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1 구미역~한국옵티칼하이테크 12km
2025년 6월 1일 일요일 새벽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서 오전 아홉 시 반에 구미역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깃발을 들고 공주 옷을 입은 희망 뚜벅이들이 도착했다. 김진숙 동지도 오셨다.
10시에 간단한 체조를 하고 출발했다. 약 서른 명의 희망 뚜벅이 선두엔 코상(선빈)과 민석이 섰다. 장영식 사진가와 차해도 동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모 기자와 나 그리고 말벌 동지들.
지난겨울 걸었던 길을 거슬러 걸었다. 그 사이 말벌 동지들은 구미역에서 공장까지 다시 걸어갔었다. 뿐만 아니라 틈만 나면 공장에 방문해 왔다. 그래서 길을 잘 알고 있었다. 희망 뚜벅이로 얼굴을 익힌 말벌 동지 중 숲달이 말을 걸어왔다. 제주 제2공항에 관해서였다. 반갑고 고마워 2019년과 2020년에 작업한 르포를 알려줬다.
4km 걸어 도착한 양지공원에는 민주노총에서 준비한 수박과 떡이 있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처럼 공원에서 치솟는 분수도 여름을 알리고 있었다.
남은 8km를 걷던 중 김진숙 동지 옆에서 잠시 걸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들었다. 직장(直腸)을 많이 잘라내서 하루 여섯 시간을 화장실에서 씨름해야 하는, 그 때문에 버스를 탈 수 없어 기차만 타야 하는. 그래서 옵티칼 노조사무실에서 잘 수 없는 그이의 사연을.
국가 폭력에 의해 사라진 그이의 청춘은 추억거리의 유무나 이질(異質)을 떠나 병마의 씨앗을 받았던 시간이었다. 피해자가 엄연히 있는데 가해자는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 무엇으로 40여 년의 고통을 보상받을 수 있는가.
이어 하나둘 사연을 듣게 된 말벌 동지들도 비정규직으로 억울하게 당한 일과 불확실한 미래를 토로했다. 나 역시 억울함이 가슴 가득한 채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희망 뚜벅이들의 밝은 걸음은 억울함을 알기에 연대하는 공감의 승화가 아닐까. 주유소 뒷편에 주저앉아서 아이스바 하나씩 입에 무는 것으로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
오후 한 시 반쯤 공장에 도착했다.
옥상에는 2024년 1월 8일에 올라가 511일째인 박정혜 동지가 보였다. 아래에는 내가 대전역에 도착했을 때 전주 전북지방환경청에서 출발한 해남의 나무가 도착해 있었다. 돌아가면서 박정혜 동지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말벌 동지들은 힘내시라고, 사랑한다고 했고 나는 평화바람 양말을 선물로 가져왔으니 내려와서 같이 신고 걷자고 했다. 김진숙 동지의 차례였다.
“제가 넷째 딸로 태어났는데, 엄마 아버지한테는 내가 별로 자랑스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제 생일을 몰랐습니다. 근데 엄마가 하지 감자가 나오는 철이면 이렇게 부엌으로 몰래 끌고 가서 감자를 딱 두 알 줬었어요. 그게 제 생일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역국을 먹어 본 적이 없거든요. 그 하지 감자에 얽힌 사연을 듣고 나서는 저는 감자를 안 먹었다기보다는 못 먹었습니다. 제 삶을 관통하는 건 어떤 억울함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자랐고, 그렇게 공장에 들어갔고….
얼마 전에 박정혜 동지가 인터뷰한 글을 처음 봤는데, 호텔경영학과를 나와 호텔에서 일하다가 생산 공장에 왔던 건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 처음이었다. 여기서 십 년이 넘게 일하면서 여기서 비로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는 말이 나는 무슨 말인지 알겠거든요.
저도 공장에 여러 군데 다녔지만, 한진중공업만큼 내가 여기서 뿌리를 내려야 되겠다는 공장이 없었어요. 그냥 여기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렇게 쫓겨난 게 저는 너무 억울했어요. 그래서 저는 박정혜 동지의 마음이 새롭게 다시 와닿았어요. 그래서 저는 박정혜 동지를 꼭 땅에서 안아 보고 싶어요. 그런 마음들을 저는 알 것 같거든요.
