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시간 속 교사로 살아가기

by 강봉희

내가 교직에 이렇게 오래 머무르게 될지 몰랐다. 32년이 지났으니 이제 교직에 있을 시간이 10년도 남지 않았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임용교시 외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았고 시험을 준비하고 운 좋게 임용이 되었다.

특수교사로 임용되어 첫 발령지는 특수학급이었고 첫 제자부터 오랜 기간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국민학교에서 시작하며 1995년에 초등학교로 학교 명칭이 바뀌기도 하였다. 1학년 때부터 만났던 학생들은 참 작고 귀여웠다. 귀여움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기도 하였고 매일매일 울고 싶거나 웃어야 할 일들이 끊이지 않고 생겼다. 한 학년씩 올라가며 고학생이 되면 작고 귀여운 모습은 사라지고 형님의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남학생들은 목소리까지도 완벽하게 작은 어른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상처가 많은 아이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주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된다. 교직 초기에 만난 학생이었는데 어머니가 안 계시고 가정에서 돌봄이 잘 되지 않은 학생이었다. 씻고 오지 못하는 날들이 오래되어 손과 목에 검은 때들이 가득하여 학교에서 씻게 한다던가 찢어진 실내화를 오랫동안 신고 다녀 새 실내화를 사 주는 일들이 학생에게는 자기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더 따뜻한 말과 포근한 몸짓으로 아이들을 상처를 돌보아야 주었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찾아 키워 준 일은 참 보람 있었다. 운동능력이 있는 학생이 아니었는데 장애인(학생) 체육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경쟁이 적은 종목을 찾던 중 탁구를 지도해 보겠다고 체육관에 있는 탁구대를 교실에 놓았다. 탁구대가 생각보다 커서 교실의 반은 차지하였다. 점심시간마다 교실로 불러 20분 넘게 매일 공을 쳐 보는 연습을 하였다. 운동신경이 없는 내가 봐도 어쩜 그렇게 공을 못 맞추는지 한숨이 푹푹 쉬어졌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꾸준히 연습하니 랠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첫 해에는 메달을 딸 수 없었지만 다음 해부터 꾸준히 연습한 덕분에 장애학생 체육대회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전문적으로 탁구를 배울 기회가 생겨 지금까지 탁구를 배우는 성실한 영만이(가명)는 지금도 대회 때마다 응원하고 있다.

중증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참 많이 만났다. 25년도 전 특수학교에 근무하였을 때 학령기가 훨씬 지나 나이가 30대였으나 초등 2학년에 있는 성인의 모습을 한 준호(가명)는 시설에서 다니는 중증장애 학생이었다. 먹을 것을 좋아했는데 먹지 못하는 흙, 종이, 치약등 손에 닿는 것은 뭐든 입으로 넣었다. 교실에서 먹을 것을 찾는데 모든 서랍과 물건을 뒤지며 찾았다. 그 당시 학급 편성 기준이 12명에 두 학급으로 배정되는데 내가 맡은 특수학교의 2학년 1반의 인원수가 11명이었다. 11명의 장애학생을 혼자서 감당하기가 무척 힘들었고 그중 준호가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2학기 시작하자마자 1명이 전학을 와서 12명이 되었다. 그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2018년 전국 장애학생체육대회에 학생을 인솔하고 갔었는데 식전행사로 풍물패가 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도 우리 학생들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뜻이 있는 특수선생님들과 함께 풍물동아리를 창단하였다. 장애학생, 성인장애인(거의 나의 제자들이었다), 학부모, 가족, 교사들이 함께 하는 풍물동아리를 창단하여 지금까지 7년째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악기를 메고 대형을 만드는 풍물을 할 수는 없었다. 사물로 시작하여 가락을 익히고 한 곡을 완성해 나가는데 1년, 2년이 걸렸다. 배우는 속도는 그야말로 슬로우슬로우 늦고 늦었다. 그래도 시간에 장사없어 토요일마다 하는 연습의 힘이 점점 커졌다. 점점 모양새를 갖춰가면서 작은 무대와 큰 무대, 야외무대까지 일 년에 한두 번 공연을 하며 실력을 길러나갔다. 5년부터는 풍물동아리 이름대로 악기를 매고 치며, 대형을 만들고 판 굿을 만들어 갔다. 우리 동아리에도 중증장애인, 학생들이 있다. 7년 동안 했어도 가락을 따라 치지 못하고 자기만의 가락을 만드는 회원들이 있다. 그래도 눈치가 생겨 대형을 만들면 따라오고 줄을 맞추려고 애쓰는 것을 보며 ‘많이 배우고 크고 있구나!’ 교사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웃고 있다. 늦잠 자고 싶은 토요일에 나와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모임이다.

올해 만난 학생들은 1학년과 2학년으로 귀여운 남학생들이다. 이제 아이들의 삐짐. 화냄에 웃음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자기가 아직도 어린이집 유아인 줄 생각하고 혼자 할 수 있어도 사탕껍질 뜯어달라, 양말을 신겨달라며 애교를 부리는 만수(가명), 별거 아닌 질문에도 방어적으로 자기 생각을 꽁꽁 감추거나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물건을 던지며 화를 공격적으로 표출하는 유진이(가명)를 보며 이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며 자립할 수 있을까, 마음을 열고 사회성을 길러 가게 할까 오늘도 고민하고 있다.

길기도 했던 교직생활이었다. 외부 예산을 따와서 사업을 하고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교생에게 통합교육을 하였다. 일반교사와 협력교사로 때로는 보조교사로 장애학생들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수용하였다. 시간이 지났다고 다 좋을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수교사라고 무시와 차별도 은근히, 대놓고 당하기도 했다. 경력이 적으면 적은 대로,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장애학생들이 차별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많은 것을 포용하고 감수하며 지냈다. 학교 문화는 각 학교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올해 온 학교는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라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 비중이 크면 크다고 할 수 있는 업무를 맡아서 어느 정도 학교 업무에 이바지하는 것도 긍정적인 영향일 수 있다.

지금 바로 교직을 떠나지는 않지만 이제 마음을 정리하려고 한다. 나에게 남아있는 따뜻하고 선한 가르침의 최대치를 올려 학생들에게는 나누고 동료교사와는 협력하는 공동체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끝이 보이는 남은 기간이라고 생각하니 하루하루, 한 해가 아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 인생의 큰 영역을 차지했던 교직 생활, 제자들과 장애학생들을 한결같이 지켜주시는 부모님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면서 앞으로 남은 시간도 무탈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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