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탸샤의 정원을 읽었다, 그 책을 읽은 다음인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나의 정원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계절이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작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었다.
정원에 대한 로망으로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첫 단독주택에서 기억에 남는 꽃은 해바라기로 키가 큰 해바라기꽃 아래에서 귀여운 7살 6살 두 딸들이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지금도 남아있다.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을 멀리 다니느라 정원은 머릿속에 환상이었고 생존의 문제를 하루하루 해결하면서 살아갔다. 남편의 로망으로 만든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는 활동이 그나마 정원의 꿈을 달래는 시간이었다.
몇 번의 아파트 생활로 돌아간 후 다시 남편에게 아파트 생활은 많이 했으니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다지 내켜하지 않았지만 예전 단독주택에 살았던 좋았던 기억으로 땅을 구입하고 두 번째 집을 지어 이사를 갔다. 작은 마을 속에 있는 집이라 주변 할머니들의 관심 속에 살게 되었다. 인정 많은 할머니들은 자기 집에 피어 있는 모종을 떠서 심어보라고 주셨다. 나도 씨를 뿌리고 구근을 얻거나 사서 심었다. 남편은 나무를 부지런히 심었다. 그래서 우리도 계절마다 꽃을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겨울이 지나가 봄의 훈풍이 불어오면 가장 먼저 노랑 산수유꽃과 향기로운 매화꽃이 피었다. 매화꽃 향기가 다 날아가기 전에 꽃을 따서 말려 매화 꽃차를 만들었다. 뜨거운 물에 우려낸 매화차는 향이 기가 막혔다. 정령 이 차가 내가 만든 차인가 놀랍기만 했다. 강가에서 꺾어온 개나리를 꺽꽂이하였는데 다음 해부터 몽실몽실 노란색 꽃이 피어 집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개나리만큼 생명력이 강한 식물도 없는 것 같다. 해마다 무섭게 퍼져 나가는 개나리를 잘라주어야 했다.
다음 순서는 수선화와 튤립이 피기 시작한다. 여리여리한 두 꽃들은 너무나 예쁘지만 빨리 지기도 해서 아쉽기만 했다. 보라색 라일락이 피면 마당에 향이 가득했다. 서양수수꽃다리라는 조금 긴 우리말 이름도 정답다. 사과꽃, 배꽃도 피었지만 도화라 부르는 복숭아꽃은 화려함의 극치다. 예쁜 복숭아나무에 슬픈 이야기는 유기견으로 데려와 5년간 키운 두부가 갑자기 하늘별로 떠나 복숭아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애교 많은 두부를 생각하니 눈물이 찔끔 난다.
4월은 벚꽃의 시간이다. 전국의 벚꽃 명소가 관광객으로 가득한 시기에 우리 집 벚나무는 잘 크지 못해 꽃도 많지 않았지만 꽃을 피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울타리 나무로 심은 작은 회양목의 꽃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지만 그 작은 꽃에 모여든 벌들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꽃이 피었음을 알려주었다. 아기목련 꽃이 피어나면 나무 주변이 환해진다. 목련도 은은한 향이 있고 어느 절에서 목련차를 마신 기억이 있어 꽃을 따서 말려보았다. 역시 목련차의 향은 은은하면서 강했다. 다음은 샤스타데이지로 어느새 쑥 올라와 얼굴을 흔들흔들 흔들며 매일 반겨주어 고마웠다.
5월이 되면 꽃양귀비들이 여기저기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씨가 어디까지 펴졌는지 모르게 크고 작은 붉은 꽃들이 자기를 보라고 하늘하늘 바람과 함께 나를 불렀다. 한 구석에 커다란 목단화가 피어나면 매일 꽃 앞에서 나 혼자 꽃감상을 했다. 꽃이 피는 일주일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쉽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에는 분홍색 병꽃나무가 피기 시작한다. 이름도 정겨운 명자나무도 빨갛게 꽃이 핀다. 비비추의 하얀 꽃, 할머니가 주신 노란색과 분홍색의 달맞이꽃들이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오므리며 여름을 준비하였다. 드디어 장미덩굴의 꽃들이 피어나면 붉은색 화려함의 절정이 온다. 은은한 장미향과 꽃들은 피고 지고 또 피었다. 어느 해인가 송충이가 많이 생겼다. 송충이가 장미나무 잎을 좋아해 잎들을 다 뜯어먹었다. 송충이가 너무 미웠고 잎이 다 떨어진 장미나무가 안쓰러웠다.
