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부터 ‘삐딱하게’ 노래를 많이 들었다. 가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멜로디가 좋았는지 그 노래가 참 마음에 들었다. 노래 가사대로 살지는 못했으나 나의 범생이 인생에서 소심한 삐딱선을 탈 때도 있었다.
아침잠이 많아 학창 시절 집 근처 학구를 벗어나 학교를 멀리 다닌 나는 학교에 등교하기가 참 힘들었다. 겨우 일어나 씻고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해 젖은 머리로 뛰어나가니 아침밥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아침을 굶고 다니니 어쩌다 아침을 먹으면 속이 부대끼고 편치 않았다. 그 당시는 아침밥은 꼭 먹고 다니는 것이 기본이었기에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16시간의 간헐적 단식을 40년 동안 해 온 셈이다. 지금도 아침밥은 건너뛰고 하루 2끼만 먹어도 그리 힘들지 않다. 최근 간헐적 단식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실행으로 유행이 되고 있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살이 빠진다는데 오랫동안 해온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법칙인가 보다. 다이어트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직장이나 오래된 모임에 머물다 보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나서서 문제를 만들기는 싫어하지만 내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 대다수의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고 생각되면 어떤 방법이든 목소리와 입장을 냈다. 경험이 적었을 나이에는 너무 직진으로 의견을 강하게 내다보니 윗 분들의 눈총 내지 미움을 받기도 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이 가마니로 안다고 누군가 말했다. 가마니로 대우받기 싫어서 그런지 불합리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참지 못했다. 나이가 한참 지난 지금도 그렇다. 지금은 대응이 좀 부드러워졌다고 할까 즉각 반응보다는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아보고 상황을 살피며 이야기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입장을 밝히고 개선을 위한 의견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불편한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붉힐 수도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참지 못하는 것이 병이라서일까? 그런데 내 신상에 관한 일이나 내 일에는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 내가 좀 바보 같다.
물건과 이별을 하지 못하는 나는 정리를 못 하는 사람이다. 이사를 자주 다녀 이사 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물건을 정리해야 해서 소소하게 버려도 새로운 집에서 다시 물건들이 쌓인다. 왜 그런지 이유를 잘 몰랐다. 언젠가는 그 물건들이 다 필요할 것이다라고 것이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었을까 버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당신의 근처' 줄임말이라는 당근마켓을 만난 것은 참 고마운 일이었다. 버리지 못하는 소중하고 쓸만한 물건을 당근에 내놓고 저렴한 가격에 팔았을 때는 물건과 헤어지는 마음의 불편함이 없었다. 나 대신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사용해 주는 것으로 소유에 대한 집착이 내려간 것 같아 당근마켓에 감사하다. 몇 년 전, 살던 집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많은 짐을 정리해야 했는데 당근마켓이 큰 역할을 하였다. 오래된 물건은 무료 나눔을 했다. 팔거나 무료 나눔으로 가져가신 분들 모두 만족하며 물건들을 차에 싣고 갔다. 나도 당근마켓을 통해 물건을 못 버리는 병이 나은 것 같다. 여기에도 반전이 있다. 내가 정리한 물건보다 당근마켓에서 산 물건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하루동안 3-4번의 ‘당근이세요?’ 판매자와 만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중고차를 당근마켓에서 구입하기도 했다. 당근마켓에서 차를 구입했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나도 설마 살 수 있을까 했는데 다행히 판매자와 조건을 맞춰 마음에 드는 차를 사게 되었다. 지금도 당근을 주기적으로 들여다보지만 예전만큼 구입하지는 않는다. 한번 더 꼭 필요한지 생각해 보고 구매에 신중해졌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다. 가만히 있으면 50점은 되는데 왜 나서서 손해를 볼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상에 작은 변화를 주지도 않는다. 그저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 던진 것뿐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샘이 우리의 의견과 입장을 대변해 주셔서 좋았어요. 그렇게 말해줘서 감사해요.’ 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말하기를 잘했구나 생각했었던 것 같다. 가끔 삐딱한 시각을 참아야 할 때도 있다. 나도 실수할 때도 있으니까. 삐딱하다는 것도 어느 시대의 관점이며 시간이 흐르면 또 비주류에서 주류가 될 수도 있다. 태양 아래 영원한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고,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았다고 바뀌기도 하니까 말이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딸에게 '지금 뜻대로 안 되고 힘들어도 상황은 변하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용기를 갖고 살아' 힘든 시가를 잘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삐딱한 시각을 가진 엄마가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