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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미완성
탑 주위에는 까마귀 떼가 빙빙 맴돌고 있었다.
그는 병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술병에서는 참으로 감미롭고, 참으로 달콤한 향기가 났다. 마치 아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칭찬과 다정한 말을 들을 때,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고 또 영문도 알고 싶지 않지만 다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생각만으로 행복에 겨운 때와 같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처음부터 내게 당신의 말을 의심하라고 하셨다. 아주머니가 당신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신 건 아니야, 그 반대지. 아주머니는 당신이 어린아이처럼 솔직하다고 하셨어. 하지만 우리와는 본성이 달라서 당신이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도 우리가 의구심을 떨치고 당신 말을 쉽사리 믿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 그리고 좋은 친구 하나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쓰라린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거야.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다시 그 섬을 찾았지만, 내가 K인지 프리다인지 알 수 없는 채 까마귀만 그리워하다 갑니다. 좀처럼 길을 열어주지 않는 섬에서 사흘을 헤매다 과거는 지났음을,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래도 언젠가 길을 열어준다면 아직은 때가 아님을, 그때가 언제임을 알지 못한 채.
비바람눈 맞으며 갔던 곳을 찾고 또 찾아가며 428km. 자전거용품과 헬멧은 풀어보지도 못했지만, 나흘째 꼼짝 않고 기어이 그 책은 다 읽었습니다. 5년이 걸렸습니다. 책을 다 읽고 엽서를 썼지만 결국 부치지 못했습니다. 핑계는 아니지만 그새 관제엽서 우편료 10원이 올랐더군요. 220원 옆에 200원짜리를 붙였는데도요. 10원이 없어서도 아까워서도 아니지만 우편취급국과 우체국은 다르니까요.
여전히 궁금합니다. 까마귀는, 까마귀는 444쪽 중 단 한 번 나오는데 어떻게 그걸 기억했을까요. 구부린 등 반대편 눈 쌓인 속밭 가지 사이를 까악 까악 날다가 부리를 비비던 까마귀들의 사랑을 보면서 말이죠. 알아요. 이게 내 소설의 시작점이 되리란 것을. 그리고 그건 얼마 전 인연 하나를 끊고 다녀온 은진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