한여름이 되자 키가 큰 접시꽃들이 차례차례 피어났다. 남편이 어렵게 심은 배롱나무들도 오래오래 꽃을 피워주었다. 빨간색, 흰색, 연보라색 배롱나무 꽃들은 더운 여름에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나리꽃과 백합이 피어나 시원한 저녁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환상적인 저녁의 마무리가 된다. 스위트바질을 심은 곳에는 바질이 엄청 잘 자라 크게 펴져 머리가 맑아지는 좋은 향과 가끔 스파게티에 향신료로 먹기도 했다. 바질오일과 바질페스토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지인들이 좋아했을지는 모르겠다. 페퍼민트도 잘 펴져 키가 커지고 울타리 밖으로 뻗어나갔다. 이장님이 향기가 좋다고 본인 집에 가져가고 싶다고 하셔서 드리기도 했다. 해바라기가 울타리 위로 올라가 꽃이 피면 지나가는 어른들도 행복해진다. 나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 피는 해바라기와 사진을 찍었다. 줄 맞추어 심은 무궁화나무에도 꽃이 피어났다. 둥글게 말려 떨어진 무궁화꽃을 보면 어릴 때 무궁화꽃으로 소꿉놀이를 했던 기억이 나기도 했다.
가을은 코스모스와 국화지. 코스모스는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날씨에 분홍, 빨강, 하양, 보라색의 꽃을 피우며 흔들었다. 코스모스는 가을 파란 하늘과 찰떡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소국들이 피어났다. 귀여운 국화꽃들은 퐁퐁이 같았다. 작은 캐모마일 꽃도 보이면 말려서 차로 만들었다. 향이 강해 빨리 우려내지 않으면 쓴 맛이 났다. 보라색 쑥부쟁이도 예쁘다. 봄에 피는 수레국화와 비슷하기도 했다.
겨울은 눈꽃이 핀다. 눈이 많이 오면 소나무 가지 위에 핀 눈꽃이 예쁘지만 나뭇가지가 부러질까 가지를 흔들어 눈을 털어주기도 했다. 약한 벚나무가지는 무거운 눈 무게에 부러지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작고 소박한 정원이었다. 산비둘기, 까치, 까마귀들이 아침저녁으로 노래해 주었고 꽃과 나무을 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꼈다.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지는 매일매일 작은 변화에 행복했다. 과거형인 것은 오래오래 살고자 심고 꾸미고 가꾸었지만 예정에 없었던 갑작스러운 이유로 만 5년을 살고 그 집을 떠나게 되었다. 수원 아파트에서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계절 꽃이 피는 그 집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지금 사는 집에는 집안에 화초들과 꽃기린, 제라늄이 꽃을 피워준다. 예전 집에서 가져온 병꽃나무와 포도나무, 라일락, 철쭉, 달맞이꽃이 옥상 화분에서 근근이 살고 있는데 해가 지날수록 더 이상 잘 자라는 것을 볼 수 없게 되고 있다. 땅이 아니고 얇은 화분 속에서 겨울을 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쉬움 속에 나만의 꽃밭이 생겼다. 학교에 아무도 관심이 갖지 않아 잡초로 무성한 예전의 꽃밭이 있었다. 몇 년 전에는 꽃밭으로 잘 가꾸었는데 지금은 돌보는 사람이 없어 개망초와 강아지풀로 가득한 잡초밭이었다. 정원 가꾸기에 조예가 있는 보건샘과 함께 개망초를 뽑아냈다. 구역을 나누어 구절초, 바질, 메리골드, 백일홍, 코스모스, 페퍼민트를 드문드문 심었다. 너무 늦게 시작하여 식물들이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번지지 않았다. 풀과 함께 공존하여 풀밭인지 꽃밭인지 애매모호하다. 풀을 뽑고 있으면 지나가는 분들이 뭐가 있다고 애쓰냐고 하지만 그래도 좋다. 내가 가꾼 꽃밭에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한 번씩 웃고 기분이 좋아질 것을 생각하니 잡초를 뽑으며 비 오듯 땀을 쏟은 것도 기쁘다. 무엇보다 내가 꽃밭에 집중할 때 아무 잡념 없이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어 행복하다.
오늘도 남편에게 단독주택 얘기를 꺼내자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과거의 아름다운 정원은 추억으로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히 올해는 현재의 꽃밭에 집중할 수 있어 기쁘다. 이 학교에 근무랑 때까지라는 기간에 제한이 있지만 내가 머무르는 동안 최선을 다해 가꾸어보고 싶다, 타샤의 정원을 생각하면서, 지난 옛집의 나의 정원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