, 동쪽 창틀에는 동백 화분까지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이 다 있다. 대단한 호강이다. 동쪽 창 너머로 하늘이 삼각형으로 보인다. 그 정도 하늘만 보여도 살만하다.
며칠 후 책상을 다시 서쪽 방문 쪽으로 옮겼다. 인터넷망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방문 앞에서도 겨우 연결되거나 안 된다.
보름째. 마침내 낫을 들었다. 빨랫줄 아래 무성한 풀이 빨랫감에 닿아 그 풀들을 벴다. 은행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도 베어냈다.
17일째. 오랜만에 다른 지역으로 나갔다. 새롭게 시작될 직장일 때문이었다. 남원역에 주차하고 무궁화호 타고 버스 타고. 현대식 건물에서 태국 음식도 먹었다.
일을 마치고 미리 연락해 놓은 부동산을 통해 집을 알아보았다. 차도마다 꽉 막힌 차량 빼곡한 집들 허다해서 존재감 없는 사람들. 어서 그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불과 한나절이었는데도 산과 풀과 새소리와 심지어는 밤에 세면장에 다녀올 때 풀밭 위 댓돌 옆에 나와있는 개구리마저 그리웠다.
남원역에 기다리고 있던 내 차에 올라 서서히 운전했다. 차도는 매우 깜깜했다. 암흑일 줄 알았던 요동마을에서부터 귀정사까지 산길엔 가로등이 두 개나 켜있었다.
귀정사 담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헤드라이트가 꺼지자 마침내 암흑이 펼쳐졌다. 휴대전화기 전등을 켜지 않으면 요사채 그분방까지 갈 수 없다.
차에서 내려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성한 귀정사 수풀을 가장자리로 한 하늘에 별. 별들이 초롱초롱 무수히 펼쳐져 있었다.
며칠째 보광전, 관음전, 만행당, 요사채에 혼자다. 화장실 가려고 자정 무렵 밖에 나오면 세상에 다른 색이라곤 없는 칠흑 같다. 그 어둠이 무섭지 않았다. 왜냐면 저 아래위 쉼터와 템플스테이 어딘가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서운 사람, 나쁜 사람이 쉽게 오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기에. 그래서 나처럼 겁 많은 사람이 밤에도 방문을 잠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목요일 아침 8시. 울력하러 모였다. 새벽까지 집필하느라 두 주를 거르고 처음 나갔다.
고추 따고 고춧대와 잡초 뽑고 들깨 순 지르기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들깨 원순을 또각또각 따서 한 포대 반을 담고는 잡초를 뽑다가 만행당 정리를 하겠다고 했다.
쓴 침구는 세탁기로 빨고 흐트러진 침구와 물품을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구석의 먼지를 닦아내면 거미가 놀란다.
내 걸레는 다 떨어진 회색 면 슬리브리스 티셔츠. 이제 입던 옷들이 하나둘 걸레가 되어간다. 찢어졌다고 홀랑 버려지지 않고 걸레로라도 쓰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물건의 효용과 사람의 쓸모는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이전의 나는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공주 과였다. 이곳저곳 떠돌면서 꼼짝 안 하면 욕만 먹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지나간 후에 남는다. 내가 지나간 곳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게 좋듯이 내가 떠나고 난 후에 나에 대한 평가가 기분 좋길 바란다.
참 얌전하고 단정하고 깔끔하며 허튼소리 하지 않고 심지가 굳고 때론 경쾌하며 몸 사리지 않고 일도 잘하고 무엇보다 또 왔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좋은 사람들
지행 님에게 취업 소식을 전하자 귀정사에서 출퇴근하라신다. 오후에는 처음으로 만든 의자를 고쳐다 주셨다. 그물코 카페에서 가져온 접이식 의자를 쓰다가 바꿨다. 안정적이었다.
낮에 갑자기 목줄 풀린 산동이가 왔다. 내 툇마루에 엎드려 쉬는 산동이와 나. 세상 평화롭다.
