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by 강봉희

유시민 작가님의 청춘의 독서를 천천히 읽었다. 생각할 주제가 많아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늦어졌다. 그중 푸시킨의 시에서 한참 머물렀다. 최근에 일어난 일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그랬다.

젊은 시절에는 그 시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간절함과 절실함이 없어서 그랬을까. 그렇다고 내가 아무 문제 없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빨리 포기하거나 순응하는 삶에 익숙해서 인 것 같다. ‘시간이 약이다.’ ‘쏟아지는 비는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견디자.’ ‘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가 나의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한 힘을 주는 말들이었다.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시기도 있었다. 직장에서 크고 중요한 일을 맡아 2년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많은 시간 야근을 하며 지냈다. 밤 12시까지 일하면서 장거리 출퇴근을 하였다. 김현철과 롤러코스터가 부른 ‘봄이 와’ 노래를 들으며 흥겨운 보사로바 리듬에 어울리지 않게 울면서 운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일은 담당자로 업무를 맡은 나의 지나친 책임감이었고 내 개인적으로 크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쁜 일은 함께 온다는 것이 맞나 보다. 가정에서도 심각하고 견디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정서적 에너지가 바닥까지 내려갔다. 매일 울며 잠들었고 아침이면 눈이 부은 상태로 출근했다. 그 어려웠던 터널의 시기를 견디는 데에는 5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힘든 시기가 또 온다. 어찌하다 승진을 할 만큼 점수가 생겼는데 승진은 되지 않았다. 일반교사였으면 진즉에 되고도 남았는데 특수교사라 승진 자리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초등교사라면 당연히 되는 것이 특수교사라 안된다는 것이다. 주변에 아는 사람들, 후배 교사들 모두 승진해서 교감 교장까지 올라갔는데 점수가 차고 넘치는 나는 기다리고 찾아가도 말로만 기다려 보라고만 할 뿐 늘 떨어졌다. 나를 안타깝게 생각한 분들은 소송을 하라고 하는데 소송까지 해야 하나 마음이 더 힘들었다. 이 때도 나를 위로해 준 노래가 있다. 퇴근길에 김필과 곽진언이 부른 ‘지친 하루’를 무한 반복 들었는데 가사가 나의 처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몇 년간 의지할 사람 없이 혼자 힘들었다.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지만 지금은 더 이상 승진에 연연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승진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고 정년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을 고려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승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나의 삶을 소소한 행복으로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추석 명절에 날벼락같은 부고가 올라왔다. 직장 동료의 남편이 돌아가셨다. 평소 51세의 젊고 건강한 남편분은 감기인지 위염인지 통증이 있어 병원을 갔는데 갑자기 급성 백혈병으로 진단되어 모든 장기가 망가져서 손 쓸 수 없는 상태로 되어 돌아가신 것이다. 한 순간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그 슬픔을 어찌 위로할 수 있을까. 집에 와서 돌아가신 남편과 남아있는 슬픔 속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가슴속에 묻고 살아가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중증의 병을 가지고 있어 건강하지 못한 내 남편은 다른 사람보다 죽음에 가까울 수도 있어 먼 미래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나도 남편이 죽는다면 세상이 무너지듯 마음이 미어질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고 의도하지 않았던 삶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다. 사람들마다 겪는 고통의 깊이와 크기를 감히 내가 비교하거나 상상할 수도 없다. 흐르는 시간 속 고통과 슬픔 속에 빠져 지금 삶이 고되고 힘든 시간에 있는 분들에게 푸시킨의 시를 권하고 싶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의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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