오늘 511일이라는 날이 와버렸는데요.
박정혜 동지,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가장 대단한 사람이고,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고, 가장 의연한 사람이에요.
저는 사실 박정혜 동지와 저녁마다 카톡을 나누는데, 박정혜 동지가 힘들다고 얘기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여름이니까 덥겠죠. 거기도 그런 사정이 있으니까.…’
목요일마다 고공문화제를 하는데 여기에서도 해야 되지 않겠냐 하면 박정혜 동지는 ‘여기는 머니까요. 구미까지 오는 건 힘드니까요.’ 늘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 게 어떤 때는 속상하기도 하고 많이 배우기도 하고 그래요.
박정혜 동지, 너무 훌륭하고 멋있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걸었는데 정말 덥네요, 오늘.”
85호 크레인에서의 309일이 있었기에 알 수 있는 불탄 공장 위에서의 511일. 일확천금을 얻고 싶다는 게 아니라 단지 다니던 공장에 계속 다니게 해 달라는데 회사는, 국가는 왜 사람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가. 자본가에게 생산 라인의 주체인 노동자는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존재인가?
불탄 공장 시뻘건 철판 앞에 있던 인형이 사라졌다. 배현석 동지에게 물어보니 비가 와서 인형이 젖어 본관 현관으로 옮겼다고 했다. 슬리퍼가 쌓여있는 현관 안에 인형이 근사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현석 동지가 사물함에 이름이 있다고 했다. 정면에 이름이 보였다.
‘이지영’
아마 근무할 때 슬리퍼를 신고 내부에 들어갔나 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폐허가 된 공장 사물함에 사라진 명찰들이 더 많았다. 한참을 찾아보았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찾아보았다. 그들을 기어코 찾아내고 싶었다. 다시 바깥으로 나왔을 때 찾았다.
‘박정혜’ 그리고 ‘소현숙’
둘은 한 칸을 사이에 두고 아래위에 있었다. 둘은 같은 조였고 박정혜가 조장이었다던 지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이 슬리퍼를 갈아 신고서 했던 일과 사업장을 상상해 보았다. 그때는 지극히 평범했던,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공장 내부의 풍경을.
신발장의 이름들을 뒤로하고 공장 앞으로 나왔다. 흰 천막 그늘에 해남 나무가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장 안 시원한 그늘에 앉아 있었지만, 옥상의 박정혜는 땡볕을 우산으로 가리고 서 있었다.
한두 곡 부르던 나무가 뙤약볕 아래 홀로 서 있는 박정혜를 보다 못해 순서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다 함께 나와서 ‘아침이슬’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노래를 부르는데 울음이 복받쳤다. 합창이 끝났는데 오리곰이 갑자기 내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뭘 하라는 거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힘내세요’가 아닌, 나도 모르게 나온 말,
“사랑합니다.”
인생에서 만난 남자들이 하나같이 시시해서 여자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다. 동지애도 사랑이다. 사랑에는 책임과 헌신이 동반된다. 말로만 하는 사랑은, 받기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박정혜 동지에게 마이크를 올렸다.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항상 동지들한테 많은 힘을 받고 있고. 또 가고 나면 허전하겠죠. (웃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루라도 동지들하고 대면하고 이야기하고 많은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눈물 닦고) 응원에 감사드리고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저희 반드시 승리하리라 믿고 서로서로 응원하면서 … 하루빨리 이겨서 밑에서 동지들을 안을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박정혜 동지도 눈물로 우리를 사랑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를 위한 희망 뚜벅이 출판기념회를 했다.
부산에서 구미까지, 구미에서 서울까지 희망 뚜벅이 기록이었다.
그날도 노조사무실에서 자고 가는 말벌 동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시로 박정혜 동지 곁에 있어 준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은 것, 힘이 되어주고 싶은 것.
현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 청문회 개최에 관한 청원이 접수 중이다.
5월 22일에 시작했으니 6월 21일까지 5만 명의 동의가 있어야 국회에 접수된다.
청원 참여는 이곳에서 바로 할 수 있다. 관심은 사랑의 시작이다.
https://petitions.assembly.go.kr/proceed/onGoingAll/32739B8889D95CEFE064B49691C6967B
길목인에 세 편 수록
https://www.gilmokin.org/board_02/26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