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태어나서일까 누가 나에게 ‘너는 어느 계절이 좋아?’ 물으면 나는 어릴 때부터 ‘겨울이 좋아. 추워도 눈이 오면 밖에 나가고 싶잖아.’라고 말해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학교, 친구, 놀기에 바빴던 20대 초반까지는 시간의 흐름이나 계절에 대해 관심이 적었던 것 같다. ‘봄이 왔구나, 꽃이 피었네, 더우면 여름이지, 단풍이 들고 떨어지면 올해도 다 가는구나, 눈이 오면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왔어.’ 이런 생각이 계절에 대한 나의 관심과 느낌이었다.
당진에 내려와 살아온 시간이 서울에서 산 시간보다 오래되었다. 계절의 흐름을 눈과 귀, 코와 그리고 피부의 감각까지 실감 나게 느끼게 되었다. 겨울의 찬바람이 누그러지는 봄이 오면 봄바람의 냄새가 불어온다. 노란 산수유꽃와 향기로운 매화꽃이 피기 시작한다. 뒤를 이어 개나리와 진달래, 수선화꽃과 벚꽃, 철쭉, 등나무꽃이 뒤를 이어 피어난다. 큰 나무에서는 작은 잎들을 무수하게 많이 니와 연한 연두색에서 점점 짙은 녹색으로 변화한다.
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좋아한다. 5월부터 6월까지 뻐꾹새소리는 플루트의 소리보다 아름답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은 새들의 지저귐과 귀여운 참새들, 깍깍깍깍 까치, 가끔 들리는 까마귀소리, 그리고 멧비둘기의 구수한 새소리까지 자연의 새소리는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계절마다 냄새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각각의 냄새가 계절을 느끼게 해 준다. 봄은 따뜻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고 여름은 식물의 푸르름으로 각각의 나무와 풀들이 내뿜는 피톤치드향, 소나기가 오기 전 흙냄새가 비가 곧 오리라 알려준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 들깨 말리는 고소한 냄새, 낙엽이 떨어져 바짝 마른 잎을 밟으면 나는 쓸쓸하고 구수한 향 그러다 멀리서 나는 낙엽 태우는 냄새는 밥 짓는 냄새만큼 기억이 많이 남는다. 겨울의 쨍하고 콧속이 뻥 뚫리는 차가운 냄새, 그리고 얼굴과 콧속이 얼어붙는 느낌은 우리는 다 아는 겨울의 감각이다.
올해 봄은 여름이 빨리 온다는 예보로 봄이 짧을 거라 생각 헸는데 비와 저온으로 생각보다 봄이 느리게 가고 있다. 꽃도 순차적으로 피고 있어 다른 해보다 봄을 오랫동안 느끼고 있다. 이팝나무가 우리 주변이 이렇게 많았는지, 작약꽃의 향이 얼마나 은은한지, 달맞이꽃들이 수수하지만 멋지게 뽐내는지 알게 되었다. 아쉽게도 이번 봄에 이루지 못한 계획은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지인과 고사리 꺾기를 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겨울을 좋아한다는 답은 못할 것 같다. 봄이 이렇게 좋은지 한참 나이를 먹은 후에 알게 되었다. 화려하게 또는 수수하게 다양한 색과 향기로 눈과 코가 즐겁고 새들의 지저귐으로 귀가 호강하고, 따뜻하거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봄이 좋다. 아직은 5월의 끝자락이다. 봄이 가는 하루하루가 아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