금요일, 옆방인 정분 방에 새로운 분이 오셨다. 건반을 들고 연습하러 오셨다.
옆방에 누가 온다기에 깨끗하게 걸레질을 해 두었는데 음악하는 분이 오셔서 매우 좋았다.
그 분을 맞이하러 쉼터지기 님이 오신 김에 전날 정황을 말씀드렸다. 대전에 취업이 됐고 집을 알아봤는데 도시에선 못 살 것 같다고. 집을 구할 때까지 더 있어도 되겠느냐고. 그러라고 하셨다.
큰고모가 집 문제를 꼭 상의하라고 문자를 보내셨다. 통화하니 귀정사에선 밥을 주니 거기 있으며 강의와 강의 사이에 모텔을 이용하라고 하셨다. 시간표가 월, 금으로 결정됐다. 모텔 이용은 불가.
저녁밥을 먹는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풍처럼.
그런데 그날 밤에 처음 뵙는 스님마저도 내게 귀정사에 있으라고 하셨다.
하루에 네 사람이 똑같이 차로 다니며 귀정사에 있으라고 하신다.
울다 잠들고 아침 일찍 깼다. 전날 빨아 말린 찢어진 요 커버를 산동이 집에 깔아주었다. 젖은 담요는 꺼내버렸다. 산동이를 데리고 경내로 올라왔다. 긴 줄을 배롱나무 앞 의자에 묶어놓으니 내 툇마루에 엎드려 있다.
일단 귀정사에서 출퇴근하며 탈고하고 지리산에 가기로 결정했다.
토요일엔 공양간에서 종을 치지 않는다. 옆 정분방지기가 밥 먹는 데 함께 있어 주었다. 보답으로 트렁크에 있는 커피 도구상자를 꺼내 툇마루에 앉아 원두커피를 내려주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쇼팽의 빗방울전주곡도 틀어주었다.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대해주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게 좋다. 좋은 말로 바꾸면 그건 귀한 대접이다. 화들짝한 환대와는 또 다른 정성스러운 대접. 남을 공경하는 마음과 태도. 상대가 귀해짐은 자신도 귀해짐이다.
빗소리와 커피와 피아노 치는 아름다운 여인과 나지막한 대화. 참 좋았다.
저녁에 정분방지기가 된장찌개와 김치볶음을 했다. 나는 옆에서 거들기만 하고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샴푸바가 닳아 없어졌다. 지난주 옆방에 오셨던 분들이 쓰고 가셨다. 공용욕실을 쓰니 어쩔 수 없다. 세안용 물 세제를 다 썼다. 누가 두고 간 손가락 두 개 두 마디 만한 업소용 비누를 쓴다. 곧 바디오일도 다 쓸 듯하다. 다이아몬드 리페어 퍼펙트 세럼 45ml를 다 썼다. 아이크림도 다 썼다. 아직 린스바와 새 비누가 남았다. 친환경 액상세제도 남았다.
아침에 욕실에 가니 내 욕실용품 쪽에 샴푸와 목욕세제 샘플 두 병이 있었다. 퇴실하는 정분방지기가 둔 것이었다. 그이는 내가 천연세제를 쓰는 걸 알고 있었고 그게 다 떨어진 것도 알았다. 자기 건 화학세제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으니 둔 것이었다.
남원에 외식하러 나간다는 쉼터 사람들 대신 나와 있기를 택한 정분방지기는 된장수제비를 해주었다. 밥 하기 싫어 여기까지 왔다는데 와서는 두 끼나 식사 준비를 했다.
나는 식사 후 전날처럼 툇마루에서 원두커피를 내려주었다. 이번엔 작은 상에 레이스 손수건을 깔아주었다. 그이가 좋아한다는 드뷔시의 <달빛>도 틀어주었다. 우리 앞에는 분홍 꽃 몇 송이 남은 배롱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군산에 산다는 그이는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산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그중에 글쓰기가 있었다. 의욕이 넘치고 쾌활한 그이는 군산에 오면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적어주고 떠났다. 그이의 이름은 ‘바다별’. 2박 3일의 명랑함이 건반 실은 빨간 소형차와 함께 떠났다. 암흑 같은 심야에 화장실 가려고 바깥에 나가면 옆방에 누군가 있어서 안심되던 이틀이 지나갔다. 바다별이 치던 동요들이 듣고 싶어질 것이다.
타산지석
저녁 공양 때 공양주 보살님이 한 쉼터 남자에게 한소리 하셨다. 고양이 보리에게 캔을 하루 세 개나 주지 말라고. 평소에도 그는 보리에게 캔을 주면서 밥을 안 먹는다고 걱정하는 분이었다. 그는 자기가 떠나면 보리를 어쩌냐고 걱정하고 다녔다. 보리는 새도 쥐도 잡아먹는 고양이다. 누가 돌봐줄 필요가 없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나 없으면 누가 산동이를 산책시켜 주나 걱정하고 있었다. 개나 고양이는, 특히 이렇게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 사는 개나 고양이는 모든 사람을 잘 따른다. 특정한 누구 하나 없어도 잘 산다. 그래서 지난 3월에 내가 산동이 걱정을 하자 처사님이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신 거였다. 5개월 만에 다시 와서 깨달음을 얻었다.
사료 먹어도 되는 고양이에게 간식캔을 하루에 몇 개씩 주는 건 고양이를 위한 게 아니다. 영양 상도 나쁘지만 평소 식습관을 깨기도 한다. 아기에게 사탕이나 과자만 먹이고 밥 안 먹는다고 걱정하는 것과 똑같다. 그건 그저 고양이의 환심을 사려는 술책일 뿐이다.
누군가 자신을 대할 때 지나친 칭찬이나 단 소리만을 한다면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물질로 잘해줘서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건 거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도 어찌 보면 사랑과 인정받고 싶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분방 앞에는 배롱나무가 한 그루 있다. 휘영청 늘어져 운치도 있고 내 방을 가려줘 안심되게도 했었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를 쳐주겠다고 하늘소와 지행 님이 왔다. 나도 톱을 들고 나섰다. 보광전을 가리고 있던 배롱나무 큰 가지들이 잘려나갔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나뭇가지를 베는데 별담리 생각이 났다.
그날 만행당의 요와 이불을 햇빛에 널었다 들여왔다. 귀정사에서 한 달 되기 전에 나가려고 그동안 이부자리를 쓰지 않고 있었다. 매트를 깔고 시트만 덮고 잤었다. 그런데 이틀째 아침에 쌀쌀했다. 이제 이곳에서 언제 나갈지 기약이 없다. 남도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구나.
갑작스러운 일들
귀정사에 최초 코로나 바이러스 19 확진자가 나왔다. 격리기간 동안 그곳을 빠져나왔다. 떠도는 것도 서러운데 병까지 얻으면 그보다 더 비참한 게 없음을 경험으로 안다.
숨도 못 쉴 줄 알았던 서울, 인사동 ‘열시꽃’에서 미국에서 오신 분을 만났다. 내 정원일기를 읽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신 분이었다. 우리는 5년 전 같은 매체 필진이었고 창간호부터 함께 연재해 온 사이였다.
그분과 조계사에 가서 회화나무를 만져보았다. 나는 그분에게 그분방 앞 배롱나무 꽃잎 두 장을 드렸고, 그분은 내게 카모마일 차를 선물로 주셨다. 그분과 헤어지고 청와대까지 걸어갔다. 기품 때문이었는지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리고 미처 못 한 말 때문에 가슴이 아렸다.
그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갑작스러운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일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한 극장에서 하루에 영화를 세 편 연달아 본 것이었다.
13시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15시대 <헤어질 결심>, 18시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그중 가장 좋았던 ‘사랑할 때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원제는 ‘세상에서 최악인 사람’. 그런데 주인공 율리에는 가장 행복한 얼굴로 대로를 뛰어간다. 그 사랑이 최악의 선택이라 해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